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레노버의 수장이 한국 기업에게 인공지능(AI) 도입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인프라·솔루션 전문 파트너를 찾을 것을 당부했다.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는 설치형보다 구독형을 이용하면서 초기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수미르 바티아 레노버 인프라스트럭처솔루션그룹(ISG) 아시아태평양 사장은 최근 서면으로 진행된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이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AI를 도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AI를 업무 시스템이나 고객용 서비스에 도입하려면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AI의 학습을 위해 엔비디아의 H100이나 H200 등 고가의 AI 가속기가 필요하다. AI 가속기가 장착된 서버와 대용량의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관리할 스토리지도 필요하다. 업무 시스템과 서비스를 중단없이 제공하기 위한 안정적인 네트워크와 보안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이 AI에 필요한 인프라를 모두 갖추려면 비용 부담이 크다. HW뿐만 아니라 AI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SW를 도입하는데에도 비용이 들어간다.
기업이 HW와 SW를 스스로 마련하거나 찾으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AI 도입에 필요한 HW와 SW를 이미 갖춘 전문 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이나 소형언어모델(sLLM)을 직접 개발하려면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특히 AI 모델 개발과 추론에는 고성능의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신속한 데이터 처리가 요구된다. AI 관련 SW도 필요하다.
이에 레노버는 서버·스토리지 등 HW와 기업용 SW를 갖추며 경쟁사들과 차별화했다. 기업에게 AI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문 기업들은 보통 HW나 SW에 특화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레노버는 HW와 SW를 모두 제공할 수 있다. 특히 SW뿐만 아니라 HW도 설치형이 아닌 구독형으로 제공하며 기업들의 초기 비용 부담을 줄였다. 레노버는 IT 인프라 구축 및 운영에 필요한 HW·SW 관리 서비스 '트루스케일'을 기업 고객에 구독형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기업은 상황에 따라 월 사용료를 내며 필요한 만큼의 HW·SW만 이용할 수 있다.
레노버가 HW·SW 구독 서비스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기업이 AI를 도입하는데 있어 투자수익률(ROI)이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투입한 비용 대비 확실한 생산성 및 업무 효율성 향상 효과가 있어야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레노버의 'CIO 플레이북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국가들의 IT 지출 대비 AI 지출은 3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은 AI를 통한 수익화에 대한 관심이 전년 대비 6.2배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국 기업의 63%는 향후 12개월 내에 AI를 활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높은 ROI에 대한 기대감이 기업이 AI를 도입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응한 아태지역의 기업은 AI를 도입하면서 평균 3.6배 이상의 ROI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기대한만큼의 ROI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AI를 도입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세계적으로 AI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난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아태지역만 ROI에 발목을 잡혀 경쟁에서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바티아 사장은 "ROI 장벽을 낮추고 AI 도입을 가속화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AI 솔루션 제공 기업과 협업해 비용·보안·확장성·거버넌스 측면에서 장애물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CIO 플레이북 2025는 레노버가 의뢰하고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IDC가 데이터를 수집해 제작된 보고서다. 아태지역 12개 시장의 IT 및 비즈니스 의사결정권자(ITBDM) 900명을 포함한 2900명 이상의 전 세계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다.
바티아 사장은 특히 한국 기업이 ROI에 대한 기대감뿐만 아니라 규제의 허들을 넘어야 하는 점도 우려했다. 한국 정부가 AI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본 그는 특히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보안에 대한 우려도 높다고 진단했다. 바티아 사장은 "규제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AI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데이터 주권 및 규정 준수를 보장하는 안정적인 IT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AI 개발과 활용을 촉진할 수 있는 균형잡힌 규제 환경을 조성한다면 한국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 차원의 AI 연구개발(R&D)도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레노버는 한국 기업의 AI 도입을 지원하기 위해 컨설팅부터 HW·SW 공급을 지속하고 있다. HW는 '씽크시스템'과 같은 고성능 서버를 통해 기업의 AI·엣지 컴퓨팅·고성능 컴퓨팅(HPC)의 구현을 지원한다. '넵튠'과 같은 수냉식 서버를 통해 전력 효율화에 최적화된 데이터센터용 인프라 솔루션도 제공한다. 회사는 최근 인도에서 AI 서버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고급 기업용 AI 및 GPU 서버도 출시할 예정이다. 생산량의 60% 이상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에 수출해 AI 수요를 충족할 계획이다. 회사는 AI 모델을 학습하고 배포할 수 있는 플랫폼과 데이터 관리 및 분석 SW도 지원한다.
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