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에 지쳐 떠나는 간호사들, 성균관대 공대생이 떠올린 아이디어
간호인력 업무 부담 완화 음성인식 기반 스마트병원 플랫폼
간호사의 또 다른 명칭은 ‘백의의 천사’다. 간호사들은 의료적인 수단으로 환자들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환자의 불안한 마음까지 달래 주며 헌신한다.
하지만 천사들의 날개가 꺾이고 있다. 과중한 업무 부담과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다. 이런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도 많다.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국 10곳의 국립대병원 퇴사 간호사 중 43.6%가 입사 1년도 되지 않은 신규 간호사로 집계됐다. 간호사의 퇴사는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에 직격탄이 된다.
케어마인더의 강준구(26) 대표는 언제까지나 간호사의 헌신에 기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음성인식 기반 간호사 업무 분담 솔루션 케어보이스를 개발한 계기다. 그를 만나 간호사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성균관대생이 병원에서 발견한 뜻밖의 현상
강 대표는 성균관대에서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이지만 창업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학부생 시절 다양한 공모전에 도전했고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다. 서비스 기획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동대학 서비스융합디자인과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지난해 참여한 한 프로젝트가 창업의 단초가 됐다. “삼성서울병원의 환자경험 및 의료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병원 내부를 관찰하고 이해관계자를 인터뷰해서 문제점을 발견한 뒤, 솔루션을 도출하는 프로젝트였죠. 이곳에서 간호사들이 무작위 요청 때문에 업무에 차질을 빚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환자가 어떤 요청을 하면 요청을 받은 간호사는 일을 잠깐 중단하고 담당 간호사에게 그 요청을 전달해야 합니다. 담당 간호사는 해당 요청을 자신이 해야 할지, 조무사가 해야 할지 업무를 분장해야 하고요.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요청까지 더해지면 일이 이중, 삼중으로 늘어납니다. 업무를 자동으로 분장해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어요.”
환자를 대면하지 않아도 환자의 요청을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했다. 아이디어 단계였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삼성서울병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참여한 대학연합창업캠프에서도 ‘시장에서 유의미한 반응이 올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이 캠프에서는 수원시장상을 수상했죠. 캠프를 마무리하고 2023년 8월부터 예비 창업팀으로 출발했습니다.”
◇간호사 줄퇴사, ‘태움’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최소기능모델(MVP)부터 만들기로 했다. 솔루션을 구체화하기 위해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환자, 간호사, 병원장, 병원 행정국장 등 다양한 종류의 병원의 이해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다녔습니다. 총 인터뷰 건수가 100건이 넘어요. 저희의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병원이 어디인지, 어떤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꼼꼼하게 검증하고 다녔습니다.”
간호사들이 처한 환경은 가설보다 훨씬 열악했다. “간호사들이 환자를 응대하면 감정소모만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일에 차질을 빚어요. 그렇다고 응대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큽니다. 간병인 업무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업무에 통합하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도입한 병동에서는 더 심각합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서비스지만, 간호사 입장에선 업무가 가중될 수밖에 없어요. 기존의 간호사 인력으로 간병 업무까지 수행해야 하니까요. 악영향은 환자에게도 전가될 수 있어요. 가장 단적인 공간이 응급실입니다. 사실 응급실 방문자 중 절반 가량이 경증이나 비응급 환자입니다. 이분들이 사소한 요청을 쏟아내면 진짜 위급한 환자에게 집중할 겨를이 없어요.”
이런 환경은 간호사의 퇴사로 귀결된다. 결국 병원 경영에도 악재가 되는 것이다. “병원 운영자들은 간호사 재고용과 재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어요. 간호사의 퇴사를 막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한 곳도 있었죠. 하지만 서비스들이 파편화돼서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서비스별로 요금을 따로 내는 게 번거롭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병동 내 불편점을 하나로 수렴한 서비스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수요를 확인했습니다.”
◇핵심은 목소리에 있었다
환자의 요청을 수렴하는 수단으로 ‘태블릿’을 택했다. “처음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떠올렸는데요. 중장년층 환자에게 병원만을 위한 앱을 깔고, 회원가입 하도록 유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키오스크 역시 적합하지 않았어요. 아픈 사람이 원하는 요청을 일일이 찾아서 누르게 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봤죠. 사실 키오스크 방식의 스마트 병원 솔루션은 이미 존재합니다. 다만 활용되지 못하고 있죠. 대부분의 환자가 귀찮아서 쓰지 않고 간호사를 불러서 요청을 전달하니까요.”
관건은 환자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구두로 요청을 전달하는 습관에 착안해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서비스명도 ‘케어보이스’로 지었다. “최근에 도입된 돌봄 로봇이 힌트를 줬어요. 로봇이 노인과의 대화를 토대로 돌봄을 수행하는 로봇인데요. 환자들이 음성으로 요청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게 하면 심리적 장벽을 낮출 수 있겠다 싶었어요. 시각적인 유도 수단도 도입했어요. 태블릿 화면 절반을 음성인식 권유 이미지로 구성했죠.”
핵심은 요청의 옥석을 가리고, 업무 분배를 대신해주는 것이다. “케어보이스는 단순 요청 전달 매개가 아닙니다. 간호사에게 전달되는 요청의 수를 줄이는 게 진짜 목표였어요. 만약 환자가 구두로 병원 화장실 위치를 묻거나 주차 정산 같은 기초적인 일을 요구한다면 태블릿 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요청이 들어오면 인공지능(AI)이 간호사 업무인지 조무사의 업무인지 구분합니다. 담당 간호사가 업무 분장을 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어졌죠.”
◇병원이 환자와 간호사 모두 웃을 수 있는 공간이 되게
지난 1월 MVP 개발을 마무리하고, 3월 아주대병원 개방형실험식 구축 사업에 선정돼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솔루션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난 8월 케어마인더 법인을 설립했다. 회사가 수면위에 떠오르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수원창업오디션, 네이버 캠퍼스 기술창업 공모전에서 수상한데 이어 지난 11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등용문 중 하나인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도전트랙부문 우수상과 인기상을 받았다.
고령화로 환자는 늘지만 간호인력은 부족한 지방의 병원이 케어보이스에 환호했다. 병원 2곳과 계약을 완료하고 도입을 앞두고 있다. 이용법은 간단하다. 우선 태블릿에 케어보이스를 설치한다. 모든 종류의 태블릿에 설치 가능하다. 환자가 케어보이스에 음성으로 요청을 전달하면 AI가 요청을 텍스트 데이터로 전환해 요청을 화면에 띄워준다. 간단한 요청은 AI가 해결하고, 사람이 필요한 요청은 관련자에게 전달된다. 간호사와 조무사의 일도 나눠준다. 간호사는 공용 모니터를 통해 들어온 요청을 확인할 수 있다. 요청을 기준으로 대화방이 생성돼 환자와 채팅 대화가 가능하다.
내년에 케어보이스를 2000병상 이상 규모로 납품하는 게 목표다. 케어보이스를 기존의 의료 플랫폼과 통합하고 싶다는 야심도 있다. “지금까지는 비의료적인 분야 개선에 집중했지만, 추후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 시스템을 하나로 묶은 통합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현실화되면 환자의 의료기록과 처방내역을 관리하는 EMR(환자 차트를 전산화한 시스템)까지 아울러 간호사들의 업무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진할 수 있겠죠.”
병원이라는 공간이 환자와 간호사 모두가 웃으며 떠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환자들은 처음 내원했을 때보다 좋은 모습으로 병원을 떠납니다. 그게 병원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건강을 회복하고 병원을 떠날 수 있는 배경엔 간호사들의 헌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희생을 강요당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간호사들이 웃으며 근로해도 병원이 완벽하게 운영되는 게 바람직한 풍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