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조는 어떤 왕이었을까요?
순조의 개인적 능력을 떠나서
당시 시대적 상황은
국내외적으로 어수선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
신분제 개판나고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새롭게 개편되고 있었으며

국외적으로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점점 아시아로 세력을 뻗치던
시기였습니다.

확실한 건 순조는
이런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어울리는
왕은 아니었다는 거죠.
시대적 변화의 요구는 거센데
그 부름에 호응을 하지 않으면
반발이 일어나기 마련이죠.

순조도 20대에 접어들었던
재위 11년째 1811년
몰락 양반 출신이었던 홍경래가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른바
홍경래의 난이 터집니다.

당시 조선에선 평안도에 대한 지역차별이 극심했고
이 지역차별로 인해
1차적으로 반란이 터졌다고 하지만

실상은 사회구조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마땅한 정책을
못 내놓고 있는 실정에
신분을 막론하고 그 혼란스러운 사회에
적응을 못한 세력들이
불만을 축적시키다가 터져 나온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안도 전체가 다
홍경래의 수중에 넘어갈 만큼
매우 위험한 사태였지만
1812년 결국은 진압됩니다.
이 여파로 약 2000명의 목이 잘려
나갔습니다.

반란 자체가 문제긴 하지만
실제 당시 조선 정부는
왕이나 신하들이나 사회개혁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이러니 천주교는 더더욱 퍼지고
지식인들은 사회를 등진 채
실학을 공허하게 외치고 있고
각종 사이비 종교들이 유행했던 겁니다.

시대는 변하는데
이를 수습할 사람이 조선에 없었고
있어도 나서지 못하는
폐쇄적 사회였던 거죠.
순조는 아버지 정조 같이
야망과 이상향을 기대할 수 없는
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