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파도~ 나오는 즐거움, 이 맛에 자꾸 찾는 남해 바다

남해 미조면 송정리에 송정솔바람해수욕장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 긴 백사장을 두른 솔숲이 일품이다. 200년이 됐다는 숲은 아름드리 소나무는 없지만, 그늘이 넉넉하다. 바람이 불면 소나무 아래 무성한 풀이 일제히 반대 방향으로 드러눕는데 이 또한 푸른 바다 못지않게 시원한 풍경이 된다. 송정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해서 파도가 명품이다. 동해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남해에서 이만큼 파도가 힘찬 곳도 없을 것 같다.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찾을 만하다. 경상권에서 서핑 장소라 하면 부산 송정해수욕장이 가장 유명하지만, 경남으로 한정하면 거제 흥남해수욕장과 구조라해수욕장에 이어 남해 송정도 제법 알려져 있다.

남해 송정솔바람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말라끼 서프 

남해 파도를 타는 즐거움 = 이런 송정에 자리 잡은 말라끼서프는 서핑 강습을 하고 장비를 빌려주는 곳이다. 크진 않지만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 안현석(40) 말라끼 서프대표는 진주 출신으로 송정에서 2010부터 펜션을 운영하다 송정 바다에서 서핑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 남해 놀러 왔었는데 송정에서 아주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워낙 캠핑 같은 야외 활동을 좋아해서 언젠가 여행자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아버지가 조그맣게 사업을 하셨는데, 군대 다녀와서 그걸 물려받을까 하다가 결국 남해에서 펜션을 시작했어요. 언젠가부터는 서핑이 배우고 싶었는데, 펜션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 송정해수욕장에 남해서핑스쿨이 생겼어요."

그에게 서핑을 가르친 이는 말라끼 서프의 전신인 남해서핑스쿨 황원태(41) 대표다. 애초에 황 대표는 왜 송정에 서핑스쿨을 세웠을까. 마산 사람인 그는 친형이 유명한 서핑 선수이기에 자연스레 서핑을 배웠다. 친구 아버지가 남해에서 펜션을 하고 있어 자주 온 까닭에 평소에도 남해를 무척 좋아했다. 서핑을 배운 후에는 남해에서 서핑할 곳을 찾다가 파도가 들어오는 곳, 그중에서도 서핑할 만한 곳을 찾은 게 송정해수욕장이었다. 송정은 파도가 초보자에게 적당하고, 사람이 몰리지 않아 다른 지역에 비해 여유롭게 서핑할 수 있다.

황 대표에게 지난해 공간을 이어받은 안 대표는 "강원이나 부산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파도지만, 이곳에서 서핑을 배워 국가대표가 된 이들도 있을 만큼 충분히 연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해 송정솔바람해수욕장에 있는 말라끼서프. 서핑 강습과 용품 대여를 한다. /이서후 기자
남해 송정솔바람해수욕장에서 말라끼서프 강사들이 서핑 강습을 하고 있. /말라끼 서프 

남해에 살며 배우며 = 남해 상주면 두모마을 바닷가에서 하천을 거슬러 가다 보면 남해 팜프라촌이 보인다. 지금은 일종의 펜션처럼 운영하고는 있지만, 원래 이곳은 청년 주거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도시에서 촌으로 이주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실험해 보고 싶은 청년들에게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지금도 청년들을 대상으로 정해진 기간에 촌에 입주해 살며 시골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자신에게 맞는 촌라이프를 모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에 맞게 공간도 숙박시설인 스테이, 목공 등을 할 수 있는 작업장, 팜프라가 제작한 상품을 파는 스토어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코워킹 라운지로 구성됐다. 이런 공간을 활용해 우드워킹 클래스나 나무 그릇 만들기(우드카빙) 등 목공 체험 프로그램이나 남해 일주일 살기, 슬기로운 방학생활, 촌 라이프 워케이션 같은 장기 체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제법 간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게 '남쪽바다 걷기 수업'이다. 이는 2박 3일간 팜프라촌에 머물면서 노르딕워킹 배우기, 길동무와 남파랑길 걷기, 바다숲 요가 등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내용이다.

팜프라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주로 지자체나 지역 다른 공간과 협업이 많다. 체류가 아닌 단일 행사로 지난해 열린 '남쪽바다 책 잔치'나 '남해섬 둥둥마켓'도 팜프라촌이 지역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한 결과다.

남해 두모마을 팜프라촌. /이서후 기자 
남해 두모마을 팜프라촌에서 지난해 진행한 체류형 프로그램 남쪽바다 걷기수업. /팜프라촌

남해 바닷에 사는 특별함 = 남해에는 또 '카카카'라는 젊은이들이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젊은 문화기획자, 연구자, 그래픽디자이너 10여 명이 2018년 2월 남해로 집단 귀촌하면서 만든 일종의 유연한 문화기획 공동체다. 그동안 남해에서 몽돌라이브 같은 음악 공연이나 남해무인도영화제 등을 기획하고 부정기 지역 생활잡지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을 현재 4권째 발간했다. 이런저런 공간도 운영했는데, 지금은 남해 서면에 오를라섬이란 비건 식당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카카카친구들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는 일과 삶을 실험한다'는 수식에 걸맞게 남해에 본거지를 두고 있지만, 밀양소통협센터 등 다양한 곳과 협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남해 지역에서 꾸준히 재밌는 일들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면 2020년과 2021년에 진행한 지역살이 프로그램 '무럭무럭:서두르지 않고 천천히'는 타 지역 청년 창작자 16명이 6주간 남해를 경험하면서 서로 고민을 나누고 창작의식을 높이는 활동이었다. 2022년 열린 보물섬 청년 로컬탐험대 '표류원정대'는 '관계 인구'를 중심으로 풀어낸 행사다. 남해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 지역 청년 37명이 남해에 모여 연말연시를 보내고, 그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지난해 여름에 진행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타 지역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1박 2일 캠핑 프로그램이다. 남해를 잘 모르는 타 지역 아이들과 부모에게 남해의 낭만을 맘껏 체험하도록 장소와 체험 내용을 구성해 매우 높은 비율로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평가를 받은 행사다.

남해 카카카친구들이 2022년 진행한 보물섬 청년 로컬탐험대 '표류원정대'. /카카카친구들
남해 카카카친구들이 2020~2021년 진행한 지역살이 프로그램 '무럭무럭: 서두르지 않고'. /카카카친구들 

남해군은 해안이 훼손된 곳이 거의 없어서 바닷가 마을이나 숲이 오랜 세월을 머금은 채 그대로 살아 있다. 말라끼서프, 팜프라촌, 카카카 같은 친구들이 굳이 남해에 자리 잡은 이유도 어쩌면 이런 남해 풍경 덕분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이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자신들이 느낀 남해 바다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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