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대명사' 삼성 이건희 회장 ‘유일한 실패작’의 정체는?

이건희의 삼성자동차
삼성차 채권 환수 소송
계열사 영향 문제

출처 : 삼성전자 제공

성공 신화의 대명사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도 수성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 이 선대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자동차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웠으나, 삼성자동차 출범 이후 2년도 안 되어 쓸쓸히 시장에서 퇴장하게 됐다. 자금력과 임직원 사기가 충분했던 90년대 후반 삼성이 자동차 제조업에 실패한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꿈의 자동차산업에 어떻게 진출하게 됐을까?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신규 자동차업체 진출 규제법이 폐지된 1989년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1987년 말 해체됐던 삼성의 자동차 TF팀은 해당 법안 폐지 이후인 1989년 11월 다시 결성된 바 있다.

출처 :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李, 삼성자동차 설립
IMF 이후 르노에 매각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5년 삼성자동차 설립을 통해 업계에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첫 제품인 SM5는 품질 성능에서 호평받으며 성공적인 출시를 마쳤다. 당시 업계에서는 SM5를 두고 잘 달리면서 잘 돌고, 잘 서는 동시에 조립 품질까지 우수한 제품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나 삼성 역시 IMF를 버텨낼 수는 없었다. IMF를 계기로 결국 삼성의 자동차 부문은 실패 국면으로 전환했다. 이후 삼성은 해외 매각 추진 및 정부의 대기업 간 빅딜 등을 겪으며 자동차 부문을 2000년 프랑스 르노그룹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출처 : 뉴스1

법정관리 신세 전락
삼성 계열사에 부담

삼성 내 자동차 부문 실패의 여파는 적지 않았다. 1995년 당시 국내 부정적 여론 속에서도 자동차에 대한 의지 하나로 사업을 시작한 삼성은 결국 법정관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법정관리 신청 당시 삼성자동차에 여신을 제공한 채권단의 손실을 보장해 주고자 이건희 선대회장은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채권단에게 증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결국 삼성 계열사들에 부담으로 돌아왔다. 삼성생명 상장을 통해 손실 보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채권단과 삼성 사이에 발생한 ‘삼성차 채권 환수 소송’은 단군 이래 최대 소송으로 불리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재판이 한창이던 2008년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삼성 측이 계열사들의 삼성자동차 부채 부담행위를 총수의 이익과 관련지으며 크게 비판했다.

출처 : 디파짓 포토

법원, 채권단 편에 서
구조적 한계 지적

실제로 당시 재판에서는 법원이 대부분의 쟁점에 대해 채권단의 손을 든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겉으로는 책임 경영으로 보인 이 선대회장의 결단이 실제로는 삼성의 지배구조를 흔들어 혼란을 자초했다.

또한 기술의 삼성을 강조해 오던 이건희 선대회장이 자동차 산업에서만큼은 준비가 부실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수한 품질로 평가받았던 SM5였으나, 실상은 기술 자립도가 낮아 부품을 외부로부터 조달받아야 했다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된다.

출처 : 삼성전자 제공

경영자 책임론 확산
이재용 뉴삼성으로 연결

이건희 선대회장의 열망과 달리 수만 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 완성차 생태계는 자본력과 제조 역량만으로 단숨에 장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결국 경영자의 준비되지 않은 열정이 국가 경제와 그룹 지배구조에 얼마나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증명하며 삼성자동차는 뼈아픈 역사로 남게 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처참한 실패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뉴삼성’이 자동차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는 거름이 됐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직접 차를 만드는 ‘하드웨어’에 집착했다면, 이 회장은 전 세계 자동차가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는 흐름을 포착해 브랜드 카오디오 시장의 선도자 하만(Harman)과 함께 개발한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을 통해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실패를 딛고 일어난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전략은 이건희 선대회장의 꿈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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