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이 유럽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인 FCAS에서 등을 돌리자 프랑스가 중동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중동 국가가 하필이면 한국과 KF-21 협력을 논의 중인 UAE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유럽 최강 전투기 제조국 프랑스가 왜 갑자기 UAE를 찾아갔을까요? 그리고 이것이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수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50년 넘게 함께해온 독일-프랑스 파트너십의 균열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독일, "이제 그만 헤어지자" 프랑스에 통보
독일과 프랑스의 미래 전투기 시스템(FCAS) 프로젝트가 파국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양국이 2040년을 목표로 공동 개발해온 6세대 전투기 사업이 독일 의회의 탈퇴 제안으로 좌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볼커 마이어-레이 독일 국회의원은 2025년 12월 17일 디펜스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반드시 같은 항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보수당 출신인 그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와 함께 프랑스 측과의 조율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공개적으로 토로했습니다.
특히 항공기 설계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죠.
마이어-레이 의원의 제안은 독일뿐만 아니라 스페인에도 적용됩니다.
그는 심지어 두 나라가 프랑스와는 별도로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유럽 방위산업 협력의 상징이었던 FCAS가 이제 해체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입니다.
다쏘 vs 에어버스, 주도권 싸움이 불씨
독일이 FCAS에서 발을 빼려는 핵심 이유는 명확합니다.
프랑스 다쏘항공이 프로젝트를 독점하고 있다는 불만 때문입니다. 베를린은 다쏘가 자사의 라팔 전투기 경쟁 우위를 FCAS에서도 그대로 가져가려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반면 독일 에어버스는 제대로 된 역할을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프랑스도 프로젝트에서 업무 분담 비율을 재조정하며 독일의 우려를 달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양국의 근본적인 의견 차이는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다쏘와 에어버스라는 유럽 항공우주산업의 양대 거인이 한 지붕 아래서 협력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기술적 주도권 다툼을 넘어선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양국의 전투 필요성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핵항모 vs 육상 방어, 애초부터 다른 길
메르츠 독일 총리는 프랑스가 FCAS에 탁월한 핵 능력을 갖추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는 항공모함 활용과 특수한 운반 시스템 통합을 포함한 핵 억지력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독일의 군사 전략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입니다. 독일은 현재로서는 항공모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럽 대륙 중심부에 위치한 독일은 육상 기반 방어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프랑스는 전 세계에 해외영토를 보유한 해양 강국으로서 항모 기반 전력 투사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죠.
메르츠 총리는 "FCAS 프로그램을 분리함으로써 우리는 국가 군사적 요구를 더 잘 충족하고 산업 협력의 장벽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독일은 자국만의 6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프랑스, 급히 UAE에게 러브콜
독일의 탈퇴 위협에 직면한 프랑스는 다른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쏘항공이 2040년까지 라팔의 후속 기종을 개발하려면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리고 프랑스가 선택한 곳은 중동,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였습니다.

UAE는 프랑스에게 매력적인 파트너입니다. 우선 UAE는 이미 라팔 전투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제 전투기의 성능과 운용 경험을 충분히 갖춘 국가인 것이죠.
게다가 UAE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방위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라입니다.
2025년 두바이 에어쇼에서 양측의 관계는 한층 더 공고해졌습니다.
다쏘항공은 UAE의 기술혁신연구소(TII) 및 첨단과학프로그램연구소(ASPIRE)와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에릭 트라피에르 다쏘항공 CEO는 "50년 이상 UAE의 신뢰받는 파트너인 다쏘항공과 TII 및 ASPIRE의 협력은 미래 혁신 제품 개발을 위한 핵심 기술 제공업체 간의 시너지를 강화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습니다.
"UAE 방공 생태계 전체를 책임지겠다"
트라피에르 CEO는 이번 협력이 단순한 전투기 판매를 넘어선다고 밝혔습니다.
"다쏘항공은 이번 협력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를 통해 UAE 전체 방공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고부가가치 제품과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는 동시에 최고 수준의 현지 인재를 육성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UAE 측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나즈와 아라지 TII CEO는 "첨단 기술은 국방 및 민간 부문을 혁신하고 다양한 산업 전반에 걸쳐 발전과 혁신을 이끌어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며 "이번 계약은 최첨단 연구를 실질적인 솔루션으로 전환하는 TII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며, UAE가 글로벌 R&D 선도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환영했습니다.
그는 또한 "다쏘항공과 함께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의 발전을 주도하고 항공우주 혁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라며 "동시에 이번 계약은 지역 인재 육성을 촉진하여 차세대 인재들이 미래의 기술적 혁신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단순히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UAE 자체의 방위산업 역량을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인 것입니다.
한국 KF-21과 삼각관계? UAE 선택의 시간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UAE가 한국의 KF-21 보라매 사업에도 관심을 보여왔다는 사실입니다.
UAE는 한국과 차세대 전투기 협력을 논의해온 중동의 주요 잠재 파트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UAE를 차세대 전투기 개발 파트너로 끌어안으려 하고 있는 것이죠.

UAE 입장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검증된 전투기 제조 강국이자 50년 파트너인 프랑스와 손잡을 것인가, 아니면 4.5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한 신흥 강자 한국과 협력할 것인가"를 선택할 기로에 놓여있는 것이죠.
프랑스는 유럽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지만, 한국은 더 유연한 기술 이전과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독일과 스페인을 대체할 FCAS 파트너로 UAE가 가진 잠재력은 분명합니다.
막대한 자금력, 이미 구축된 라팔 운용 경험, 그리고 자국 방위산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로서는 독일보다 훨씬 더 협력하기 쉬운 파트너를 찾은 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KF-21은 이미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실전 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기술 이전과 공동 개발에 있어 프랑스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UAE가 진정으로 자국의 방위산업 역량을 키우고 싶다면, 한국과의 협력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유럽 하늘에서 시작된 독일-프랑스의 갈등이 이제 중동 사막 위에서 한국-프랑스의 경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차세대 전투기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각축전이 본격화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