[백지 입양기록④] 어느 공공기관이 10년 곪은 문제를 덮는 방법

강혜인 2024. 10.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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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아동권리보장원(이하 보장원)이 최근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의 문제를 알고도 사실을 덮으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보장원은 문제를 조사한 직원들에게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한편, 사업 부실에 대한 감사를 등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는 보장원이 10년간 진행해온 입양기록물 전산화 사업의 문제를 연속 보도해 왔다. 입양 기록을 영구 보존하겠다는 취지로 2013년 시작된 이 사업은 보장원이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뉴스타파의 취재를 통해 △백지 스캔, △ 기록물 DB구축 가이드라인 미준수, △스캔 수량 불일치, △허위 검수, △감리 지적사항 미수정 의혹 등 문제가 잇따라 드러났다. 

사업 문제 보고하니 황당 인사 발령…늑장 조사도

아동권리보장원 정익중 원장은 지난 6월 11일 사내 기록연구사 A 씨를 불러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 관련 조사를 지시했다. 기관 내부에서 이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A 씨는 18년차 기록물 관리 전문 요원이었다. 

원장의 지시를 받은 A 씨는 같은 기록 연구사인 동료 B 씨와 함께 조사를 시작했다. 사업 곳곳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록물 구축 사업의 기본인 '면 표시'부터 빠진 상태였다. 면 표시는 기록물을 스캔하기 전 원본 기록물 낱장에 페이지 수를 기입하는 것을 말한다. 스캔 작업 시 준수해야 하는 해상도 지침도 지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A 씨는 정익중 원장에게 사업의 문제점을 전하고, 추가적인 외부 감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보고했다. 외부 감사를 강조한 것은 당시 보장원 내부 감사팀장이 해당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에 관여한 적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장 보고 이후 보장원 경영전략본부장은 A 씨와 만나 외부 감사 대신 내부 감사로 진행할 것을 종용했다. A 씨가 반발하자 본부장은 '일을 더 크게 만들면 좋을 게 없다'는 취지의 말을 꺼냈다.

약 한 달이 지난 시점,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에 관여한 적 있는 감사 팀장은 A 씨를 만나 해당 사업 관련 몇 가지를 문의했다. 외부 감사 대신 내부 감사로 방향이 정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정식 내부 감사가 착수된 상황도 아니었고, 오히려 감사 팀장은 '감사에 비용이 들어갈 것 같다'거나, '10년 기간 중 특정 연도만 보자'는 등의 말을 꺼내며 감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동권리보장원 7월 19일자 인사 발령 문서.

보고 한 달 뒤, 두 기록 연구사는 인사 발령을 받았다. 원래 소속 부서인 경영지원부를 떠나 입양정책지원부 산하 기록물관리TF로 부서를 옮겼다. 취재진이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입양정책지원부는 적어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을 주관했던 부서다. 사업의 문제에 대해 보고를 했더니 그 사업을 담당한 부서로 발령이 난 셈이다. 

인사 발령 이후 두 기록연구사들의 업무는 입양 관련 기록물 관리로 국한됐다. 입양 기관들이 내년부터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할 기록들을 전수 조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본래 기록연구사의 관할이었던 보장원의 ‘문서고’ 출입은 본래 속했던 경영지원부의 신규 담당자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도록 조정됐다. 

정작 기록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은 신입 행정 직원에게 맡기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보장원은 내부 기록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용역 사업을 진행 중인데, 현재 이 사업의 담당자는 신입 행정 직원이다. 보호출산제 등과 관련된 보장원 내 다른 기록물 관리도 사실상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인사 발령의 결재 라인에 있던 보장원의 부원장은 당초 이 인사를 2번 이상 반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의 반대와 업무 공백까지 무릅쓰고 인사가 강행된 것이었다. 

A 씨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보장원 내부 감사팀은 한 달 넘게 정식 감사에 착수하지 않고 사전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다 7월 말,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의 문제를 인지한 상급기관 보건복지부가 진위 파악에 나서고서야 분위기가 바뀌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보장원의 사업 부실 얘기가 있어 보장원 측에 보고를 요청했지만 진행이 더뎠다"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결국 보장원에 대한 감사를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보장원은 복지부의 현장 점검이 있었던 8월 중순 이후 사내 감사 팀장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아동권리보장원 정익중 원장.

뉴스타파는 정익중 원장에게 연락을 취해 입장을 물었다. 정 원장은 기록연구사들의 인사 발령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이관될 입양 기록물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 일이 입양 관련 기관과 협조를 해야 하는 일”이라며 “(입양 관계 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게 더 좋기 때문에 입양 부서로 인사를 낸 것이다. 무슨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 관련, 외부 감사를 맡기지 않았던 데 대해 “(보장원 감사팀장이) 같은 부서에 있긴 했지만 (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얘기를 했고, 기록과 관련된 감사이기 때문에 (감사팀장이) 뭔가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 관련 기록을 잘 찾아달라는 걸 부탁한 것이었다. 조사를 하지 않고 감사를 진행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보장원 자체 조사가 늦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보장원도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조사 자료를 계속 만들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예견된 사업 부실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은 2013년 이후 10년간 지속된 사업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한계를 갖고 출발한 사업이었다. 2013년 사업 시작 당시에는 아동 복지 시설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원본을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입양특례법 시행규칙상 “입양 기관의 장이 입양 업무를 폐지하면 입양 기록을 중앙입양원에 이관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었지만, 이 사업의 대상이었던 아동 복지 시설은 입양 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시행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시설의 협조 여부가 사업의 질을 좌우할 수밖에 없었다.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장원은 원본 기록을 스캔하는 방식으로 사업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산화 자료의 무결성이나 진본성을 어떻게 담보할지 등에 대한 설계가 빠졌다. 이 때문에 이미 진행된 전산화 작업 전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세대 기록연구사인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장은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스캔 데이터의 경우, 그것이 진본과 같거나 진본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하는 ‘진본성’ 또는 ‘무결성’을 확인을 해줘야 한다”라며 보장원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런 장치를 두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조 전 원장은 “(기록의 내용이)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내용적으로 틀림이 없다고 해야 (그 기록에 기반해) 일을 할 거 아니냐”라고 덧붙였다. 

기록물을 구축하는 사업이었지만, 정작 기록 전문가가 초기 사업 기획 단계에 없었던 것도 문제다. 보장원의 전신이었던 중앙입양원에 기록 전문 인력이 처음 채용된 건 2017년이었다.  이미 사업이 시작된 지 4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사실상 특정 담당자, 특정 용역·감리업체가 사업을 전담한 것도 10년의 사업 기간 동안 여러 부실 논란을 낳은 원인이다. 이 사업의 용역과 감리는 거의 한 업체가 10년을 도맡았다. 보장원 내 사업 담당자 역시 여러 해 동안 바뀌지 않으면서, 내부 통제 기능이 약화됐다.  

당초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은 해외 입양인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사업의 부실 정황이 드러나면서 해외 입양인들에겐 오히려 상처가 됐다. 한분영 덴마크 한국인 진상조사 그룹(DKRG) 공동 대표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입양인들은 영원한 불확실성에 놓이게 되는 것”이라며 “그들은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계속 부유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에 대해서는 현재 보건복지부의 특별감사와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업 담당자들에 대한 징계나 예산 환수 등의 조치가 논의되고 있다. 책임자를 가려내는 것은 물론, 보장원이 당장 오류 투성이 입양 전산화 기록을 수정·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내년부터 보장원으로 이관될 입양 기록 관리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내년부터 국제 입양에 관한 법률안이 시행되면서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 기관의 기록이 의무적으로 보장원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보장원은 이 기록들을 전수 조사하고 목록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사업 목적 달성을 위해) 데이터 입력을 잘못한 것들을 계속 수정해 나가는 한편 앞으로의 사업도 잘 해야 한다. 기록을 보존할 서고 마련 등 (앞으로) 소장할 기록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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