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오래 사는’ 빌보드 차트를 보며 생각난 것
차트 권위, 스스로 걷어찬 옛 ‘TV가요순위’ 다시 ‘재생’
그러면 그렇지.
K-팝이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중음악 시상식인 미국 그래미 어워드의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최근 있었다.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협업한 ‘아파트(APT.)’가 올해의 노래·레코드 등 3개 부문에,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골든(Golen)’이 올해의 노래 등 5개 부문, 하이브의 한미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가 신인상 후보로 각각 지명됐다. ‘빅4’ 중 올해의 앨범을 제외한 ‘빅3’ 후보에 모두 올랐다. 미 경제지 포브스가 “‘아파트’와 ‘골든’의 후보 지명은 역사적이지만, 전혀 놀랍지 않다”고 한 것처럼 사실 예견된 것이다. 이번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K-팝이 지명된 것을 두고 현지 언론은 “K-팝이 드디어 주류로 인정받았다”고 평가한다.
따지고 보면 K-팝이 올해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것이 그래미 어워드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케데헌의 ‘골든’과 스트레이 키즈의 앨범 ‘카르마’는 지난 9월 빌보드의 싱글차트 ‘핫 100’과 앨범차트 ‘빌보드 200’에서 나란히 1위에 오른 바 있다.
K-팝의 빌보드 차트 역사는 2009년 원더걸스의 ‘Nobody’(핫 100·76위)로 시작한다. K-팝 최초의 ‘핫 100’ 진입이다. 이어 2012년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핫 100’ 2위를 찍으며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2017년에는 BTS가 보이그룹 최초로 ‘핫 100’(67위)에 진입한 뒤 이듬해 ‘빌보드 200’에서 한국어 앨범 최초로 1위에 올랐다. BTS는 2018년 ‘Fake Love’로 ‘핫 100’ 10위를 차지했다. K-팝 그룹으로 최초였다. 마침내 BTS는 2020년 ‘Dynamite’로 ‘핫 100’ 1위, 32주 차트 인이란 K-팝 최초의 대기록까지 작성한다.
이처럼 K-팝의 빌보드 차트 진입 소식은 때로는 뿌듯함으로, 그리고 놀라움으로 우리에 각인돼 있다. 그런데 사실 K-팝에 빌보드 차트의 장벽은 어마어마하게 높다. 빌보드의 싱글차트인 ‘핫 100’은 인터넷 음원 다운로드 횟수, 미국 내 라디오 방송 청취율, 유튜브 조회 수 등을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무엇보다 빌보드 차트는 미국에서 발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비영어권의 가수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K-팝의 빌보드 차트 진입 소식은 말 그대로 ‘간간이’(현재 그렇지 않지만!) 들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언제적 빌보드냐’는 생각도 든다.
원더걸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꽤 오랜 기간 빌보드 차트를 잊고 살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대중음악이 대세로 자리 잡자 빌보드 차트와 팝송은 한동안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할까. 최근 빌보드의 ‘핫 100’이니, ‘빌보드 200’이니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새삼 빌보드 차트가 지닌, 오랜 역사의 무게감을 실감한다. 그건 차트의 신뢰도와 관련이 있을 듯하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1990년대 말 우리나라의 문화단체와 대중음악 팬덤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했던, TV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운동의 기억이 오버랩 된다. ‘모든 것을 가진’ TV가 대중음악의 시장성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다.
1990년대 후반 TV 가요순위 프로그램은 ‘불공정 순위’ 논란에 휩싸였다. 순위 산정 기준이 불투명한 데다 기획사의 로비나 방송사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의혹이 커졌다. 이는 TV 프로그램의 공식 차트 신뢰도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에 1998년 무렵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이 결성돼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을 벌인다. 대중은 더는 방송사 ‘공식 차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거센 비판 여론에 방송사들은 결국,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한다. 방송사들이 2007년 슬쩍 가요순위 프로그램 부활의 분위기를 띄울 무렵 이를 비판한 가수 신해철의 일갈은 매섭다. 여기에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신해철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에는 들국화도 김현식도 없었다. 시대의 흐름, 음악의 변화, 그 어떤 것도 가요순위 프로그램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곳에는 연말 시상식을 노리고 포인트를 쌓아두려는 방송국의 애완동물들만이 줄을 섰을 뿐”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1894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간된 주간지 빌보드가 미국 대중음악의 인기 순위를 집계, 매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빌보드 차트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세계 대중음악의 ‘가늠자’로 평가받는 것은 신뢰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식 차트’란 신뢰를 쌓는 게 관건이지만, 한국의 TV 순위 프로그램은 그 신뢰를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여 반영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아 실패했다. 차트의 권위가 대중의 신뢰와 불가분임을 새삼 되새기는 오늘이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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