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빚 300만원과 이자 합쳐 1311만원 갚아라”… 19년만에 날아든 청구서

이민준 기자 2023. 4. 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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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10년전 개인파산, 빚 다 청산했는데…
채권자가 바뀌어 카드사 아닌 ‘돈 받아주는 회사’
파산·회생 신청때 채권자 확인해야

10년 전에 개인파산을 하고 빚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60대 앞으로 약 19년 전의 카드 빚을 갚으라는 법원 판결문이 날아오는 일이 생겼다.

서울 마포구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한 상담관이 공적 채무 조정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자료 사진)/뉴스1

지난달 8일 제주 서귀포시에 사는 박모(61)씨는 서울서부지법에서 보낸 판결문 하나를 등기우편으로 받았다. 판결문을 읽고 박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19년 전인 2004년에 신용카드로 대출한 카드 빚 300만원을 갚으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자가 붙어 1311만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돈을 갚으라고 박씨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박씨가 사용했던 신용카드 회사가 아니라 한 ‘유동화전문유한회사’였다. 박씨 같은 채무자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야 하는 카드사 등의 채권을 싸게 매입한 뒤 채무자에게 대신 돈을 받는 곳이다.

박씨는 지난 2013년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해서 빚을 청산한 적이 있어 더 놀랐다고 한다. 박씨는 “그래서 그 뒤로는 성실하게 살면 빚에는 쫓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벼락을 맞은 기분”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박씨는 2003년쯤부터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농수산물을 파는 ‘다이궁(代工)’으로 일했다. 하지만 약 1억원의 투자 사기를 당해 빚쟁이가 됐다. 카드 빚도 이 당시 생겼다. 빚만 1억원이 남은 박씨는 여러 종류의 일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등 그 뒤로도 고난이 잇따랐다. 2007년에 귀국한 박씨는 성북구청에서 진행하는 부채를 줄이는 ‘자활 프로그램’에 들어가 빚 크기를 수년간 계속 줄였다고 한다. 그러다 2013년 개인파산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개명(改名)도 하고 전국을 돌며 닥치는 대로 일용직으로 일하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작년 말부터는 제주도에서 공공 근로 일자리를 구해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1000만원 넘는 빚을 갚으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박씨에게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전문가들은 개인회생 절차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한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파산‧개인회생을 신청할 때 신청인은 빚 원금과 남은 빚, 채권자 등 목록을 직접 써야 한다. 채권 주인이 바뀌었다면 신청인이 직접 새 주인을 알아내야 한다. 박씨가 2004년 진 300만원도 2013년쯤에는 채권이 이미 유동화전문회사 등으로 넘어가 있었는데 박씨가 이를 몰라 남은 빚에 포함하지 않았을 거라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변호사는 “채권 주인이 바뀌면 보통 채무자에게 연락이 가는데 외국에 있었던 분이고 오래전 일이라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았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은 또 박씨에게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채권자 목록 작성을 전적으로 신청인이 책임져야 하다 보니, 파산·개인회생이 끝난 뒤 새로 알게 되는 빚 때문에 다시 파산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채권이 생기는 시점부터 매매 이력을 보관하는 등 신용 정보 조회 때 채무를 모두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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