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전 프리미어리그 출범 과정이 K리그 발전에 던지는 시사점은?

한국 축구계에 하나의 화두가 등장했다. 지난주 열린 K리그 주요 현안 공청회에서 최상위 리그 출범 이야기가 나왔다. 쉽게 말해 코리언 프리미어리그.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10년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현지에서 취재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에서 나온 화두는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과연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큰 계획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잉글랜드가 프리미어리그를 출범시켰을 당시와 현재 K리그 상황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그러다보면 뭔가 답이 조금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의 배경

1992년 2월 20일 프리미어리그가 공식 출범했다. 1992~1993시즌 프리미어리그 역사가 시작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잉글랜드의 1부리그는 존재했다. 1888년 시작한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이었다.

잉글랜드는 웬만하면 잘 바꾸지 않는 나라이다. 왕국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관식도 1066년 이후 2023년 찰스 3세까지 계속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고 있다. 중세 이후부터 마을 중심가에는 늘 '펍(Pub)'이 있어왔다. 런던의 상징은 여전히 2층 버스이며, 오후 3시에는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이렇게 지독하리만큼 전통을 고집하는 잉글랜드에서 104년 전통을 가지고 있는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왜? 역시 돈 때문이었다.

1980년대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은 침체기였다. 훌리건과 노후화된 경기장, 헤이젤 참사로 인한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 대항전 5년 출전 정지 징계로 인해 관중 수와 수익이 많이 떨어졌다. 1970년대 세계 축구계의 중심은 독일 분데스리가였고, 1980년대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였다.

당시 축구계에 만연했던 '웃픈' 농담이 있다.

“축구에서 백만장자가 되는 방법은?
— 억만장자로 시작해서 축구 클럽을 사는 것이다.”

영어 원문으로는 The way to make a small fortune in football is to start with a large one. 축구 클럽 운영은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막대한 자본을 잃기 쉬운 투자라는 것을 풍자한 표현이었다. '미러'와 같은 신문을 가지고 있던 언론 재벌 로버트 맥스웰은 1980년대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구단주였으나 막대한 돈만 쏟아붓고 수익을 내지 못했다. 켄 베이츠가 투자했던 첼시도 대표적인 사례다. 포츠머스, 사우스햄턴 등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클럽들은 입장권 수익에만 의존했고, 경기장은 노후화되어있었고, 훌리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때문에 축구 클럽 운영은 돈많은 부자들의 취미 생활, 혹은 귀족 계급이 노동자 계급(워킹 클라스)에게 베푸는 간접적인 복지 정도였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헤이젤 참사(1985), 브래드퍼드 화재(1985), 힐스버러 참사(1989) 등으로 대표되는 훌리건 문제와 시설 노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나섰다. 1990년 테일러 보고서가 발표됐다. 입석 스탠드를 없애고 전 좌석제 도입, 울타리 철거, 시설 현대화, 수용 인원 관리, 안전 관리 개선 등이 권고됐다. 클럽들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클럽 라이선스를 박탈했다. 클럽들은 구장 개조 및 신축에 나섰다. 또한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 징계가 풀렸다. 맨유는 1991년 컵위너스컵을 들어올렸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가 4강까지 올랐다. 세계 무대에서의 성적을 기반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오른쪽이 루퍼트 머독

이 지점에서 TV가 맞물린다. 1980년대 중계권료는 '헐값'이었다. 1983년 풋볼리그는 영국 ITV와 2년간 520만 파운드에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1년에 260만 파운드 선이었다. 1988년에는 조금 올랐다. ITV와 4년간 4400만 파운드(연간 1100만 파운드)에 계약했다. 당시 TV 시장은 BBC와 ITV의 독과점 구도였다. 방송사가 부르는 가격이 곧 시장 가격이었다. 더욱이 이 돈은 퍼스트디비전팀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래에 있는 2부, 3부, 4부리그까지 나눠가졌다. 빅클럽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ITV와의 계약이 끝나갈 즈음 각 클럽들, 특히 빅클럽들은 여기에 불만을 가졌다. 가뜩이나 구장을 개조하거나 신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이 필요했다. 돈 나올 구멍은 TV 중계권밖에 없었다. 이 때 미디어 시장에 변혁이 벌어졌다. 루퍼트 머독이 등장했다. 위성방송인 Sky TV를 설립한 머독은 1990년 BSB를 인수합병, BSkyB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재정이 불안했다. 유로 구독 모델을 정착시켜야 했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서라도 보고 싶어하는 콘텐츠를 찾았다. 머독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바로 축구였다.

각 클럽들도 머독의 구상에 호응했다. BSkyB와 독점 계약을 맺으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해야만 했다. 무능력했던 풋볼리그를 떠나 새로운 리그를 창설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프리미어리그였다. 퍼스트 디비전 클럽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독립 법인 회사였다. 프리미어리그의 중계권료 50%를 프리미어리그 소속 클럽들만 나눠갖는 구조(국내 중계권료는 성적, 노출에 따라서. 해외 중계권료는 균등 배분)를 만들었다. 스폰서 계약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1992년 프리미어리그와 BSkyB가 체결한 중계권료는 5년간 3억 400만 파운드, 연간 6080만 파운드에 달했다. 10년전에 비해 30배 가량 올랐다. 더욱이 프리미어리그팀들만 받는 중계권료기에 각 클럽들이 받는 돈은 예전에 비해 더욱 커졌다. 이 돈을 바탕으로 프리미어리그는 승승장구했고, 현재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 리그로 발전했다.

사진출처=프로축구연맹

#K리그에 던지는 시사점

33년전인 1992년. 잉글랜드에서의 프리미어리그 출범 과정 그리고 그 성공 사례는 모든 리그가 군침을 흘릴만큼 매력적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테크트리를 잘 따라간다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K리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테크트리를 잘 따르기 위해 K리그의 현실을 살펴보자.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미디어의 변화이다. 1992년 당시 뉴미디어인 BSkyB가 있었다. 2025년 K리그에는 새로운 미디어인 OTT가 등장했다. 이 OTT들은 새로운 콘텐츠 확보를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K리그와 쿠팡 플레이의 현 계약은 2025년 끝난다. 다른 OTT들과의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면 K리그의 중계권료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OTT에 맞고 새로운 이미지의 최상위 리그를 출범시킨다면 리그도 살고, 미디어도 살 수 있는 윈윈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1992년 BSkyB와 프리미어리그가 윈윈을 경험했듯이.

K리그 내부의 발전 동력도 증가하고 있다. 2013년부터 K리그 클럽 라이센스 제도가 정식 시행됐다. 특히 유소년팀 운영이 의무화됐다. 그 결과 좋은 선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인프라도 조금씩 충족되고 있다. 특히 인천 전용 구장이나 대구 iM뱅크파크 같은 알짜 구장들도 생겼다.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예년에 비해 좋은 인재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들이 모여 K리그를 하나의 산업으로 더욱 발전시려는 열망으로 언제든 분출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33년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출범 당시와는 다른 점도 있다. 우선 국내에서의 리그의 위상이다. 아직 K리그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KBO리그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중계권료만 보더라도 KBO리그가 TV와 온라인 합산 연간 300억~400억원 규모지만 K리그는 연간 100억원 미만으로 알려져있다. 잉글랜드에서 축구는 다른 종목들이 법점할 수 없는 최고의 스포츠 콘텐츠였다. 이를 기반으로 중계권료 대박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K리그는 아직 그 위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국제적 성적도 변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출범의 기폭제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4강 진출 그리고 1991년 맨유의 컵위너스컵 우승이었다. 우리의 경우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8강 이상의) 그리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에서의 우승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는 여전히 강호가 많고, ACLE에서는 중동 특히 사우디 클럽들이 큰 걸림돌이다.

이러한 유사점과 차이점을 놓고 K리그가 나아갈 길을 설정해야 한다. 방법이나 모습은 다를 수 있다. 다만 K리그의 발전은 더욱 산업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10년이 되든 20년이 되든 K리그도 하나의 더 큰 산업이 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