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차이 선후배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녀' 사이라는 두 배우

<파과> 이혜영

최근 영화 <파과>에서 60대 킬러 ‘조각’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이혜영. 나이를 잊은 강렬한 연기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관객을 압도한 그는, 여전히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데뷔 이후 40년 넘게 영화와 드라마, 무대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 온 이혜영에게 남다른 가족사가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문숙, 이혜영

1954년생 문숙과 1962년생 이혜영. 단 8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이 두 여배우는 그간 각자의 자리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오며 종종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둘을 절친한 선후배 사이라고만 여겨왔지만 실제 이들의 관계는 모녀 사이다. 이 놀라운 사실 속에는 알고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만희 감독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이혜영은 故 이만희 감독의 막내딸이다. <만추>(1966), <휴일>(1968), <삼포 가는 길>(1975)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긴 이만희 감독은 1974년 영화 <태양 닮은 소녀>를 통해 당시 고등학생 신인이던 문숙을 발탁한다. 이 작품은 문숙의 스크린 데뷔작이자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의 시작이었다. 무려 23살이라는 나이 차와 세 자녀를 둔 이혼남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고, 이듬해 조용히 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세간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치른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태양을 닮은 소녀> 문숙

문숙은 한 인터뷰에서 “감독님 댁에 처음 갔을 때, 자양동의 한옥집에 세 자녀가 있었다. 그중 막내가 혜영이었고, 날 보며 해맑게 웃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혜영은 아버지의 새 연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둘은 곧바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목욕탕에 함께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동네 가게에서 군것질을 함께 즐기는 모습은 여느 자매와 다름없었다.

<삼포 가는 길>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만희 감독은 결혼 1년 만인 1975년, 영화 <삼포 가는 길> 편집을 마친 직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마흔넷. 충격적인 비보는 가족은 물론 한국 영화계 전체에 큰 슬픔을 안겼다. 남편의 사망 이후 문숙은 당시 어린 나이에 아내가 된 자신을 주변에서 쉬운 상대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것에 큰 실망을 느끼고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한다. 이후 미국인 사업가와 재혼해 두 아이를 낳고 긴 공백기를 보냈다.

<킬힐> 이혜영

한편, 이혜영은 성인이 된 후 본격적으로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특유의 도회적이고 고혹적인 이미지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2000년대에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강한 모성애와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 ‘오들희’ 역으로 다시 한번 연기력을 입증했다. 당시 이혜영은 “연기가 즐겁다고 느낀 건 처음”이라며 진심 어린 소회를 전한 바 있다.

이혜영, 문숙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두 사람은 이후로도 끈끈한 정을 이어갔다. 2015년, 이만희 감독 40주기 추모전 행사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참석해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며 눈길을 끌었다.

<뷰티 인사이드> 문숙

문숙은 이후 영화 <뷰티 인사이드>(2015)를 통해 무려 38년 만에 연기에 복귀했고, <허스토리>, <사바하>, <경이로운 소문> <마스크걸>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