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환은 안 봐요"…'사마귀' 하나 치료할래도 피부과 찾아 삼만리

박미주 기자 2024. 10.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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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너도나도 미용의사 (上)
[편집자주] 피부과, 성형외과 등 미용을 주로 취급하는 인기학과의 의사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미용의료는 비급여 항목이 많고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얻을 수 있어 필수의료 인력 이탈을 부추기고 의료를 왜곡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미용으로 쏠리는 실태를 짚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단독]피안성정재영에 몰려간 의사들...인기과 5개월 새 57% 급증
일반의 진료과목별 근무현황/그래픽=이지혜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인기학과 의원에서 근무하는 일반의 수가 5개월 새 57%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와 비교해 일반의의 인기학과 쏠림 현상도 심해졌다. 의료수가 현실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표시과목별 의료기관 근무 일반의 현황(근무형태 전속)' 자료에 따르면 표시과목별 전문의 개설의원 중 인기 진료과목인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분야에 근무하는 인원이 올해 2월 231명에서 올해 7월 362명으로 56.7% 급증했다. 지난해 1월 인기과목 진료 일반의 수가 208명이었고 올해 2월에도 231명으로 200명대 수준이었는데 올해 7월 362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집단사직했고 올해 7월 일부 전공의들의 사직처리가 진행됐는데, 이후 사직 전공의들이 인기과목 진료에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과별로 보면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는 일반의 수가 115명으로 지난 2월 78명 대비 47.4%(37명) 급증했다. 피부과는 93명으로 43.1%(28명) 증가했다. 정형외과는 110명으로 100%(55명) 폭증했다. 재활의학과 근무 일반의는 16명으로 128.6%(9명) 늘었다.

진료과목 표시 전문의 개설의원에 근무하는 전체 일반의 중 인기학과 근무 일반의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지난해 1월에는 366명 중 56.8%인 208명이 인기학과 근무 일반의였는데 이 비중이 올해 2월에는 60.5%, 7월에는 61.3%로 높아졌다.

일반의가 개설한 의원에 근무하는 수도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더 많아졌다. 지난해 1월에는 일반의 개설의원에 근무하는 일반의가 3042명이었다. 올해 1월에는 3161명으로 1년 전보다 119명(3.9%) 증가했다. 올해 7월에는 일반의 개설의원에 근무하는 일반의 수가 3558명으로 6개월 새 397명(12.6%) 늘었다.

일반의원에서는 보톡스, 레이저 등 피부 관련 비급여 진료를 많이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직 전공의들이 일반의원에서 이런 업무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지난 7월까지 올해 일반의가 신규 개설한 의원급 의료기관 129개소 중 80.6%인 104개소가 피부과를 진료하겠다고 신고했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미용의료 등으로 의사들이 몰릴 것이라고 예측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며 "경제적인 측면에서 인기학과에는 미용 관련 레이저, 도수치료 등 수익률이 높은 비급여 항목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를 올리고 의료분쟁 관련 특례법을 만들어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의료계에서 정부를 신뢰하지 않아 쏠림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인기학과 쏠림은 어쩔 수 없는 세계적 트렌드"라면서도 "시급히 수가 현실화로 비급여와 급여 항목의 의료 수가의 균형을 맞추는 게 일부 대안"이라고 말했다.

[단독]"사마귀 진료 안해요"…18개 피부과 급여 진료 '0건'
최근 3년간 건강보험 청구가 0건인 피부과 의원/그래픽=김다나

이모씨(42)는 목에 난 사마귀를 제거하기 위해 인근 '피부과 의원'이라고 쓰인 의료기관을 찾았다. 사마귀 진료를 보고 싶다고 하자 해당 의원에서는 대뜸 "피부질환 진료는 보지 않는다"다며 사실상 진료를 거부했다. 이씨는 피부과 의원을 수차례 돌아다닌 뒤에야 사마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피부질환을 진료할 수 있는 피부과 의원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피부미용만 취급하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피부질환은 전혀 치료하지 않는 병원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병원 대다수는 서울 강남·서초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2021년~2024년 7월) 개설한 피부과 의원 중 건강보험 청구가 10건 이하인 곳은 18곳이었다. 이 병원들은 모두 건강보험 청구 건수가 0건이었다. 급여가 적용되는 피부질환을 아예 진료하지 않아 건강보험 청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병원들은 보톡스나 레이저 등 피부미용과 관련한 비급여 진료를 주로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병원 18곳 중 67%인 12곳은 서울 강남·서초구에 집중됐다. 강남구 9곳, 서초구 3곳이었다. 또 18곳 중 83%인 15곳에 서울에 위치해 있다. 강남·서초구 외 강서구, 동대문구, 성북구에 1곳씩 있었다. 서울 외 지역에서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광주광역시 광산구,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1곳씩 있었다.

일반의나 성형외과인 경우에도 미용 위주의 비급여 진료만 하며 건강보험 청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위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851개소였던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이 지난해 2221개소로 20% 증가했다. 이 중 의원급이 1778개소로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건보 미청구 의원급 의료기관을 과목별로 보면 일반의가 996개소로 전체의 56%에 달했다. 일반의들은 전문의가 하지 않아도 되는 보톡스, 레이저 등 미용 관련 비급여 진료를 주로 다뤘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 많은 과목은 690개소(39%)인 성형외과다. 피부과는 8개소(0.4%)다. 이들 병원은 급여가 되는 질환을 전혀 진료하지 않은 것이다.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은 수도권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서울 강남구가 628개소(28.3%)로 가장 많았다. 전국 미청구 의료기관의 4분의 1 이상이 강남구에 있는 셈이다. 그 뒤를 이어 서초구가 168개소(7.6%), 부산 진구가 87개소(3.9%)로 나타났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연합 사회정책국장은 "피부도 성형도 필수로 해야 하는 환자들이 있고 이런 환자들을 진료하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시장에 그게 갖춰지지 않으면 정부가 관리감독 하에 지역 내에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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