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경 밀어낸 필리핀 해경의 역공

최근 필리핀 해안경비대(PCG)는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으로 진입한 중국 해경선을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서 포착하고, 반복적인 퇴거 경고 방송과 함께 근접 기동으로 압박을 가했다. 그 결과 중국 해경선은 필리핀 잠발레스 해안선에서 약 135해리 떨어진 해역까지 물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전까지는 중국 해경·해상민병대 선박이 물대포·위협 기동으로 필리핀 공용·민간 선박을 밀어내는 장면이 더 익숙했지만, 이번에는 필리핀 측이 주도권을 쥐고 “우리 EEZ 안에서는 물러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필리핀 정부 대변인은 공식 성명을 통해 “필리핀의 합법적 순찰 활동을 방해하는 시도에 단호히 대응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군·해경 총동원해 맞불…어선 공격까지

중국은 곧바로 군과 해경을 전면에 내세워 맞대응에 나섰다. 인민해방군 남부전구는 필리핀 소형 항공기가 황옌다오(스카버러 암초) 상공을 침범했다며 경고 후 쫓아냈다고 발표하고, 이 지역이 “중국의 고유 영토이자 주권이 미치는 영공”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시기 중국 해경선은 스카버러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필리핀 어선 20여 척을 향해 고압 물대포를 발사해 최소 3명의 어민이 부상을 입고, 어선 2척이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했다는 필리핀 측 발표도 뒤따랐다. 일부 중국 측 보트는 필리핀 어선에 접근해 닻줄을 고의로 절단했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단순 ‘영해 진입 경고’를 넘어 실질적인 생명·재산 위협 행위라는 비판이 거세다.
갈등 누적…충돌 사고도 잇달아 발생

이번 사태는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최근 일련의 충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2024년 10월에는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재보급선을 직접 들이받는 장면이 공개됐고, 그보다 앞선 8월에는 필리핀 해경을 추적하던 중국 해경선이 자국 해군 함정과 부딪히는 이례적 사고까지 있었다. 그 밖에도 인공섬 인근에서의 근접 기동, 레이저 조준기 비추기, 통신 교란 의혹 등 양측이 서로를 상대로 ‘위험한 경고 신호’를 주고받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카버러 암초 일대에서의 물대포 사용과 어민 대상 물리적 위협은, 작은 오판 하나가 곧바로 인명 사고나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국제법과 힘의 논리가 충돌하는 남중국해

중국은 여전히 ‘9단선’(현재는 10단선으로 확장) 주장을 앞세워 남중국해 대부분이 자국의 역사적 권리 수역이라고 주장하지만, 2016년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역사적 권리를 인정할 수 없으며, 필리핀 등 연안국의 EEZ 권리가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중국은 판정을 “무효”라고 일축하고 인공섬 건설·군사기지화·해경법 개정 등으로 사실상의 지배력을 강화해 왔다. 필리핀은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일본·호주·한국 등과의 안보 협력을 바탕으로 국제 여론전에 나서고 있으며, 이번 스카버러 암초 사건 역시 미국·EU·일본 등이 잇달아 우려 성명을 내는 계기가 됐다. 법과 외교, 그리고 해상에서의 힘의 시위가 동시에 맞부딪치는 전형적인 ‘그레이존 분쟁’ 양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태도 변화와 역내 안보 구도

이전 정부와 달리 현 필리핀 정부는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에 저자세로 일관하기보다, 자국 권리와 안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방어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군의 현지 기지 이용 확대, 연합 해상훈련 강화, 일본·호주와의 방산·안보협력 심화 등 일련의 조치는 모두 남중국해에서 중국 압박을 버티기 위한 방어선 성격을 갖는다. 이번에 필리핀 해경이 중국 해경선을 역으로 밀어낸 사건도, 그동안 “참고 물러나던” 패턴에서 벗어나 자국 EEZ 안에서는 더 이상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를 좌시할 경우 연안국들의 ‘집단 반발’을 자극할 수 있어, 해경·해군을 통해 계속 압박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우발적 충돌 막으려면…국제 안전장치 시급

남중국해는 글로벌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는 전략 요충지이자, 각국의 에너지·어업 이해가 얽혀 있는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중국과 필리핀처럼 군·해경·민간 어선이 뒤엉킨 상태에서 물대포, 근접 기동, 추돌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에는 의도치 않은 사상자나 군사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분쟁 당사국 간 직통 통신선 강화, 우발 충돌 방지 규범(CUES) 준수, 제3국·국제기구가 중재하는 공동조사·공동순찰 체계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서둘러 가동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과 필리핀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더라도, 해상에서의 위협 행동 수위를 자제하고 국제법·국제 규범을 기반으로 갈등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남중국해는 단순한 영유권 분쟁을 넘어 역내 전체 안보를 뒤흔드는 위험변수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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