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탄 껍질을 벗겨내고 맛본 마시멜로처럼 [보이지 않는 가슴]

베란다 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거실 마룻바닥에 격자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마룻바닥이 고마워서 아침부터 정성 들여 청소를 하게 되었다. 잠을 충분히 자고 난 다음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집 안 구석구석엔 넷째와 막내가 가지고 놀다가 내버려 둔 인형이며 블록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상하게 어질러진 장난감조차도 귀여웠다. 내 물건 내놓으라고 실갱이를 벌이고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들이며 자기 전에 모두 정리를 마쳐야 한다고 잔소리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엊저녁엔 그렇게 속이 상했는데 말이다. 맥스 모드로 올린 청소기로 집을 한바퀴 돌고나서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닥을 확인하고는 아침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이미지 : istock의 LARISA SHPINEVA

명절에 이어 막내 생일을 보내느라 먹을 것이 많았다. 소고기 불고기에 잡채와 미역국을 덥혀서 상에 내었다. 찐 양배추와 양념장이랑 배추김치도 곁들였다. 꽤 근사한 메뉴였지만 아이들 젓가락질은 시큰둥했다. 며칠 연달아 먹은 음식이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냉장고를 채운 음식들을 외면하고 또 다른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이모 이거 다 같이 먹으라고 사신 거예요?"
"
내가 정신없이 동생들 것만 사 왔네. 미안."
"아니에요."

밥을 다 먹은 넷째가 마시멜로를 집아들자 모든 아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꽂혔다. 장을 볼 때마다 아이들 수대로 과자를 사 오고는 했는데, 엊저녁에는 그만, 장바구니를 들고 따라 나온 꼬맹이 두 녀석에게만 과자를 한 봉지씩 더 집어오도록 하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봉지가 크니까 이건 나눠 먹자."
내 말을 들은 넷째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니에요. 저희는 안 먹을래요."
동생이 인상 쓰는 걸 보고 나서 빈정 상한 큰 아이들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오늘 아침에는 나무젓가락에 마시멜로를 꽂아서 모두 함께 구워 먹어보자. 어때?"

아직도 밥을 물고 오물거리는 막내만 식탁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릴 뿐, 밥을 다 먹어치운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저마다 나무젓가락에 마시멜로를 꽂고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별 것 아닌 마시멜로 한 조각 때문에 죄다 기분이 좋아져서 종알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탄 거 아니야?"
"
아니야. 나는 더 태워서 먹는 게 맛있더라."
"뭐야, 이거 껍질처럼 벗겨진 부분에서는 완전 달고나 맛이 나는데?"
"
언니는 마시멜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맛있어하네."
"그래, 생각보다 맛있네."
"
으이이잉~ 나는 완전 다 태워버렸어."
"어 그래 많이 타버렸네. 그래도 괜찮아. 언니가 탄 부부만 벗겨줄 수 있어. 벗기고 먹으면 돼."
"
우와 진짜 진짜네. 언니 고마워. 완전 고마워."

이미지 : istock의 Liudmila Chernetska

가스레인지 앞에서는 마시멜로 굽는 냄새가 달콤했고 등 뒤에 비치는 햇살은 환했고 아이들이 즐거워서 내는 웃음소리는 가슴을 벅차게 했다. 오늘은 이사회 자료와 회계자료를 정리해 보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들쑤셔놓은 주방부터 정리를 마쳐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 빨래도 세 통 돌려서 널어 정리 해야 하고, 수시로 이모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막내와 화가 나서 떼를 쓰는 넷째를 보면서 또다시 복장을 터뜨리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빛나던 이 순간은, 지난한 그 시간을 겪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선물이 틀림없었다. 까맣게 탄 껍질을 벗겨내고 맛본 말랑말랑 달콤한 마시멜로 같은. 아주 짧은 한순간의 기쁨 때문에 아주 긴 시간의 힘듦이나 지루함 같은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지고는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반짝하면서 그런 순간이 나를 치고 들어왔다. 나른한 햇빛 때문인지 마시멜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 2022년 2월 어느날 일기장에서

지나 그림

* 보이지 않는 가슴 - 글쓴이 수영

아동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내 시간의 45%는 네 아이와 함께 그룹홈에서 보내고, 나머지 55%는 내가 낳은 두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에서 보냅니다. 집과 일터, 경계가 모호한 두 곳을 오가며 겪는 분열을 글쓰기로 짚어보며 살아갑니다.

그룹홈에서 일하는 보육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룹홈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가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로 나누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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