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전면금지가 전면재개를 어렵게 해
방카슈랑스채널 규제완화조치 실효성 없어
ELS 판매규제, 시장은 줄이고 리스크는 확대
시장은 물과 같아서 담는 그릇인 제도와 규제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특히 신뢰를 바탕으로 정보가 유통되는 금융시장에서 정책은 유리그릇 다루듯 신중해야 한다. 신뢰와 정보의 바다에 떠 있는 유리그릇은 한번 깨지면 원상회복이 어렵다. 극단적인 정책이나 현실을 벗어난 제도는 본래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큰 경우가 많다. 의도가 선한 규제의 역설이다.
지난해 11월 홍콩 IR행사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매도 전면금지가 ‘글로벌 자본시장 기준으로 보면 낯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2023년 11월 기관과 외국인의 불법공매도 해결을 명분으로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 이후 1년 3개월이 지나고 있다. 최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올 해 3월말까지 무차입공매도 체크시스템 등 감시인프라와 관련제도가 완비되는 대로 공매도 재개를 예고했다.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는 본래 취지가 나쁜 것이 아니다. 공매도 제도를 악용해 불법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탈행위가 문제인 것이다. 거짓정보로 시장을 교란시키며 이득을 취하는 것은 불법이다. 과대평가된 주식을 시장이 알아보지 못할 때 공매도를 통해 시장에 알리는 것은 투자자에게 도움이 된다. 공매도가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과하게 부풀려진 주가를 ‘적정 가격’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공매도로 주가가 하락한 것은 ‘사실(fact)’이지만 공매도 배경이 무리한 과대평가 영향인지 불법 허위정보 때문인지 ‘진실(truth)’은 나중에 밝혀진다. 주식을 이미 보유중인 공매도 반대론자에게 공매도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가가 하락한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아직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예비 투자자는 정보의 ‘진실’이 중요하다.
공매도 전면규제는 허위정보나 지나친 낙관으로 만들어진 버블을 시장 자율 기능으로 해소할 기회를 빼앗아간다. 주가가 과대 평가됐다고 믿는 비관적 투자자가 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아예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는 낙관론자만 남는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주가가 하락했다면 시장참여자 모두 루저(loser)가 된다. 2월11일 코스피(KOSPI) 종가(2539.02포인트)는 공매도 전면금지 다음날(2023년11월6일)의 코스피 수준(2502.37포인트)을 1년 3개월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93개 주식시장 가운데 상승률 꼴지를 겨우 면한 국내시장이 공매도 전면금지 덕을 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3월말로 예정된 공매도 전면허용은 주식 약세장에서 ‘모멘텀 투자’(상승주식은 사고, 하락주식은 파는 투자전략) 확대로 단기적 변동성을 키우며 ‘죄 없는 공매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을 키운다. 공매도 전면금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투자자의 신뢰회복과 시장기능의 정상화가 지체되는 부작용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 같다. 공매도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기능이 인정되면 전면금지와 같은 극단적 조치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옳았다.
올 해 1월21일 제6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은행의 보험사별 판매비중 규제가 무려 19년만에 완화됐다. 생보사는 25%에서 33%, 손보는 25%에서 50%(4개사 이상 참여시) 또는 75%(4개사 미만 참여시)로 확대됐다. 2003년 ‘금융기관보험대리점제도’ 도입 당시 50%로 출발했지만 보험업계의 줄기찬 ‘항의’로 2005년 25%로 강화된 규제가 그동안 유지돼 왔다.
방카슈랑스제도는 금융규제가 현실에서 보여줄 수 있는 비효율의 전형이다. 방카채널은 저축보험을 제외한 자동차보험 종신보험 CI보험(Critical Illness, 암 뇌졸증 등 심각한 질병보험)은 판매할 수 없다. 점포당 판매인력은 2명을 넘지 못하며 판매장소는 은행 영업점내에 지정된 장소로 제한된다. 고객이 상담을 요청해도 별도 지정공간이 아닌 객장내에서는 상담할 수 없다. 상품 인력 영업장소에 대한 규제는 변함이 없고 제휴보험사 1곳당 판매비중만 부분적으로 완화한 것이다. 그 마저도 금융지주계열 보험사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생보 25% 손보 33%를 넘지 못한다.
금융위는 방카채널이 소비자 친화적 채널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모집수수료는 GA나 전속설계사보다 50~70% 저렴한데 불완전판매비율은 다른 경쟁채널의 25~3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방카채널의 장점을 살려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할 필요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판매상품이나 마케팅인력 판매장소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완화가 없다면 큰 의미가 없다. 현재 3개사로 줄어든 손보사의 방카비즈니스 참여확대나 금융당국이 기대하는 제도개선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조만간 금융당국이 은행의 공모형 지수연계상품(ELS) 판매방식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해 금융당국의 강력한 요구를 수용해 ELS손실배상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우리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은행이 ELS판매를 사실상 중단했다. 2023년 28조 5447억원에 달하던 ELS 발행잔액이 2024년 14조 9286억원으로 50% 가까이 감소했다.
2019년 해외 금리연계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판매 여파로 금융당국이 내놓은 대응책이 은행창구에서 ‘고난도 금투상품’ 판매를 금지한 것이다. ‘고난도 금투상품’은 파생결합 등 상품구조가 복잡하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20% 이상인 금융상품이다. 다만 시장의 불만을 고려해 코스피200 에스앤피500 유로스톡50 홍콩H지수 니케이225 등이 포함된 ‘공모형’ 지수연계상품으로 최대원금손실 20% 이내인 상품의 은행창구판매는 허용했다. 판매한도는 2019년 발행잔액 35조원이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가 개최한 ‘ELS대책 세미나’에서 제시된 ‘지역별 거점점포’를 중심으로 ‘고난도 금투상품 전용판매 창구’를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전면판매금지’와 ‘일반점포내 전용판매창구운용’의 중간수준 규제를 선택한 것이다. 예적금창구와 물리적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경험 많은 판매전문인력을 배치하는 등 엄격한 차이니스월(Chinese Wall)을 구축해야 한다. 성과평가지표(KPI)도 고객이익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홍콩H지수연계 ELS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경영진은 내부통제책임자로서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지역별 거점점포’로 판매창구를 한정하면 고객접점이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판매가능한 영업점을 몇몇 거점점포로 한정하는 것은 매우 원시적인 조치다. 2019년 이후 6년만에 취해진 규제강화로 ‘고난도 금투상품’의 은행창구판매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방카슈랑스 사례처럼 장기적으로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고 증권사 등 특정채널에 금투상품 리스크가 집중돼 시장의 파이는 축소되고 금융시장 리스크는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독설과 냉소로 권력자를 비웃고 조롱하면 일반대중은 속이 시원하다. 마찬가지로 극단적 정책은 잠시 통쾌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변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허망하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제도와 정책은 공허하고 실생활의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허정수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