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로드맵, K-반도체 초격차로 간다"

2023년 5월 나온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은 김형준 단장을 위원장으로 산·학·연 전문가들이 모여 1년여간의 논의 끝에 발표한 반도체 산업 중장기 전략입니다. 발표 이후 정부는 로드맵에 따라 정책을 이행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로드맵이 왜 필요한 것인지, 우리 반도체 산업의 청사진은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에게 물어봤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K-반도체 생태계 완성
산파 역할 할 것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은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을 통해 앞으로 초격차·신격차 기술을 개발할 강유전체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이 국책 사업을 이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김 단장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시스템집적반도체개발사업단을 이끈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4%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점유율은 약 3%로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김 단장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재편되며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간 반도체 시장의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한 결과가 점유율 하락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변화에 대응할 때입니다. 김 단장은 “그동안 우리 반도체 산업은 이정표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국가적인 기술 로드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인 로드맵은 있습니다. 미국·대만 등 주요국 반도체협회가 중심이 돼 2년마다 작성하는 ITRS(국제반도체기술 로드맵),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 등이 내놓는 HIR(헤테로지니어스 인티그레이션 로드맵)이 그것입니다.

2023년 5월 나온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은 이러한 배경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2022년 5월 김 단장을 위원장으로 산·학·연 전문가들이 모여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1년여간의 논의 끝에 발표한 반도체 산업 중장기 전략입니다. 10년 후 미래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발표 이후 정부는 로드맵에 따라 정책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8월 27일에는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 고도화’를 발표하고 59개의 핵심기술을 선정했습니다. 이러한 로드맵이 왜 필요한 것인지, 우리 반도체 산업의 청사진은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김 단장에게 물어봤습니다.

Q. 반도체 분야 핵심기술에 대한 우리나라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반도체는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뉩니다. 소자, 설계, 공정입니다. 반도체 제조는 실리콘과 같은 소재를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걸 가지고 소자를 만드는데 D램, 낸드라고 말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소자 분야 기술이란 신소재를 개발하거나 메모리 집적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자 분야에서 우리는 최고 기술 보유국에 비해 1~2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요즘 강조되고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설계의 문제입니다. 최소한의 소자로 칩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분야에서 우리는 2~3년 격차가 있다고 봅니다. 설계를 담당하는 회사를 팹리스라고 하고 설계도를 가지고 공정을 담당하는 회사는 파운드리라고 합니다. 공정 분야에서도 3년 정도 격차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Q.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망하면서 기술협력, 정부지원의 방향·전략을 담은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2023년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을 발표했고 이것을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로드맵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제 반도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Q. 로드맵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돼 있나?

소자·설계·공정 분야에서 핵심 전략기술을 선정해 추진 일정에 따라 기술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전략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소자 연구를 통해서 기술을 선점한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주력품목인 D램과 낸드는 각각의 단점이 있는데 이걸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 소자를 만들겠다는 추진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강유전체 소자 같은 경우 로드맵에 따르면 2028년까지 핵심 소재와 소자를 개발하고 2029년부터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입니다.

Q. 설계 분야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로드맵도 있나?

먼저 AI 반도체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AI가 구동할 수 있게 하는 AI 반도체에는 지금 대부분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쓰입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이 GPU의 발전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GPU가 대규모 연산에 최적화된 장치라는 것에 착안해 AI 연산에 GPU를 쓰게 된 것입니다. 몇 가지 기술적 아이디어가 더해져 그래픽장치 GPU를 데이터를 처리하는 GPU로 발전시켰는데 이를테면 HDMI(고선명도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 출력 단자를 없애고 연산만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말이 GPU지 AI 연산에 특화된 장치입니다.

그런데 이 GPU는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가격이 비싸고 전력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걸 극복하는 게 NPU(신경망처리장치)입니다. GPU가 대규모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 연산을 한다면 NPU는 우리 신경망처럼 추론 연산을 합니다. 크기도 작아 기기에 탑재된 AI, 즉 온디바이스(on-device) AI에 특화돼 있습니다. NPU에 대한 신격차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 로드맵의 목표입니다.

Q. 글로벌 경쟁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AI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대규모의 데이터센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개발 국가에서는 막대한 전력과 비용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인프라도 능력도 부족합니다. 바로 이런 곳이 새로운 시장입니다. 전력을 적게 쓰고 비용도 절감한 NPU를 개발하면 이런 시장에 수출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Q. 그러려면 팹리스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텐데.

NPU는 향후 급성장할 AI 산업에 필수인 반도체로 특히 설계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어떤 디바이스에 탑재되느냐에 따라 맞춤 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팹리스는 물론이고 설계에 앞서 기본이 되는 회로 라이선스와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 기업, 팹리스의 설계도를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최적화하는 디자인하우스, 이렇게 만들어진 설계도를 제작하는 파운드리까지 밀접하게 협업해야 합니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중요합니다. 밸류체인(가치사슬)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구조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Q. 어떻게 하면 반도체 생태계를 튼튼하게 할 수 있을까?

로드맵은 정책방향을 설정해준 것이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도 이미 발표됐습니다. 지난 1월 정부가 세계 최고·최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이게 반도체 생태계를 튼튼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공급망 자급률을 높이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팹리스 기업 육성 방안도 강조돼 있습니다. 자금 연구개발(R&D) 지원도 강화하지만 네트워킹 강화에도 초점을 맞춥니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팹리스 집적단지를 조성, 시제품을 제작하는 비용을 지원하고 파운드리 기업과 협력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무엇보다 이 생태계를 위해 경기 용인시에 전력과 용수가 충분히 공급되는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Q. 이 과정에서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은 어떤 역할을 하나?

사업단은 말하자면 반도체 기술의 ‘산파’ 역할입니다. 10년 동안 1조 96억 원을 들여 소자·설계·제조공정 분야에서 NPU 개발을 지원합니다. NPU를 개발하는 대학·기업·연구소의 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기술 개발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기술 교류회도 하고 각 기관 간 협업체계도 만듭니다. 이런 지원들을 통해 전문인력을 많이 양성하는 것도 목표로 합니다.

Q. 사업단은 언제 생겼나?

사업단 자체는 2020년에 출범했는데 이전에도 시스템집적반도체개발사업단 같이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꾸준히 개척하려는 노력이 있어왔습니다. 사실 사업단이 출범할 당시에는 AI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22년 말 생성형 AI인 챗GPT가 등장하면서 AI와 NPU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사업단은 AI시대에 대비해 일찍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매우 낮은데 NPU 개발을 통해 높이고 싶습니다.

Q. 사업단의 목표는 무엇인가?

AI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사업단이 목표로 하는 것은 2027년까지 1페타플롭스(PF)의 연산능력을 갖춘 저전력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현재 최신 GPU가 20PF의 연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매우 큰 칩입니다. 우리는 좀 더 작게 해서 1PF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력소모를 줄일 생각입니다. 지금 기술 수준에 GPU가 1PF를 연산하려면 300와트(W)의 전력을 소비하는데 1000분의 1인 300밀리와트(㎽)에서 1PF를 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할 것입니다.

Q. 지금은 어느 정도 달성한 상태인가?

사실 지금 우리나라의 유망한 팹리스 중에서도 1PF 반도체는 충분히 생산할 능력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문제는 저전력인데 신소자를 응용해서 전력을 줄여볼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내세울 수 있는 우리만의 소재와 장비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쉽습니다. 최신 소재와 장비를 선점하는 것은 초격차 기술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입니다.

*강유전체
외부에서 전기를 가하지 않아도 전기적 성질을 유지하기 때문에 전원을 꺼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기억장치(램)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기억장치를 F램이라고 하는데 강유전체 F램은 속도가 매우 빠르고 전력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꿈의 메모리’로 불립니다.

*CPU(중앙처리장치)
컴퓨터 시스템 전체의 작동을 통제하고 프로그램의 모든 연산을 수행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 제어 장치와 연산 장치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기억 장치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GPU(그래픽처리장치)
컴퓨터 시스템에서, 그래픽에 관련된 연산을 수행하는 장치. 중앙 처리 장치를 대신하여 그래픽 처리 능력을 최대화할 목적으로 쓰입니다.

*페타플롭스(PF)
1초당 1000조 번의 연산처리 능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