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선악 구분 타고나… 9개월 아기에게도 도덕 본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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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좀 더 깊이 있는 논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게다가 아기들이 엄마나 아빠가 보낸 무의식적 신호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했다.
최 교수는 "단순히 아기가 선하냐, 그렇지 않으냐에 그치는 책은 아니다"라며 "아이를 선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에게 추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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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행동 관찰한 연구 소개… “착한 행동-나쁜 행동 구분 가능”
집단 배타성 등 한계 있지만, 누구나 내면엔 도덕의 씨앗
제대로 된 교육 있어야 결실
◇선악의 기원/폴 블룸 지음·최재천, 김수진 옮김/344쪽·2만2000원·21세기북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70)는 2일 통화에서 신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영유아의 행동을 관찰해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려 한 신간을 공동 번역했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발달심리학과 언어심리학의 권위자다.
2015년 이미 한 번 출간된 책이지만 최 교수가 새롭게 번역을 맡아 재출간하게 됐다. 최 교수는 “저자의 다른 작품 ‘공감의 배신’(2019년)은 ‘공감이 없을 때 오히려 더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도발적 내용으로 국내에서 주목받은 데 비해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오랜 연구 데이터에 기반해 탄탄하게 잘 쓴 책이라는 생각에 번역을 맡게 됐다”고 했다.
신간은 갓난아기에게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을 제시한다. 생후 9개월, 12개월 아기들에게 각종 기하학적 도형이 서로 돕거나 방해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아기들의 시선은 도형들이 방해할 때보다 서로 도울 때 더 오래 머물렀다. 한 살배기 아기는 ‘착한 인형’과 공을 훔쳐가는 ‘못된 인형’을 구분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기들이 ‘도움’이라는 선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반응하는 본능이 있다”며 이를 본능적 도덕 감각이 존재한다는 근거로 내세운다.
무조건적인 ‘성선설’에 대한 지지는 결코 아니다. 아기의 도덕성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백인 아기는 아프리카인이나 중국인보다는 백인 얼굴을 보는 것을, 에티오피아 아기는 백인보다 에티오피아인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같은 언어로 말하는 아이들을 친구로 삼길 선호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 외에 보이는 배타적인 태도가 차별이나 범죄의 단초가 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 교수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이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에 선과 악이 모두 있다’고 말한 전국시대 동양 철학자 고자의 의견에 동감한다”며 “어떤 쪽으로든 인간이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말 못 하고 통제가 어려운 갓난아기들과 실험하는 힘겨운 과정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흥미롭다. 아기들은 직접적인 의사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사물을 응시하는 시간과 같은 간접적인 지표를 통해 선호도를 파악해야 했다. 게다가 아기들이 엄마나 아빠가 보낸 무의식적 신호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했다. 예일대 유아인지센터를 이끄는 저자의 아내 캐런 윈 박사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최 교수는 “책을 보면서 꿈틀거리는 애들을 데리고 실험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며 “한 달 동안 몇십 명 인터뷰하면 끝나는 다른 실험과 달리 반복적인 실패를 겪는 실험 과정을 통해 아무도 갖지 못한 데이터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결국 본성이 선하든 악하든 인간은 이성과 숙고를 통해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 “‘도덕성의 씨앗’이 이미 우리 안에 있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선천적인 도덕 감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꼭 읽어봐야 할 교육서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단순히 아기가 선하냐, 그렇지 않으냐에 그치는 책은 아니다”라며 “아이를 선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에게 추천한다”고 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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