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100원’ 고스톱 쳤다가 벌금 50만원…유·무죄 어떻게 갈리나

정환봉 기자 2024. 9. 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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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친구와 재미 삼아 소액의 고스톱을 치더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의 ‘합석’은 주의해야 한다. ‘점 100원짜리’ 고스톱이라도 함께 친 사람과 시간, 장소 등의 차이가 유·무죄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과 일시적으로 했다면

ㄱ씨와 ㄴ씨는 2022년 5월1일 오후 3시30분께 1점당 100원씩을 걸고 판돈 3만1400원 규모의 고스톱을 쳤다. 이들은 도박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하지만 인천지법 형사11단독 김샛별 판사는 지난 4월 두 사람이 이웃 주민으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이고 도박을 한 시각이 특별히 이르거나 늦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고스톱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주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김상곤)는 지난 6월, 정기적인 모임에서 친분을 쌓은 이들과 함께 송년회에서 소액의 ‘훌라’를 해 재판에 넘겨진 ㄷ씨에게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ㄷ씨 등 5명은 송년회 모임을 마치고 회원 중 한명이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이동해 ‘술값 내기’ 훌라를 했다. 1등에게 2등이 100원, 3등이 200원, 4등이 300원 등을 주는 방식으로 1회 판돈은 1천원 정도였다. 현장에서 압수된 도박대금은 5만원가량이었다. ㄷ씨는 2021년 도박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ㄷ씨 등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정도에 비추어 보면, (각자 건) 판돈 1만원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당시 일시적 오락의 정도를 초과하는 도박행위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가 난 사건은 모두 법원이 ‘일시적인 오락’으로 봤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일시 오락에 해당하는 도박은 사용된 돈의 규모가 작고 노동 의지나 풍속을 침해할 염려가 없는 경미한 경우다. 사행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여가를 이용해 심신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오락에 해당하면 도박을 하더라도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도박의 일시 오락 여부를 자로 잰 듯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원은 도박 시간과 장소, 도박자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도박에 이르게 된 경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유무죄를 가린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같이 도박을 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역시 중요하게 고려한다. 앞선 사례처럼 평소 친분이 있는 관계라면 오락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점 100 고스톱’도 모르는 사람과 쳤다면 ‘유죄’

이런 이유로 ㄱ씨와 똑같이 점 100원짜리 고스톱을 쳤지만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있다. ㄹ씨와 ㅁ씨는 지난해 10월 오후 6시30분 한 재래시장 상가에서 다른 3명과 함께 점 100원짜리 고스톱을 하다 도박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압수된 도박대금은 16만2000원이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당시 고스톱은 “일시 오락의 정도에 불과하여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지법 형사8단독 김미경 부장판사는 지난 6월 두 사람에게 각각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고스톱 멤버가 서로 친분이 없다는 점이 유죄의 이유로 작용했다. ㄹ씨는 ㅁ씨를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고, ㅁ씨는 다른 3명 중 1명과만 친분이 있었다. 김 부장판사는 “함께 고스톱을 한 사람들은 특별한 친분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과 “(이번 사건) 신고자는 이 사건 범행 장소에서 매일 도박하고 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을 들어 두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사건 당시 압수된 도박금은 총 16만2000원인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의 이 사건 도박이 일시 오락의 정도에 불과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10여만원 수준의 판돈도 일시 오락을 넘어선 규모로 본 것이다.

‘내기 바둑’ ‘내기 골프’ 처벌 가능

법원은 흔히 알려진 고스톱이나 포커 등 카드게임만 도박으로 보지 않는다. 실력을 겨루는 바둑은 도박이 아니라고 방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ㅂ씨와 ㅅ씨는 2022년 1월 한 기원에서 바둑판 아래 10만원을 쌓아놓고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10집당 1만원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ㅅ씨가 바둑이 끝나고도 승패를 가리기 위해 집 계산을 하는 ‘계가’를 하지 않자, ㅂ씨는 ㅅ씨의 10만원을 가지고 기원을 나왔다. 결국 ㅂ씨는 도박과 절도 혐의로 기소됐다.

ㅂ씨는 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일시 오락의 정도에 불과하다”고 항변했고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계가 후 돌려줄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ㅂ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하며 “내기 바둑은 우연성이 없어 도박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추가로 펼쳤다. 도박은 정당한 노동에 따라 재물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따라 재물을 얻고 잃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경제적 도덕성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처벌한다. 이 때문에 도박에는 우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바둑은 기량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기 때문에 우연성이 없다는 것이 ㅂ씨 주장의 뼈대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황영희)는 “당사자의 능력이 승패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다소 우연성의 사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때에는 도박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지난해 12월 ㅂ씨에게 1심과 같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같은 이유로 내기 골프도 도박으로 인정돼 유죄가 선고된 사례들이 많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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