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가 홈페이지에 '인신매매' 글 작성한 이유 [기업 인권경영 리포트⑬]
2015년 홈페이지에 '파타고니아와 인신매매' 글 공개
이주 근로자들 과도한 중개수수료로 인한 '현대판 노예제' 피해 알려
NGO와 공급사 대상 실사 나서
'이주근로자 고용기준' 확립해 공급사들에 적용 요구
지속적인 소통으로 확산 노력, 지원방안도 제시
공급사들도 긍정적 태도 보여
'파타고니아와 거래하는 업체'라는 '인증' 효과 이익 커
‘기업 인권경영 리포트’는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오른 인권경영과 관련된 글로벌 동향과 모범사례를 살펴봅니다. 해외 주요 선진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인권경영을 의무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지평의 인권경영 전문가들이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사점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2015년 6월 3일 글로벌 아웃도어 의류 업체 파타고니아의 공식 홈페이지에 ‘파타고니아와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파타고니아는 2011년 대만의 공급망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중개인의 불법 중개수수료 문제가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었던 사실을 내부감사를 통해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대만에서는 노동중개인에 의한 채용이 합법이다. 하지만 공급업체들이 사용하는 노동중개인들은 법의 한도를 넘는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현대판 노예제'에 준하는 억압과 부채에 시달렸다. 파타고니아가 '인신매매'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이유다.
파타고니아는 사회적‧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남다른 공급망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에 이 같은 사실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기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품질, 사회, 환경, 경영능력’이라는 자체 공급업체 선정기준을 수립하고 1차 공급망을 대상으로 이를 적용해왔다.
공급망 관리와 관련한 내부 부서들은 각 비토권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부서라도 거부 시 공급업체로 선정할 수 없다. 2011년부터는 이러한 기준이 2차 공급망인 원재료/원단 공급업체에까지 확대 적용됐다. 공정노동협회(FLA)의 창립 구성원으로 공급망 선정과 관리에 대해 FLA의 모니터링과 관리·감독을 받고 있기도 했다.
파타고니아는 기존의 관리 체계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형식적인 실사의 과정에서 공급업체의 근로자들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실을 숨기기 마련이었다. 다국적 근로자의 언어를 알지 못해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파타고니아는 공급망의 인권이슈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비영리단체(NGO)인 베리테와 함께 4곳의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이주노동자 현황 실태조사를 위한 심층 실사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자체적인 ‘이주 노동자 고용 기준’을 확립했다. 이 기준은 △정당한 고용 및 근로계약 체결 △급여와 중개 수수료의 명시 △여권 유지 지원 △기본 생활 및 노동 환경 보장 △불만 사항 처리 및 절차 제도화 △노사 간 소통 정례화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파타고니아는 2014년 대만 공급업체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해 이주민 근로자에 대한 수수료 부과를 중단하고 이미 수령한 법정 한도를 초과하는 수수료는 근로자에게 상환하도록 하는 등의 새로운 방침을 설명했다.
이런 새로운 기준이 부담되지 않도록 공급업체들과 지속적인 소통과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 지원방안도 함께 고민했다. 공급업체에 주기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력에 대한 비용을 약 9배 높였다.
파타고니아는 공급망 전반에 걸친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타 회사에 이주노동자 고용기준을 함께 적용하자고 제안하고 협력했다. 대부분의 글로벌 브랜드들은 의류업계 전반의 공급망 생태계가 건강해져야 한다는 명분에 동의했다. 더 나아가 대만의 노동부 장관을 만나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하기도 했다.
공급업체에서 이와 같은 요구에 응하는 것은 파타고니아가 그만큼 안정적이고 신뢰가 높은 거래처이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는 공급업체들과 20년 이상 계약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업체의 역량이 높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이에 따라 공급업체의 경쟁력이 강화된다. 파타고니아와 거래하는 업체라는 측면에서 업계에서의 긍정적인 평판도 얻게 된다.
한 유기농 이유식 회사의 CEO가 파타고니아의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에게 공급망 관리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공급업체가 제품을 생산할 때 유기농 식자재를 사용하는 데 만족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대규모 공장식 농장에서 유기농 당근을 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근로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책임감 있게 답할 수 있다면 회사와 공급망이 사회환경에 유발하는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권과 지구환경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와 지속적 노력은 오늘날의 파타고니아를 만든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지현영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ESG특별위원회 위원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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