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가장 친숙한 남자의 명품, 태그호이어
남자의 ‘유일한’ 액세서리인 시계. 그런 만큼 명품 시계 브랜드들의 경쟁은 더할 나위 없이 치열하다. 그 사투의 와중에 가장 높은 인지도를 쌓아온 태그호이어의 비결은 무엇일까?
# DontCrackUnderPressure
#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라
- 태그호이어 브랜드 슬로건
기술과 혁신으로 시작한 브랜드
1860년, 에드워드 호이어는 스위스 생티미에(Saint Imier)에서 시계 제작 워크숍을 열었다. 세계 최초로 키 대신 크라운으로 감는 와인딩 시스템을 개발해 시계의 디자인과 제작 방식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러한 방식은 향후 시계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은 이후 태그호이어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한다.
20세기 들어 스포츠뿐 아니라 의학, 교통, 산업 생산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정밀한 스톱워치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에드워드 호이어의 아들 찰스-어거스트 호이어는 1/100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를 개발했다. 1912년부터 1928년까지 올림픽의 공식 타임 키퍼로 선정된 데는 초창기 호이어 크로노그래프의 정밀성과 신뢰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잭 호이어와 황금시대
호이어의 황금기는 제4대 회장 잭 호이어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잭 호이어는 기존 주력 제품인 일반 손목시계가 아니라 레이싱에 사용할 스톱워치와 대시보드 타이밍 장치, 그리고 레이서들의 손목에서 드라이빙 스킬을 업그레이드해 줄 보다 정교한 손목시계 개발에 집중했다. 잭 호이어의 아이디어는 매번 성공을 거뒀고, 1960년대는 그야말로 호이어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62년 우주비행사 존 글렌과 함께 최초로 우주비행을 한 스톱워치는 바로 호이어의 제품이었다. 그리고 1962년 오타비아, 1963년 까레라, 1969년 모나코 등을 선보이며 대중의 뇌리에 ‘호이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 잭 호이어는 브랜드의 기술적,
미적 걸작에 영감을 주었다.
그의 혜안과 도전 정신에 감사한다.”
- 장크리스토프 바빈(Jean-Christophe Babin, 태그호이어 전 CEO)
모터스포츠의 아이콘
호이어는 스위스 출신의 F1 영웅 조 시퍼트를 후원하면서 자동차 브랜드가 아닌 기업으로는 최초로 F1 레이싱 카에 로고를 새겼다. 잭 호이어는 1971년부터 페라리에 장비를 공급했지만 공식 후원 자금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유능한 마케터였던 잭 호이어는 니키 라우다, 아르투로 메르자리오 등 스쿠데리아 페라리 드라이버의 손목에 ‘까레라(Carrera)’를 채움으로써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뒀다.
까레라는 1950~1954년 멕시코 국경에서 열린 ‘까레라 파나메리카나 로드 레이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멕시코 북부 국경에서 남부까지 3000km가 넘는 구간을 평균속도 150km/h 이상으로 달리는 가혹한 레이스였고, 이는 당시 자동차와 드라이버의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인식됐다. 그런 레이싱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잃지 않은 까레라는 드라이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존 레넌, 오노 요코, 믹 재거 등 1960년대 세계 대중문화계의 아이콘 또한 이들을 따라 까레라를 착용하면서 호이어는 스포츠 분야를 넘어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루이 비통의 일원이 되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를 대체하면서 대부분 스위스 시계 회사가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호이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호이어는 한때 피아제 산하로 합병되었다가 다시 테크니크 드 아방가르드 그룹(TAG)에 인수되면서 현재의 ‘태그호이어’라는 브랜드명을 확립하게 된다. 이후 1999년에는 다시 LVMH가 인수해 현재는 LVMH 그룹의 일원이 됐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브랜드
테크니크 드 아방가르드 그룹의 경영 체제 아래서 태그호이어는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를 주력으로 해온 기존의 브랜드 정체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래 지향적 시계를 디자인하는 회사로 진화했다. 파격적인 디자인의 포뮬러 1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면서도 까레라, 모나코 등 브랜드의 클래식 모델을 재출시하는 등 ‘헤리티지’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았다.
2010년대에 들어 스마트워치가 손목시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한 와중에도 최초의 스위스 럭셔리 스마트워치인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워치’를 출시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인 ‘호이어02’를 개발하는 등 첨단기술과 접목한 오토매틱 시계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접근 가능한 럭셔리
시계에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태그호이어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 브랜드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와 기술력, 디자인 모두 어떤 명품 시계 브랜드와 경쟁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태그호이어는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을 택했다. 포뮬러 1으로 대표되는 캐주얼한 엔트리 모델부터 플래그십인 모나코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통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 대표적이다. 또 1980년대에 ‘성공, 그것은 자신과의 승부’를 슬로건으로 기발한 광고를 연재하는 공격적인 미디어 노출로 명품 브랜드임에도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 라이언 고슬링, 알렉산드라 다다리오 등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스타들 외에도 축구 선수 손흥민, 배우 위하준 등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한 스타를 모델로 기용하는 등 미디어를 통한 대중과의 접촉에 가장 활발한 브랜드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태그호이어 컬렉션
포뮬러 1
흔히 ‘명품 시계 진입의 관문’으로 여기는 엔트리 모델. 1970년대 ‘쿼츠 파동’으로 오토매틱 시계가 사장될 위기에 처했을 때 등장한 태그호이어의 대답. 컬러풀하고 캐주얼한 디자인으로 지나치게 중후한 디자인을 부담스러워하는 초심자들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까레라
태그호이어의 간판과도 같은 제품이자 베스트셀러다. 잭 호이어가 레이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모델인 만큼 태그호이어 기술력의 총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개발한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 ‘호이어02’를 탑재한 버전이 출시됐다.
모나코
스티브 매퀸이 영화 <르망> (1971)에서 착용해 더욱 유명해진 제품. 태그호이어의 플래그십 모델이다. 독특한 사각형 프레임은 강인한 남성의 상징과도 같다. 태그호이어 제품 중 가장 다양한 한정판이 존재해 컬렉터들의 가슴을 떨리게 한다.
오타비아
컬렉션명을 갖고 탄생한 최초의 태그호이어 크로노그래프. 자동차(AUTomobile)와 항공(AVIAtion) 두 단어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원래 대시보드 타이머로 개발된 제품을 손목시계로 재탄생시켰다. 커다란 용두가 특징이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6월호
에디터 김구용(객원 에디터)
자료제공 태그호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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