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후디니와 코난 도일의 대결

한국에서는 점쟁이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사람들은 오늘의 운세나 타로점을 재미삼아 보지만, 이런 초자연적인 능력을 믿는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가령 미국에는 심령술사(psychic)들이 여전히 장사를 한다. 미국의 심령술사는 어떤 사람들일까?

1990년에 나온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에서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가 연기해서 잘 알려진 (특히 이 장면) 심령술사라는 직업은 한국의 무당, 점쟁이와 제법 흡사하다.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해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본다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 살아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죽은 사람은 혼(혹은 귀신)이 점쟁이의 몸에 들어오는 걸 우리는 빙의(憑依, 영어로는 possession)라 부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좀 더 전문적인 표현으로 '영매(靈媒)'라고 부르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건 거의 모든 문화에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성경(사무엘상 28장)에도 영매가 등장한다. 사울 왕이 영매를 찾아가 세상을 떠난 선지자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는 장면이 있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물론 가볍게 타로점을 보고 기분 전환을 하는 것과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다른 차원이다. 둘 다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해도 후자는 이런 믿음에 훨씬 더 깊이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점쟁이가 들려주는 올해의 운세를 믿는 사람도 "돌아가신 당신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하면 사기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현대 세상에서 영매를 찾아 죽은 사람의 혼이나 귀신과 대화를 하려는 사람은 드물고, 점쟁이 혹은 심령술사도 이런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걸로 안다.

하지만 심령술사가 영매 노릇을 하고 대중이 이를 믿던 시절은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20세기 초까지도 사람들은 영매, 빙의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과에도 이렇게 죽은 사람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수들이 있던 시절이다. 이렇게 미신을 믿던 사회가 계몽되어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과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미신을 깨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알리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그런 사람 중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 1874~1926)다.

마술사, 스턴트맨의 대명사 후디니.

후디니 (이미지 출처: La Vereda)

대중을 상대로 눈속임(illusion) 쇼를 직업으로 하던 사람이 미신을 깨는 운동을 했다는 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드문 일은 아니다. 본업이었던 마술사보다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더 유명했던 제임스 랜디(James Randi)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이스라엘의 "초능력자" 유리 겔러의 속임수를 드러내어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가서 승리했고, 마술사 듀오인 펜앤텔러(Penn & Teller)는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를 대중에게 알리고 초자연주의나 유사 과학의 거짓을 드러내는 '펜앤텔러: 불쉿! (Penn & Teller: Bullshit!)'이라는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펜앤텔러의 '불쉿!' 첫 시즌, 첫 에피소드가 바로 영매를 통해 죽은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심령술사들의 사기를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흔한 사기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피해자를 감정적, 금전적으로 착취하는 악질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디니는 왜, 그리고 어떻게 심령술사들과 싸웠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에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 아서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도 등장할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는 내용도 많다.

아래의 글은 This American Life에 소개된 내용을 대화체에서 문어 투로 바꾸고,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을 추가하고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 방송 내용은 여기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때는 1920년대 초, 아직도 사람들이 유령의 존재를 믿던 시절이다. 흔히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는 1918년 팬데믹으로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사망한 직후였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약 69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 걸 생각하면, 당시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세계 인구는 지금의 1/4에 불과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족과 친지를 잃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20년대 초는 1차 세계 대전(1914~1918)이 끝난 직후였다. 따라서 미국이나 유럽에 살던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혼이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당시에 유행하던 심령주의(Spiritualism, 혹은 유심론 唯心論)라고 불리던 사고방식이 있었다. 일종의 종교적 믿음으로, 이걸 믿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교령회(交靈會, seance)라는 모임에 참석했다. 어두운 방, 경우에 따라서는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방에 탁자 하나에 둘러앉은 후 영매(심령술사)에게 찾아온 죽은 이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다. 이 모임 중에는 탁자가 흔들리기도 하고, 죽은 이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적어도 참석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참고로, 2001년에 나온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0'에 교령회 장면이 등장한다. 실제로 영혼이 찾아온다면 아마도 아래 영상과 같은 모습일 거다. 원래 교령회는 1800년대 중반에 나타나서 중산층 사이에 크게 유행했다고 하지만, 1920년대에도 미국과 유럽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열리고 있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후디니와 교령회에 관한 책, 'The Witch of Lime Street'을 쓴 저자 데이빗 제이어(David Jaher)에 따르면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에서는 과학자들 중에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초자연적 심령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과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이 대학에 심리학과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심령현상 연구학회(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의 회장을 겸임했다.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의 생리학자 샤를 리셰(Charles Richet)도 영국의 심령현상 연구학회 회장이었다. "영적 에너지가 물질로 구체화한" 엑토플라즘(ectoplasm)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사람이 샤를 리셰다.

지금은 과학과 미신이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믿지만,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둘은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아이작 뉴턴은 연금술사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미신을 믿었던 이성 시대의 "마지막 마법사"였다. 심령술사를 의미하는 psychic과 심리학을 의미하는 psychology는 같은 단어의 파생형이며, Psychical Research라는 표현도 경우에 따라 '심리 연구' 혹은 '심령 현상 연구'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인류는 무지와 미신의 세계에서 아주 서서히 깨어났고, 그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코미디 영화 '고스트버스터즈'(1984)에서 유령이 쏟아내는 엑토플라즘

이런 과학자들이 심령 현상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동안 교령회의 허구를 밝히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인 사람이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탈출 묘기를 전문으로 하는 마술사, 스턴트맨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가 그 사람이다. 후디니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그가 심령술사들에 맞서 싸운 것만으로도 유명해졌겠지만, 이 싸움에는 또 하나의 인물이 개입했다. 바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

후디니 같은 유명인이 심령술사들과 전쟁을 벌이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간략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후디니는 1913년에 어머니를 여읜다. 당시 후디니는 39세, 어머니는 72세였다. 자식에게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72세라면 당시 기준으로 장수했다고 할 나이고, 아들도 중년이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쟁과 전염병으로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후디니의 어머니 세실리아 바이스(Cecelia Weiss)

하지만 후디니에게 어머니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일반적인 모자 관계와는 달랐다고 한다. 그는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어머니에게 로맨틱한 편지를 썼고, 불안할 때는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후디니는 어머니를 언급할 때 그냥 "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반드시 "나의 위대한 어머니(my sainted mother)"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my beloved mother)"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요즘 중년의 남성이 그렇게 한다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부르겠지만, 아직 그 개념이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어머니를 여읜 후디니가 어머니를 그리워한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당시 유행하던 교령회에 참석해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혼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후디니는 교령회에 가서 어머니를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교령회를 믿지도 않았다. 왜일까? 후디니는 마술사로 활동하기 전에 교령회에서 가짜 영매로 사람들을 속이는 일로 돈을 벌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교령회가 사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후디니를 교령회에 참석시킨 사람이 바로 그의 친구 코난 도일이다. 단순히 참석을 권하기만 한 게 아니다. 그 교령회에서 영매 역할을 한 사람은 코난 도일의 아내 진 레키(Jean Leckie)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난 도일은–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당시 심령주의를 이끌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왼쪽)과 후디니

후디니는 심령술사들이 어떤 사기를 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자기 어머니의 영혼과 만나게 해 줄 진짜 영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바램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과 이야기를 하게 된 게 이 때다.

그렇다면 코난 도일은 왜 심령주의와 교령회에 빠지게 되었을까? 그는 1906년에 첫 아내와 사별했고, 첫 아내가 낳은 아들 역시 191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듬해인 1919년에는 자신의 동생 이네스가, 1920년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921년에는 매제(여동생의 남편)가, 그리고 두 명의 여동생이 각각 1924년, 1927년에 세상을 떠났다. 병과 전쟁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식구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자신의 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 있던 코난 도일을 교령회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은 그의 아이들을 돌봐주던 보모였다. 이 여성은 심령주의에 익숙했고, 교령회를 직접 열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코난 도일은 그렇게 교령회를 통해 위안을 얻게 되고, 심령주의를 받아들였다.

교령회 모습

코난 도일은 단순히 심령주의를 믿기만 한 게 아니다. 그는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면서 심령주의에 대한 발표와 강연을 했고, 사실상 심령주의 운동의 리더가 되었다. 심령주의자들에게는 코난 도일만큼 이 운동에 도움이 되는 사람도 없었을 거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 있는 소설가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 셜록 홈즈는 이성과 연역적 추리(deductive reasoning)의 대명사였다. 그런 글을 쓰는 작가가 교령회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이 운동에 끌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코난 도일이 정말 그 정도로 순진했을까? 그도 사기꾼에 불과한 가짜 영매들이 활동한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진짜 영매도 있다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후디니도 다르지 않았다. 가짜 영매들의 사기를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어딘가에는 자신을 죽은 어머니과 만나게 해 줄 진짜 영매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후디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후디니는 여전히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기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두 사람은 만난 후 금방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후디니가 영국으로 건너가 마술, 스턴트 공연을 하게 되자 영국에 사는 코난 도일은 자기가 알고 신뢰할 수 있는 영매들을 후디니에게 소개했고, 만나서 교령회를 가져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가짜 영매 노릇을 해본 후디니의 눈에는 이 영매들이 벌이는 사기 행각이 쉽게 보였다. 후디니는 그렇게 교령회를 100개나 가봤지만 전부 사기였다고 했다. 물론 그가 영국에 머문 시간을 생각하면 100개를 참석했다는 건 후디니 특유의 과장이지만, 코난 도일이 추천한 영매들을 많이 만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실망한 후디니에게 코난 도일은 그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영혼을 만나지 못한 거라고 설득했다. 영혼은 사냥을 하듯 쫓아가면 안 되고, 열린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많은 종교 집단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신이 너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은 네가 의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근거 없는 주장을 하기에 편리한 얘기일 수 있다.

영국에서 참석했던 교령회들에 실망한 후디니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코난 도일이 미국에 와서 심령주의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었다. 미국을 방문하는 김에 친구인 후디니와 만나기로 한 건 당연한 일이다. 코난 도일의 미국 일정이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은 각각 아내를 데리고 당시 휴양지로 인기 있었던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에서 코난 도일은 후디니에게 깜짝 놀랄 제안을 한다. 자기 아내 진(Jean)도 영매인데, 후디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후디니 어머니의 영혼이 찾아온다는 영감을 받았다는 거다. 그러니 교령회를 열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눠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교령회를 열기로 한 주말이 돌아가신 후디니 어머니의 생일이었다는 사실이다. 후디니는 이 사실을 코난 도일 부부에게 말한 적이 없었는데, 바로 그 주말에 어머니의 영혼이 찾아온다고 했다면 후디니에게는 한번 믿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우연의 일치였다고 해도 후디니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머니를 교령회에서 만날 수 있다는 주장을 "기꺼이 믿을 생각이었다. 나는 믿고 싶었다."

일행은 코난 도일의 호텔 방으로 이동했다. 코난 도일은 창문 커튼을 닫고 탁자 위에 연필과 노트를 올려놓았다. 그의 아내 진이 영혼을 빙의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말이 아니라 손으로 글씨는 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혼이 들려주는 말을 노트 위에 빠르게 받아 적는다는 얘기고, 영매가 무아지경(trance)에 빠져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쓰는 글은 교령회를 찾아온 영혼이 하는 말이라는 거다.

코난 도일이 대표로 기도를 하고 사람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교령회에서 으레 그러듯 서로의 손을 잡았다. 방에 침묵이 흘렀다. 진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탁자를 내리쳤다. 영혼이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진은 영혼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곧 탁자를 세 번 내리쳤다. 그렇다는 얘기다. 진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후디니의 어머니인가요?" 그리고 다시 탁자를 세 번 내리쳤다.

후디니가 입을 열었다. "엄마, 여기에 계세요?"

후디니와 그의 어머니 세실리아 바이스 (이미지 출처: RAGTIME)

그러자 진은 빠르게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한 장을 다 쓰면 옆에 있던 코난 도일이 페이지를 뜯어 후디니에게 건네 주고, 후디니는 그걸 읽었다. 후디니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후디니가 그 교령회에서 받은 노트장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있다.

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드디어 이 자리에 오게 되었구나. 너와 만나려고 무던 애를 썼는데. 이렇게 너를 만나게 되니 행복하구나. 나의 사랑하는 아이, 내 아들과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친구 여러분(코난 도일과 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중략) 제가 지금 있는 곳은 아주 다른 세상이고,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요. 제 아이에게 제가 정말로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코난 도일에 따르면 후디니는 아무 말 없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고 있었고, 울음이 터질 듯했다고 한다. 마치 오래도록 찾던 것을 얻게 된 아이, 기적을 목격한 사람 같은 표정이었단다. 교령회가 끝난 후 후디니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몸을 떨며 그 자리를 떠났고, 드디어 교령회를 믿게 되었다는 게 코난 도일의 이야기다.

하지만 후디니의 버전은 다르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후디니는 한 뉴욕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사기를 치지 않은 영매를 만나 본 적이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글을 읽은 코난 도일은 분노했다. 후디니가 눈물이 글썽이는 걸 똑똑히 봤는데? 내 아내가 사기꾼이라고? 화가 난 코난 도일의 편지를 받은 후디니는 교령회에서 노트에 글을 남긴 건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후디니가 그렇게 자신한 데는 이유가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살다가 1878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그의 어머니는 평생 독일어만 사용했다. 그런데 코난 도일의 아내가 노트에 적은 글은 마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이 사용하는 말투였지, 어머니의 말이 아니었다. 노트에 "영혼이 적은" 언어가 영어였던 것뿐 아니라, 내용이 심령주의자들의 설교였다. "세상이 이 위대한 진리(=심령주의)를 알 수 있다면 사람들이 삶을 다르게 살 것이며..." 따위의 말이 그랬다.

코난 도일의 아내 진 레키 도일 (이미지 출처: BBC)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개인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이 어머니의 생일이었는데 어머니의 영혼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게다가 진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맨 위에 십자가 표시(✝︎)를 그려 넣은 것도 우스웠다. 후디니 가족은 유대인이었고, 종교적으로 십자가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코난 도일은 후디니의 이런 주장을 모두 반박했다. 먼저 언어의 문제는 사후 세계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에 영혼이 하려는 말은–비록 생전에 사용하는 언어로 말했어도– 영매가 사용하는 언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영매가 하는 건 영혼의 생각과 감정을 번역하는 것이지 받아쓰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럼 십자가 표시는? 코난 도일은 그 표시는 영혼이 기독교 신자라는 게 아니라, 다른 악한 영혼의 개입을 막기 위해 영매인 아내가 습관처럼 적는 것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디니에게 교령회 때 그렇게 감동했으면서 왜 지금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후디니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있었던 교령회를 마지막으로 영매들의 사기 행각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정한 듯 하다. 그 전까지 후디니가 심령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정도였다면, 그 일 이후로는 사실상 심령주의에 전쟁을 선포했다. 교령회가 열리는 어두운 방에 몰래 들어가서 플래시라이트를 켜 몰래 탁자를 흔들고 있는 (참석자들은 흔들리는 가구가 영혼이 찾아온 증거라고 믿었다) 영매의 속임수를 참석자들에 보여줬고, 자신의 생업인 마술, 스턴트 공연을 하면서 심령주의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기를 치는지 자세히 알려줬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팬앤텔러가 하는 공연은 말하자면 후디니의 뒤를 이은 것이다.)

후디니가 심령주의를 금지하는 법안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1면 톱으로 보도한 워싱턴타임즈 (이미지 출처: Library of Congress)

그는 공연에서 청중에게 이를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의회가 돈을 받고 점을 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의회 청문회에 출두해서 법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후디니가 청문회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심령주의자들이 몰려가서 야유를 보내며 발언을 방해했고, 이들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경찰까지 출동했다. 하지만 후디니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심령주의자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나를 부르던 별명이 뭔지 말해봐!"

후디니의 눈에 이들 심령술사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가족들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에 불과했다. 무슨 말을 해도 믿고 싶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