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전 차익 실현 흔적들… 의원님들의 코인 투자법
‘코인 배당’ 이후 알짜 코인 팔고 배당 코인만 남겨…신고 전 대량 매매해도 알 수 없어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0.01%. 22대 국회에 신규 입성한 의원 147명이 신고한 재산 총액 중 암호화폐(코인)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절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드러난 수치만으로 코인의 비중을 과소평가하기는 이르다. 신고 시점 이전에 거래된 코인은 공개되지 않는데다, 사전 매매의 흔적이 공개 목록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행 재산 공개 방식으로는 코인 거래로 인한 이해충돌 소지를 근절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시사저널은 지난 8월29일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국회의원 재산신고내역'을 토대로 22대 신규 의원 147명의 재산 현황을 살펴봤다. 이 가운데 36명이 본인 또는 가족의 코인 등 가상자산 내역을 신고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가상자산은 22대 국회 임기 개시일인 5월30일 기준 의원들이 보유하고 있던 것이다. 그 가액은 전날인 5월29일 5대 거래소(빗썸, 코빗, 코인원, 업비트, 고팍스)의 시세 평균치를 기준으로 산정됐다. 총액은 1억5679만원이다.
35명의 코인 99종, 총액은 5600만원?
이 중 비상장 가상자산으로 코인과 성격이 다른,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의 1억원짜리 훈민정음 혜례본 대체불가토큰(NFT)을 제외하면 5679만원이다. 이 금액이 사실상 의원들이 보유한 코인의 총 가액이다. 22대 신규 의원 147명의 재산 총액(3941억6727만원)과 비교하면 0.01%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보유 코인의 가짓수는 총 99종으로 비교적 많다. 작년 하반기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코인(622종)의 16%에 해당하는 규모다.
코인 가액에 비해 종류가 많은 배경에는 '에어드랍(airdrop)'이 있다. 이는 일정 기간까지 특정 코인을 갖고 있는 보유자에게 추가 코인을 무상 배포하는 걸 뜻한다. 일종의 '주식 배당'이다. 보통 암호화폐 발행업체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다. 눈에 띄는 사실은, 다양한 에어드랍 코인에 비해 그와 연계된 기존 코인은 드물다는 점이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배우자가 갖고 있는 총 2만2000원어치 코인 11종을 신고했다. 그는 재산신고 때 "에어드랍으로 자동 구매한 것"이라고 따로 밝혔다. 시사저널 확인 결과, 실제 해당 코인은 모두 에어드랍 결과물로 확인됐다. 11종 코인 중 △밋원 △애드 △이오스닥 △이오스블랙 △챌린지닥 △호루스페이 등 6종은 이오스 보유자에게 지급된 에어드랍 코인이다. 또 △송버드 △엑스코어 △플레어 등 3종은 리플 보유자에게, △에이피이엔에프티 △윙크 등 2종은 비트토렌트 등 보유자에게 각각 제공됐다.
그런데 정작 에어드랍의 지급 조건 코인인 이오스와 리플, 비트토렌트 등은 신고 목록에 없다. 이에 대해 천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며 "액수가 미미하고 거래가 불가능한 자투리만 남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4·10 총선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코인 신고 내역을 제공했다.
여기에는 이오스 44개, 리플 2997개, 비트토렌트 1억1078만 개 등이 기재돼 있었다. 그 밖에 아이큐, 저스트 등 이번 신고 내역에서 빠진 코인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코인 총액은 320만7000원이다. 이번 신고 금액(2만2000원)과 3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천 의원은 "아내가 코인을 거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관여한 적은 없다"며 "어떤 종목을 얼마나 거래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자투리'만 남은 코인 포트폴리오
다른 의원들 역시 기존 알짜 코인은 매각하고 에어드랍으로 받은 코인만 남겨둔 정황이 발견된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은 아쿠아 3819개를 신고했다. 배우자(27만9880개)와 함께 해당 코인의 최다 보유자다. 아쿠아는 발행처가 같은 스텔라루멘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20여 차례 에어드랍으로 배포된 바 있다. 최근인 올 3월에는 스텔라루멘 1개당 아쿠아 0.13여 개가 지급됐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서 의원과 배우자의 스텔라루멘 추정 보유량은 최소 204만 개다. 가액 산정일 시세(146.99원)를 적용하면 약 3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서 의원이 신고한 코인 내역 중 스텔라루멘은 없다. 그는 총선 전에 낸 재산신고서에도 코인 내역을 따로 적지 않았다.
서천호 의원은 시사저널에 "스텔라루멘을 보유했던 게 맞다"며 "꽤 오래전에 코인 투자를 시작했고 스텔라루멘은 상장 초기부터 갖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2년 전쯤 코인 투자에서 손을 떼면서 스텔라루멘 등 갖고 있던 코인을 다 팔았다"며 "아내는 코인 투자를 따로 해서 내역을 알 수 없지만 보유량이 3억원이라는 건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또 "길게 보면 코인 투자로 마이너스 본 금액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경기지방경찰청장 출신의 서 의원은 국가정보원 2차장을 지낸 정보통이다.
한편 이번에 신고된 코인 중 에이피이엔에프티를 보유한 의원 또는 가족은 천하람·서천호 의원을 비롯해 10명이다. 비트코인(13명)과 페이코인(11명)에 이어 세 번째로 보유자가 많다. 에이피이엔에프티는 50조 개 가까운 물량이 무상으로 풀린 대표적인 에어드랍 코인이다. 에어드랍 수령 조건은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연계 코인인 △트론 △저스트 △윙크 △비트토렌트 등 네 종류 중 하나 이상을 보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이피이엔에프티를 보유한 10명 중 3명(허성무·이병진 의원 장남, 이광희 의원 배우자)의 신고 목록에는 해당 코인이 하나도 없다. 또 다른 에이피이엔에프티 보유자 2명(김장겸 의원, 진종오 의원 모친)은 각 코인의 보유량을 1개 미만인 '0.000…'으로 신고했다. 기존 연계 코인을 사전에 대거 매각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기존 코인 중 비트토렌트는 김남국 전 의원이 2021년 주식을 팔아 마련한 9억여원을 전액 투자한 코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그해 두 달 만에 가격이 10배 이상 치솟기도 했다.
코인을 가장 다양하게 보유한 사람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다. 이 의원이 신고한 코인은 모두 45종에 이른다. 비트코인은 물론 이오엑스, 엑스파이 등 다른 의원들이 전혀 신고하지 않은 생소한 에어드랍 코인도 수십 개씩 갖고 있다. 이 의원은 그간 공개적으로 "코인으로 선거 세 번 치를 정도는 벌어놨다"고 말해 왔다. 반면 코인의 총액은 77만원이 전부다. 대신 4억6900여만원의 예금액을 신고했다.
의원들의 코인 내역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에어드랍 이후 기존 코인 매도' 경향은 최근 들어 짙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에어드랍이 시세 하락의 변곡점이란 분석 때문이다. 배당주 시세가 배당일이 지나면 급락하는 것과 비슷하다. 암호화폐 컨설팅 기업 디스프레드의 이승화 리서치 팀장은 "최근 코인 프로젝트들이 과대 평가돼 있다 보니 에어드랍 시행 뒤에 더 빠른 하락세를 겪는 경우가 많다"며 "일각에선 에어드랍 유행이 막을 내렸다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에어드랍 이후 코인을 매도하는 행위가 불법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코인 발행업체 관계자는 "에어드랍 시점에 맞춰 시세차익을 내는 건 전통적이고 공공연한 수법이라 미공개 정보 따위를 활용했다고 보는 건 무리"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특정 시점의 코인 보유 현황을 일회성으로 공개하는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인 공개의 한계…"이해충돌 방지 취지 무색"
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가상자산 공개는 지난해 5월부터 의무화됐다. 당시 해당 내용을 골자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일명 '김남국 방지법'이 법적 근거가 됐다. 이에 따라 신규 의원은 앞으로 매년 12월31일까지 코인 변동사항을 신고해야 한다. 그 결과는 다음 해 3월말 공표된다. 즉 국민은 의원의 연간 코인 거래 내역 중 1년에 단 하루(12월31일)의 보유 현황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코인은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데다 현금화가 용이하다. 재산 공개 시점을 피해 대량 매매해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불공정 정보를 이용해 차익을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해충돌 방지라는 공직자윤리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지점"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에선 고위공직자가 코인을 1000달러 이상 사면 그 사실을 45일 이내에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코인 거래로 200달러 이상 수익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거래 내역을 신고하게 돼 있지만 외부에 공개되진 않는다. 게다가 신규 의원의 경우 국회 입성 이전에 거래한 내역까지 신고할 의무는 없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등록 시 선거 전년도 말 기준 재산을 신고하게 돼 있지만, 역시 비공개 정보인 데다 당선 이후 공개한 재산과 다른 내용이 다수 발견된다.
이번 22대 국회의 경우 당선자 300명 중 선거 전에 코인 보유 내역을 신고한 사람은 24명에 그쳤다. 김준혁 민주당 의원은 당시 1억142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신고했으나 "신고 이후 모두 처분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내역에는 코인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 전 5880만원어치의 솔라나를 신고했지만 지난 2월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한 코인 9종의 총액은 '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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