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수엘라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며 야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6 WBC 결승에서 미국을 3-2로 꺾고 정상에 오른 베네수엘라는 그동안의 설움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했던 미국 야구 대표팀이 결승 문턱에서 무너졌다. 진짜 주인공은 WBC 결승에 처음 발을 디딘 베네수엘라였다. 8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일본을 제압했던 베네수엘라는 준결승에서 이변의 주인공 이탈리아를 넘어서며 마침내 세계 최강 미국마저 굴복시켰다.
경기의 흐름과 결정적 순간들

베네수엘라는 3회초부터 공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살바도르 페레스의 우전 안타와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의 볼넷으로 기회를 만든 뒤, 미국 선발 놀런 매클레인의 폭투를 틈타 마이켈 가르시아가 희생타로 선취점을 뽑아냈다.
5회에는 윌리에르 아브레우가 매클레인의 공을 담장 너머로 날려 보내며 2-0으로 달아났다. 베네수엘라 투수진은 미국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며 리드를 지켜나갔다. 선발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부터 시작해 에두아르드 바사르도, 호세 부토, 앙헬 세르파, 안드레스 마차도까지 이어지는 릴레이 투구가 빛을 발했다.

하지만 8회 브라이스 하퍼가 마차도를 상대로 2점 홈런을 터뜨리며 2-2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 분위기가 급격히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했지만, 베네수엘라의 뒷심이 진가를 발휘했다.
우승을 결정짓는 9회의 드라마

9회 루이스 아라에스가 볼넷을 골라 나간 뒤 대주자 하비에르 사노하의 도루로 득점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에우헤니오 수아레스가 좌중간에 떨어지는 결승 2루타를 날리며 3-2로 다시 앞서갔다. 9회 말 다니엘 팔렌시아가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베네수엘라의 감격스러운 첫 우승이 확정됐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마이켈 가르시아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타율 0.385, 10안타, 7타점을 기록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가르시아는 베네수엘라는 그동안 우승이 없다는 이유로 과소평가됐다며, 이제 세계 1위 팀이 베네수엘라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치적 긴장 속에서 피어난 승리

이번 결승은 단순한 야구 경기를 넘어 정치적 의미까지 담고 있었다. 지난 1월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이후 양국 관계는 극도로 긴장된 상태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결승을 앞두고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선수들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오직 야구에만 집중했다. 팀의 간판 선수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는 경기 전 우리는 야구에 대해 말하기 위해 여기 왔다고 말하며 선수로서의 자세를 보여줬다.
온 나라가 들썩인 우승 축제

베네수엘라에서는 우승 직후 대규모 거리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시민 수천 명이 광장에 모여 국가를 부르며 밤늦도록 축제를 벌였다. 임시 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는 이번 우승을 기념해 전국 공휴일을 선포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이번 우승은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한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한 카라카스 시민은 세계 강대국인 미국을 이겼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이 승리는 베네수엘라 국민 모두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WBC 첫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를 넘어 국가적 자긍심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