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노트]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한미반도체, 검증의 시간

이달 초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Citi)가 한미반도체에 대한 커버리지(분석) 중단을 결정했다는 ‘썰’이 흘러나왔다. 공식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다만 시장에서는 몇 차례 ‘매도’ 의견을 고수해 온 씨티가 일부 주주들의 거센 항의와 원성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같은 뜬소문이 회자되는 현상은 현재 한미반도체를 둘러싼 투자자들의 기대와 감정이 얼마나 과열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JP모건과 씨티 등 주요 글로벌 IB들은 최근 내놓은 리포트를 통해 한미반도체에 대해 투자 비중 축소를 권고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언급한 표현은 “고평가”, “과도한 프리미엄”이다. 한미반도체가 지닌 기술력과 업황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현재 주가에 반영된 기대 수준이 기업의 단기 실적 흐름을 상당히 앞질러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는 숫자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 251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6% 감소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4분기 실적은 처참하다. 영업이익 2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6% 급감하며 시장 예상치(컨센서스)를 무려 40~60% 하회했다. 시장에서는 주력 제품인 TC본더 매출이 2023년 말 이후 최저 수준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객사들이 HBM4 양산 시점을 올해 초로 늦추며 장비 주문을 이월한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한미반도체 종가는 20만9500원을 기록했다. 최근 3개월간 주가 상승률만 59.8%에 달한다. 올해 첫 거래일 약 13조8000억원이었던 한미반도체의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약 20조원까지 오르며 한 달여 만에 7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실적은 주춤한데 주가는 역대 최고 수준을 넘보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투자자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근거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자리한다. 올해 상반기부터 메모리 제조사들이 HBM4 양산을 본격화하면 TC본더 주문이 폭발적으로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됐다. 아울러 차세대 공정인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이 지연되면서 향후 1.5~2년은 한미반도체의 플럭스 방식 TC본더가 독점적 지위를 누릴 것이라는 관측도 주가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냉정한 자본시장에서 기대감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현재 한미반도체의 밸류에이션은 올해 예상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약 51배 수준으로, 동종 업계 평균(37배) 대비 30~40%의 과도한 할증을 받고 있다. 이는 향후 실적 회복과 주요 고객사향 공급 확대가 가시적으로 확인된다는 전제 위에서 형성된 가격이다. 기대가 현실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밸류에이션 조정은 불가피하다.

결국 쟁점은 글로벌 IB의 시각이 옳으냐 그르냐의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지금의 가파른 주가 상승을 정당화할 만한 실적 성장이 실제로 증명되느냐가 핵심이다. 향후 발표될 분기 실적에서 눈에 보이는 수주 잔고의 확대와 확연한 영업이익 개선세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높은 주가는 실체 없는 기대감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린치는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 기억하라, 주식은 당신이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The stock doesn't know you own it)”고 조언했다. 투자자가 특정 종목에 감정적으로 몰입해 ‘믿음’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순간, 시장의 냉정한 신호를 외면하게 된다는 경고다. 기업에 대한 신뢰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나, 자본시장에서 가치를 증명하는 최종적인 힘은 결국 ‘숫자’에서 나온다. 한미반도체를 향한 지금의 열기가 실질적 가치에 근거한 ‘투자’인지, 아니면 확증 편향에 갇힌 ‘사랑’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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