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뷰티,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었던 Y2K 유행이 저물고, 해외에서는 이제 새로운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그때 그 시절 감성’으로 통하는 ‘프루티거 에어로(Frutiger Aero)’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너, 프루티거 에어로
Y2K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패션, 문화, 음악 등을 의미한다면, 프루티거 에어로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의 트렌드를 뜻한다. ‘프루티거 에어로’라는 이름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자주 사용되었던 서체 ‘프루티거’와 2006년 출시된 윈도우 비스타 UI 테마 이름인 ‘에어로’를 합성해 만들어졌다.
프루티거 에어로 스타일은 ‘광택’, ‘자연’, ‘열대어’, ‘물방울’ 등의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다. 반짝이는 물방울이 여기저기 튀기는 가운데 열대어가 헤엄쳐 다니는 촉촉하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한때 광고나 컴퓨터 배경화면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그 디자인이 바로 프루티거 에어로다.

디지털 세상이 막 열리던 그 시절
프루티거 에어로는 ‘스큐어모피즘’이라는 디자인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다. 스큐어모피즘이란, 대상의 질감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적 그래픽 기법을 의미한다. 프루티거 에어로 스타일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2000년대 중후반은 아이폰을 비롯해 각종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삶의 중심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과 모바일 기반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다. 당시 컴퓨터와 스마트폰 인터페이스 디자인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새롭게 탄생한 디지털 기술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익숙한 모티브를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3차원적이고 사실적인 디자인 기법인 스큐어모피즘이 각광받기 시작한다.
스큐어모피즘은 스마트폰 어플 디자인부터 컴퓨터 배경 화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됐다. 애플의 iOS6 어플 디자인을 보면 카메라 어플에는 렌즈의 반짝이는 유리 질감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고, 뉴스 스탠드는 실제 책장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컴퓨터 배경 화면에는 물고기나 물방울, 새, 바다, 초원과 같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자연의 모습과 디지털 기기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미지들이 다수 사용됐다. 파란 하늘과 찰랑이는 맑은 물, 초원 위에 서 있는 나무와 컴퓨터 모니터 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미지는 기술이 가져다 줄 아름다운 미래를 상징하는 듯 반짝인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은 2010년 중반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디지털 세상에 익숙해지면서 실제 사물과 흡사하게 묘사해 인터페이스나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것이 불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세부 묘사 등의 그래픽 요소가 제거된 이미지들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다시 돌아온 프루티거 에어로
스마트폰, 로봇,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이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온 지금,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사이 어딘가의 감성인 프루티거 에어로가 Z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유행하고 있다. 프루티거 에어로 콘텐츠가 주로 공유되는 곳은 틱톡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릴스. 이들은 기존 브랜드 로고를 프루티거 에어로 감성으로 바꿔 보거나, 이 시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함께 몽환적인 음악을 넣어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만들고 있다.
프루티거 에어로 콘텐츠 댓글 란에선 ‘약속 받았지만, 오지 않은 미래’라는 글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 광고와 미디어에서 다뤘던 ‘자연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 줄 희망찬 미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진보된 과학기술이 일으키는 각종 사건이나 기후 위기 등이 대표적인 사회 문제로 손꼽힌다. 결국 프루티거 에어로의 재유행은 어린 시절에 대한 단순한 향수 뿐 아니라,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와 깊이 연결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보고 자랐던 유토피아적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낀 이들이 미래에 대해 품었던 기대감과 희망을 그리워하며 프루티거 에어로 콘텐츠를 찾기 시작했고,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콘텐츠를 확산시키거나 재생산하면서 20년 전 트렌드가 다시 우리의 눈 앞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프루티거 에어로가 주목받으면서 이러한 콘셉트의 작업물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2023년 공개된 걸 그룹 에스파의 <Better Things> 뮤직비디오와 같은 해 영국의 팝 가수 핑크 팬서리스가 발매한 <Nice to meet you> 뮤직비디오에는 열대어와 자연, 물방울,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스마트폰과 2000년대 중후반에 자주 볼 수 있었던 각종 패턴이 등장한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역시 프루티거 에어로 패턴을 연상케 하는 젤리 장식 포인트 컬렉션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패션, 음악 등에 관심 많은 Z세대가 자주 참고하는 이미지 사이트인 핀터레스트에서도 프루티거 에어로 콘셉트의 이미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Y2K를 잇는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는 프루티거 에어로. 2000년대를 살아 왔다면 모를 수 없는, 익숙하고도 반가운 이 이미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어떻게 재해석되어 트렌드를 이끌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4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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