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회와 자동차 디자인

인도를 처음 방문한 것은 지난 2009년에 인도 대학에서 자동차디자인 특강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이후 2020년까지 자동차디자인 특강을 위해 매년 인도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10년의 시간동안 인도 현지의 자동차 시장의 변화와 자동차디자인의 차이점을 목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코로나 감염병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2020년 1월에 다녀온 뒤로는 다시 가지는 못했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인도 역시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폐쇄되는 등 큰 고비를 겪기도 했습니다.

 


 

매년 방문했던 곳은 인도의 마하라슈트라(Maharashutra)주(州)의 푸네(Pune)시(市)에 있는 아진키야 DY Patil 대학교(Ajeenkya DY Patil University; ADYPU) 였습니다. 푸네는 거대 도시 뭄바이(Mumbai)에서 인도 내륙 쪽으로 150km정도 들어간 곳에 있습니다. 매년 가던 곳이었음에도 갈 때마다 여전히 새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인도는 지금도 봉건적 계급사회가 유지되고 있어서, 귀족계급과 아울러 이른바 불가촉 천민-이라고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우기도 했었습니다-으로 구분되는 봉건적 세습 계층 구분이 잔존하는, 가히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가 공존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인도 사회 곳곳에는 이들 계층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중국을 능가하는 13억 인구와 남한의 33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인도의 영향력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계속 증대될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도의 국토는 물론 매우 넓지만, 중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여서 체감상 인구 밀도는 상당히 높은 걸로 보이기도 합니다.

 


 

시가지의 번화가에는 다양한 빌딩과 호텔 등이 있고 매우 큰 도로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스콘 포장은 돼 있지만, 차로 구분선이 그려져 있지 않아서 차들이 무질서하게 섞여 다니고 있습니다. 스쿠터를 개조해 만든 릭샤(Rickshaw)라고 불리는 3륜 소형 택시에서부터 2층 버스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많은 종류의 차들이 뒤섞인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버스에는 뒤쪽에 사다리가 달린 걸 볼 수 있는데요, 이건 지붕 위에도 사람들이 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기차에도 지붕 위에 사람들이 타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가지에서 외곽으로 나가 변두리지역으로 가면 영어 간판 대신 힌디어로 쓰인 간판 일색인 걸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가지 중심가에도 힌디어 간판은 많지만, 영어가 인도의 공용어이기 때문에 대부분 영어와 함께 쓰여 있는 간판들입니다.

 

게다가 변두리 지역의 도로는 사람이 걷는 보도와 자동차용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곳이 더 많고, 구분돼 있다고 해도 보도 블록이 잘 정비돼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외곽으로 나가면 보도는 그냥 흙 길이고, 그 길 한 켠에는 커다란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곤 합니다.

 


 

이런 풍경은 좀 정돈된 신축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도 비슷합니다. 이 글의 첫 사진의 고층 아파트 단지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시가지 건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0년 방문 당시에 머물던 호텔에서 바라본 푸네 시가지의 풍경은 수없이 많은 고층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모습이어서, 인도의 산업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인도에는 고유어가 무려 170 종류에 이르고 그 중에 공식적으로 통역 서비스가 가능한 것이 30여개 언어 정도라고 합니다. 당연히 방언의 종류도 많아서 가령 인도 북부의 펀잡(Punjab) 위쪽 지역의 사람들과 남부의 고아(Goa) 아래쪽 지역 사람이 만나면 의사소통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건 같은 인도 내에서도 언어와 문화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의미인데요, 역사적으로 보면 인도에는 수많은 소왕국이 존재했기에, 그들 자체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대학교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인도 전국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온 학생들인데요, 종교적 이유 등으로 커다란 터번(Turban)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경우는 흔합니다. 인도의 교수들 중에도 터번을 쓴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장의 특성 때문에 인도의 승용차들은 실내의 높이를 높여서 개발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인도 학생들은 캐주얼 한 복장, 이른바 ‘청바지에 티셔츠’로 대표되는 복장들이지만, 30~40대 이상 나이의 남성들은 아즈칸(또는 아치칸, Achikan) 이라는 전통적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의상은 목 둘레가 마치 우리나라 1980년대까지의 남학생 교복의 칼라 형태로 된 의상입니다.

 


 

인도의 연간 차량 생산 대수는 2022년 통계로는 약 545만 6천 대입니다. 해외 수출이 전혀 없다는 걸 고려하면, 이 생산 대수는 인도 내수 자동차산업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중국의 연간 내수 규모는 2,700만대이니 약 다섯 배 더 크긴 합니다.

 

인도에서 2009년에 출시된 초소형 승용차 나노는 4도어 5인승 소형 승용차로 첫 출시 당시 약 250만원의 초저가 차량으로 주목받았었는데요, 아무리 초소형 승용차라고 해도, 네 바퀴 달린 승용차를 그 가격에 시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나노는 내장을 고급화하고 차체를 5도어 해치백구조로 바꾸고 자동변속기까지 탑재하는 등의 변화를 줬지만, 판매 부진으로 결국 2021년에 단종됩니다. 나노의 본래 목표는 인도에서 5인 가족이 오토바이를 살 수 있는 정도의 비용으로 탈 수 있는 염가 승용차의 개발이었지만, 소비자들이 싸구려 이미지의 차를 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건 인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후 타타는 2020년에 새로운 소형 승용차 알트로즈(Altroz)를 내놓습니다. 이 차량은 타타의 새로운 알파(ALFA)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됐다고 하며, 5도어 해치백 차체에 전장 3,990mm, 전폭 1,755mm, 전고 1,523mm, 휠베이스는 2,500mm로 대략 B세그먼트 급의 제원이지만, 전폭이 꽤 넓고 머리에 터번을 쓰는 문화를 고려해 전고도 상당히 높습니다. 그래서 거의 C 세그먼트에 육박하는 차체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휠베이스 역시 C 세그먼트에 필적하는, 소형 해치백이지만 고급 지향 콘셉트로 개발됐습니다.

알트로즈는 타타자동차가 2018년도 제네바 모터쇼에 내놓았던 콘셉트 카 ‘45X’의 양산형 모델이라고도 발표되었습니다. 물론 양산형 알트로즈의 차체 디자인과 품질은 아직은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인도의 자동차 시장과 디자인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생활하다 보면 평범한 시민들의 소비생활 수준의 편차가 매우 크다는 걸 목도하게 됩니다. 그건 급속한 발전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구조적 요인도 있는 걸로 보입니다. 여전히 거리에서 가족 전체가 노숙하는 극빈층이 적잖이 눈에 띄고, 세습 계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도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어가 공용어라는 특징으로 인해 상당수의 글로벌 기업의 콜센터가 인도에서 운영된다는 점이나, 영어 사용에 의한 수학과 과학의 학문적 강점으로 첨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는 등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이와 같은 상반된 특성 속에서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과 디자인은 인도 시장을 향해 어떤 접근방법을 가져야 할까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 바라보면 인도는 단지 또 다른 외국일 뿐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문화적 차이가 훨씬 큽니다. 그 차이점을 어떤 관점에서 발굴해서 우리의 강점을 가진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로 구체화시킬 것인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물론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