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었다_아일랜드 일상다반사_도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를 돌보며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2년 만에 도착한 한국은 또 변한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에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또 인천공항 입국장에는 한국으로 비행기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고,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늘 그렇듯이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동생의 가족들은 평일 오후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일찍 퇴근을 하고 손수 인천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줬다. 다행히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 보였고, 이제 한국에 도착했다는 생각으로 차 안에서 제부와 이야기를 나누다 또 졸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마도 잠결이었을 것 같은데 신호대기를 하며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들었던 생각은 ‘여기 아시아 사람들이 많네. 여행들을 왔나?’였다. 그런 생각이 나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아니, 나 지금 한국에 왔잖아!’

출처: 개인소장

마음이 편했다.

시차 때문인지, 한국에 왔다는 기대 때문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는 야식을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봄의 밤거리를 나섰다. 10시에 가까운 시간인데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고, 몇 개의 가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저녁 6시만 되면 펍(pub)에서 새어 나오는 낮은 조도의 불빛과 감자튀김을 파는 가게의 불빛 외엔 가로등 불빛만 가득한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의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늘 습도가 70% 이상인 아일랜드의 공기와 50%가 넘지 않는 한국의 공기는 들여 마실 때 그 느낌이 다르다. 마치 내가 빨래가 되는 느낌과도 비슷한데, 뭔가 건조한 공기로 내가 말려지는 느낌이 들었고, 뽀송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안에서 내가 원하는 말을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내가 제일 잘하는 언어인 한국어로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했고, 안심이 되었다.

출처: pintest

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병원을 가는 일이다. 몇 달 전 치주염인지 잇몸이 아파서 며칠간 고생을 하다가 동네의 내 치과주치의에게 갔는데, 자신은 치료할 수 없다며 전문의에게 내 이름을 보냈다. 물론 그는 내 이를 찬찬히 들여 보는 일을 했지만 나를 치료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15만 원의 치료비를 지불했다. 당장 잇몸이 너무 아픈데 며칠이 지난 뒤 전문 클리닉에서 전화가 왔고, 치료 일을 정확하게 6주 뒤로 예약해 줬다. 왠지 그 사이 아주 꼼꼼하게 양치를 하고,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버티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 날, 미리 예약해 둔 치과에 방문해서 당일 치료를 받았다. 아일랜드였다면 두 달도 더 걸렸을 일인데 한국은 단 하루 만에 검사와 치료를 완료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은 어지럼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뜻하지 않게 병명을 진단받게 되었지만, 왜 아픈지 이제는 알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아일랜드 주치의에게 나의 어지럼증을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게요. 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또 6개월 만에 머리도 하고, 안경점에서 새로운 안경도 맞췄다. 무엇보다 매일 먹는 한국 음식, 엄마 음식에 나는 하루가 다르게 안색이 좋아지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나는 매일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나아지고 있었다.

아이는 좀 더 한국인이 되고 있었다.

오로지 나와 이야기하는 것 외에 아이의 한국어가 향상될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최근 나에게 생긴 고민이었다. 언어에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의 부분을 골고루 돌봐주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한국어 공부도 잠깐 정지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한국에 막 왔을 때 아이는 자신이 한국어로 의사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서툴렀고, 문어체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또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뜻하지 않게 나누는 대화에서 아이는 많은 것을 배웠고,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을 때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어가 또 많이 늘어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는 한국 음식에 대한 기대가 컸다. ‘너구리 매운맛’을 좋아하게 된 아이는 한국에서 난생처음 쫄면도 먹어보고 떡볶이도 ‘맛있다’를 외치며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사촌동생의 책장에서 ‘오무라이스 잼잼’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며 한국 음식에 대한 나름의 정보를 많이 얻게 되었는데, 이번 한국 방문에서 아이의 목표는 ‘산 낙지’ 먹기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소스가 없는 단순한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양념이 많은 한국 음식을 먹는 것에 가끔 어려움을 느끼지만, 하나 둘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찾아내고 있다. 이번 방문으로 남편은 감자탕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3주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출국 전날에는 첫날 야식을 먹었던 곳에서 마지막으로 동생의 가족들과 회포를 풀면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렇게 출국 날이 되었다.

출처: freepik

‘당신의 비행기가 취소되었습니다.’

오후 10시 비행기를 타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오전 8시에 항공사에서 메일로 당일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변경이 아닌 취소라는 연락이었고, 예약 일을 변경하려고 하니 표가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는 잠든 남편을 깨웠고 나는 한국의 또 남편은 현지의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1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 끝에 예약 담당자와 통화하게 되었는데, 홍콩을 거쳐 파리에서 아일랜드로 들어가는 티켓을 제안했는데, 그 마저도 3장의 티켓이 없었고, 결국은 6일 뒤 출발하는 것으로 다시 예약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원래 목요일에 출발해 금요일에 아일랜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이는 6개월 간 몇 개의 예선전을 거치면서 시도의 대표로 전국 퀴즈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결승전은 일요일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결국 그간에 아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말을 전하며 조심스럽게 그래서 일요일에 아일랜드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아이는 그 말을 모두 듣더니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얼마간 훌쩍였다.

그래서 며칠간 더 시간이 생겼다.

짐도 모두 다 싸 놓았고, 가족들과 회포도 풀었기에 뭔가 더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30시간 가까운 여행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조금 뒤로 미루어져서인지 긴장이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를 마중해 주기 위해 오신 부모님은 다음 날 다시 채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그 차를 타고 잠시 나들이를 가려고 했는데, 그 길로 부모님 댁까지 같이 갔다. 칫솔도 가지고 오지 않았지만, 부모님 댁으로 가는 길인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아빠가 ‘한국에 와서 먹고 싶은 게 뭐였지?’라고 묻자 아이가 ‘산 낙지요!’라고 했다. 아빠는 언제 그렇게 배우셨는지 제미나이와 대화하며 산 낙지 파는 식당을 검색하셨고, 그 길로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뭔가 한국 방문에서 계획한 바를 이뤄낸 사람 마냥 산 낙지 먹기에 진심을 다했고, 그 김에 남편도 도전을 했지만 남편은 눈을 찡긋하며 연포탕이 참 맛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엄마와 약간 매운 낙지볶음을 먹었는데, 생각해 보니 엄마와 함께 이렇게 외식으로 음식을 나눠먹으며 찬찬히 이야기 나눌 기회가 그동안은 없었던 것 같았다. 영상통화로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을 가지곤 했는데 이렇게 엄마와 얼굴 마주 보며 밥을 먹으니 그런 것들이 모두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고향집에 다시 다녀오고, 또다시 짐을 찬찬히 싸면서 추가로 주어진 며칠의 시간을 나름 재미있게 보냈다. 그리고 다시 출국 전날 동생의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지난 며칠을 되돌아보았다. 가족들과 또 한국과. 병원 다니느라, 또 이것저것 할 일들을 하느라 휴가를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일을 하러 온 것 같다는 남편의 심지 있는 말을 들으면서도 바쁘게 지냈던 3주였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며칠의 시간이 더 주어지게 되어서 나는 뜻하지 않게 정말 제대로 ‘작별’ 할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일랜드 집의 책상 앞에서 한없이 외롭고 텅 빈 마음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출처: pintest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또 내가 살았던 ‘집’에서 이제 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습기가 가득찬 공기가 있는 아일랜드의 ‘집’으로 돌아왔다. ‘잘 살아라.,’하신 엄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또다시 살아봐야겠다. 사실 나는 짐을 풀면서 또 다음 한국행을 꿈꾼다. 이렇게 나는 이곳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내 뿌리도 점점 가늘고 얕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인생에 대해 내가 내린 결정이고 그래서 내 뿌리의 크기는 딱 그 정도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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