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을 사 먹는다는 건 공상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옛부터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을 희대의 사기꾼이라 했던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환경부에서 24년, 전국 7만 가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정에서 물을 마실 때, 약 37.9%만이 수돗물(끓여서)을 먹는다고 응답했습니다. (정수기-53.6%, 생수-34.3%, *중복 응답 포함)
다시 말해 70% 정도는 정수기나 생수 구매로 물을 마신다는 것인데요. 특히 생수 시장은 매 해 괄목할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2010년에는 3,900억 규모였던 것이 2023년에는 2조 원을 넘겼고, 2025년에는 3조 원을 넘을 것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선택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 수돗물은 그 품질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큼 좋기도 하고, 매우 저렴하기도 한데, 왜 우리는 수돗물 대신 생수를 선택하게 된 것일까요.
수돗물 대신 생수를 마시게 된 이유
1. 불법이었던 생수
1980년 대 까지는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만 판매 허용

1976년, 최초의 생수가 판매됩니다. 하지만 이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미군 부대 납품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내국인에게 생수 판매는 금지 되었는데요. 물을 사 먹으라는 것은 수돗물에 대한 품질 관리가 미흡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나 먹어야 하는 물에 비싼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빈부격차에 따른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도 생수 판매 금지의 이유였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한시적으로 생수 판매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다시 규제하였습니다.
2. 수돗물에 대한 불신
90년 대 여러 수질 오염 사건들로
수돗물에 대한 우려가 늘어남

하지만 생수는 불법으로 성행했는데요. 당시 수출을 조건으로 허가를 받은 생수 제조 업체들의 생산량 중 90% 이상이 국내 시장에 불법 유통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다수의 국민은 불법으로 생수를 사 먹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미 덩치가 커진 생수 문화의 흐름은 법이나 제도로 막을 수 있는 정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타오르는 분위기에 기름을 통째로 부어버린 사건이 벌어지는데요.
- 낙동강 페놀 원액 유출 사건

1991년, 구미에 있는 두산전자의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 페놀 원액 약 30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낙동강을 식수원으로 삼는 영남 지역 일대는 발칵 뒤집혔는데요.
페놀은 1ppm(mg/L)만 넘어도 암, 중추신경장애 등을 일으키는 물질입니다. 오염된 물은 특히 대구시 거의 모든 지역에 식수로 공급 되었고, 일부 주민들은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자연 유산, 임신 중절 등의 가슴 아픈 일도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사건 보름 만에 페놀 원액 2톤이 추가 유출되는 어이 없는 일이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간 페놀이 섞인 폐수 325톤을 낙동강 지천에 무단 방류했던 사실도 드러나며 그야말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사건 외에도 수돗물 중금속 검출(89년), 발암물질 파동(90년) 등이 있었지만, 낙동강 페놀 원액 유출 사건은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키운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3. 생수 시판 공식 허용
행복추구권을 이유로 생수 판매 금지 무효 판결
이후 관리법 제정 하에 생수 시판 시작

수돗물을 믿지 못하게 된 국민들의 선택은 암암리에 구할 수 있었던 생수였고, 공식적인 판매 허용에 대한 목소리는 점차 커졌습니다.
결국 정부에서도 생수 시판을 고민하게 되는데요. 이는 총선을 앞둔 여, 야당의 정치권 대립으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여당에서는 생수 구입이 어려운 빈부층으로 부터의 반발을 걱정했고, 야당은 정부가 수돗물 관리를 포기하는 것이라 비난했습니다.
국민, 정부, 정치권의 대립은 결국 대법원으로 판결로 넘어가게 되었는데요.
1994년 3월 8일, "생수 판매 금지는 국민의 깨끗한 물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마실 수 있는 헌법상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무효를 판결합니다.

이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생수에 대한 광고 전면 금지와 현혹 시킬 수 있는 제품 이름 대신 먹는 샘물이라는 이름을 써야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먹는물 관리법'을 제정하고, 드디어 생수가 시중에 공식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합니다.
4. 폭발적인 성장
시판 이후 날개 돋힌 판매
최근 10년 간은 시장 규모 10배 성장

생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판 직후부터 판매량이 치솟기 시작했는데요. 한 때는 생수의 가격이 휘발유 가격과 비슷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공급이 수요을 따라가기 힘들었고, 앞다투어 많은 업체들이 생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00년 대 들어 경제 호황이 사라지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생수 시장 만큼은 꾸준하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요. 2000년에는 1,500억 규모였던 것이 2010년에는 5,400억을 넘겼고, 특히 펜데믹을 거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며 2025년에는 3조원이 넘는 규모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 택배 발전도 한 몫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앞으로도 성장 예상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바로 집에 배송되는 편리한 택배 시스템도 생수 판매량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L짜리 생수 10통만 사도 20kg인데, 사실 이 정도의 양은 들고 사오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생수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데 정수기 가격은 부담스럽고, 수돗물을 끓이는 것은 귀찮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생수를 간편히 주문하는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생수가 수돗물에 비해 아쉬운 점
먹는 물로 생수가 보편화 되고 있지만, 절대적인 정답은 아닙니다. 특히 수돗물에 비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가집니다.
1. 수질 관리
꾸준하게 소음이 있는 수질 관리

생수의 품질 관리는 환경부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취수한 물에 대해서 48가지, 병입까지 완료된 완제품에 대해 52가지 항목으로 엄격한 심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위반 사항이 매 해 여러 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24년 6월 환경부 공표 기준, 생수 제조 업체는 57곳인데 그 중 약 40%가 수질 부적합으로 처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 처벌의 강도가 약한 편이며, 위반 내용은 환경부 홈페이지에 3개월 가량만 고지하고 이후에는 내리기 때문에, 해당 사항을 소비자가 알기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지만, 현행 관리법에 대한 개선은 특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생수의 수질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화학 처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수는 지하수나 용천수를 최소한의 물리적 여과를 통해 최대한 자연 상태 그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먹는샘물 이라고 합니다.
반면 수돗물은 물리적 여과에 화학적 정제를 통해 유해성이 있는 모든 물질을 제거하기 때문에, 수질 면에서는 생수보다 믿을 수 있습니다.
2. 가격
수돗물에 비해선 훨씬 비쌈

생수 2L 1통 가격은 600~1,000원 정도로 L당 가격은 300~500원 꼴입니다. 그 에 비해 수돗물의 L당 가격은 0.8원 정도로 1원을 채 하지 않습니다.
즉, 생수가 수돗물 보다 최소 300배 이상 비쌉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수돗물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편이기도 합니다.
3. 페트병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문제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화두

생수는 사실 환경에는 좋을 것이 없습니다. 플라스틱 페트병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에 의한 오염이 심각한 수준으로 도마에 오르면서, 생수 페트병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고, 아직은 정확히 검출하기도 힘든 초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경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최종적으로 해양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실제 해산물에 미세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들어 있을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인 경량 페트병 권장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일환으로 최소한의 양만 사용한 페트병 개발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유통 과정이나 음용 간 페트병의 찌그러짐을 막기 위해서 500mL 기준 20g 내외의 플라스틱 사용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구조를 개선해 10~12g 정도로 사용량을 줄인 경량 페트병도 종종 보이며, 질소 충전으로 찌그러짐을 막고 플라스틱 사용량을 10g 미만으로 줄인 초경량 페트병도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선 이러한 경량, 초경량 페트병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가장 좋은 것은 사용하지 않는 것
하지만 역시 환경을 생각한다면 페트병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환경 관련 전문가들은 수돗물 관리가 우수하다면 수돗물을 음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처럼 수돗물 품질이 뛰어나다면 수돗물을 먹는 것이 환경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