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정한 인마일체(人馬一體)... 로터스 에미라 I4 DCT [시승기]

조회 4182024. 11. 27.
자동차 분류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2도어 쿠페를 예로 들어보자. 여유로운 성능으로 장거리를 편하게 이동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그랜드 투어러가 있다. 반대로 트랙에서 최고의 랩타임을 뽑아내도록 만든 트랙 포커스드카도 있다.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추가하는 등 무게를 늘려서라도 제로백과 같은 가속 성능에 초점을 맞춘 모델도 존재한다.

'모든 것 다 필요 없다. 오직 가볍고 운전 재미에 100% 집중하겠다'는 2도어 쿠페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로터스 에미라다.

사실 '숫자'만 따지면 에미라는 조금 초라해 보일 수 있다. 시승 모델은 4기통 2.0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이 쓰였다. 최고출력은 364마력, 최대토크는 43.9kgf.m 정도. 0-100km/h은 4.4초가 소요된다.

요즘 국산 전기차도 600마력을 넘게 뽑는 시대에 '겨우 364마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에미라는 가벼운 무게가 무기다. 공차중량이 1450kg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벼움은 스포츠카의 기본인 만큼, 이를 바탕으로 잠재력을 끌어낸 성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디자인은 멋지다. 보기에 따라서 페라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쉐보레 콜벳이 떠오기도 한다. 마세라티 MC20도 닮았다. 그래도 어디서 베껴온 느낌 없이 로터스만의 스포니한 이미지를 잘 전달해서 마음에 든다.
사진으로는 낮고 넓고 꽤나 커보이는데, 실제로 만나면 에미라가 꽤나 작은 차라는 것이 느껴진다. 전체적인 길이는 4.4m가 조금 더 넘고 폭은 1.9m 수준이다. 대신 높이가 1.2m 수준으로 매우 낮다. 현대 코나 정도 길이를 가진 납작한 자동차 느낌이라면 와닿을 듯하다. 컴팩트한 크기만큼이나 휠베이스도 2570mm로 짧은 편이다.
미드십 슈퍼카의 포스를 갖지만 의외로 심플하다. 가변 스포일러나 윙도 없다. 그렇다고 자동차에 화려한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다. 순수한 자동차의 디자인만으로 확실한 에어로다이내믹 성능을 만들어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로터스의 설명이다. 그런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계기판에서 주행속도에 따른 다운포스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링 기능을 넣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로터스를 생각했다면 실내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워졌다. 알루미늄 패널이 그대로 노출됐던 예전의 로터스와 달리 가죽 마감, 알칸타라 마감 등 소재 사용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각종 레버나 버튼 조작감도 좋다. 더 이상 어디 한군데 나사 빠진 것 같은 로터스에서 확실히 벗어났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선바이저를 열었는데 거울이 없었다. 이것도… 경량화일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간단한 메뉴 구성 덕분에 쓰기 편했지만, 이따금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반응이 빨랐다가 느렸다가 오가는 문제를 보이기도 했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포르쉐 718과 달리 프런트 트렁크가 없다는 점은 두고두고 비교당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차키 디자인은 변경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일까? 로터스만의 달리기 즐거움을 보여주면 이 정도는 단점 축에도 못 들 것이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어본다. 시트 뒤에서 메르세데스-AMG 엔진이 깨어난다. 엔진 위치 때문인지 AMG A45나 CLA 45에서 느껴졌던 사운드와 꽤 다르다. 상당히 건조한 음색을 전달한다고나 할까?
전자식 기어 레버를 조작해 출발을 시작한다. '부릉~'거리며 차가 앞으로 가지 않는다. D로 두기 위해서는 P 상태에서 레버를 아래로 두 번 당겨야 한다. 이 상태에서 R로 바꾸기 위해서는 위로 두 번 올려야 한다. 페이스리프트 전 볼보 변속기 조작 방식이다. 여기에 사이드미러 조작 버튼이나 스티어링 칼럼에 위치한 레버 등에서도 볼보 부품이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과 스웨덴 브랜드가 같은 집안으로 묶였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기어 조작법도 알았으니 진짜로 출발해 본다. AMG의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맞물리면서 에미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는데… 무겁다. 요즘 자동차의 모터 서포트 시스템이 너무나도 가벼워지는 추세에서 에미라를 접하니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일단 주행이 시작되면 불편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유턴하거나 주차하는 과정에서 내가 제대로 된 스포츠카를 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페달 조작감이 독특하다. 우선 가속페달을 밟는 깊이가 꽤 깊다. 일반적인 차량 정도를 생각하고 밟았는데 거기서 더 들어간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엔진을 세밀하게 컨트롤하기 딱 좋다. 엔진 컨트롤을 위해 엄지발가락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무거울 줄 알았던 브레이크 페달은 여느 승용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보다 살짝 스트로크가 짧긴 하지만 맥라렌처럼 무겁거나 새로운 느낌을 전달할 정도는 아니다. 차량이 가벼워서 그런지 몰라도 초반 응답성도 적당히 좋아 가다 서다 반복되는 시내 환경에서도 거부감 없다. 대신 수동변속기 조작을 감안한 설계 때문인지 브레이크 페달 위치가 가속페달과 조금 더 가까이 자리한다. 힐앤토 하며 달리라는 것이다. 물론 에미라 I4는 패들을 쓰겠지만.
패들이 위아래로 길다. 꽤 두툼하게 잡히는 감각과 다르게 조작감은 얕은 스위치를 누르는 느낌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패들이 더 많이 눌리는 느낌이 구현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단점까지는 아니다.
에미라는 전반적으로 운전자에게 긴장감을 전달한다. 최근 미드십 스포츠카들이 승용차와 유사한, 혹은 GT카 성향을 자주 보여주지만 에미라는 운전하는 것 자체부터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한다. 바닥에 붙어 움직이는 시트 포지션, 탄탄한 승차감, 노면의 굴곡까지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스티어링 시스템, 시트 뒤에서 바로 들려오는 터보엔진까지… 분명 일반적인 자동차와 결이 다르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본다. 터보차저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엔진 회전수가 빠르게 오르며 가속을 시작한다. 적당히 가볍게, 그리고 빠르게 가속하는 감각이 좋다. 순수 토크감만 따지면 500마력대 대비 부족하긴 하다. 하지만 가벼움을 무기로 하는 에미라의 속도 상승 속도 자체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다만 어느 정도 터보랙은 있는 편이다. AMG 4기통 엔진의 특징 중 하나다. 그래도 차량 자체가 가볍기 때문에 굼뜬 움직임까지 보여줄 정도는 아니다. 변속기는 최대한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고자 하지만 이따금 덜컥 걸리는 충격이나 클러치가 연결되고 끊어지는 감각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예상은 했지만 절대 조용한 과는 아니다. 세미슬릭 타이어에 속하는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컵 2타이어가 굴러가는 소리, 바람 소리, 뒤에서 작동하는 엔진소리 등이 끊임없이 전달된다. 로터스답게 흡음·차음재도 적게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가 감성적으로 다가온다면 믿을 수 있을까? 자동차를 이루는 모든 기계적인 요소가 운전자와 소통하는 느낌이다. 가속페달을 살짝만 터치해도 들리는 터보차저 작동 소리, 노면의 작은 요철도 바로 전달해 주는 스티어링휠, 막강한 접지 성능을 자랑이라도 하는듯한 타이어 돌 튀는 소리 모두가 감각적이다.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올려본다. 가볍고 여유로운 출력 덕분에 속도를 쉽게 올린다. 어댑티브 방식은 아니지만 크루즈 컨트롤도 있어서 나름 여유로운 주행이 가능하다. 이후 노면이 고르지 못한 구간에 진입하는데… 스티어링휠이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노면이 울퉁불퉁해지니 이를 밟고 지나갈 때 스티어링휠도 함께 움직인 것이다. 에미라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차로 중앙유지 기능들이 안 들어갔기 때문에 운전 중 딴짓은 더더욱 절대 금물이다.
와인딩로드에 접어들며 달릴 준비를 한다. 미쉐린 컵 2 타이어가 긴장감을 높여준다. 천천히 타이어 온도를 높여줘야 제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온도가 올라오기 전에 속도를 높이면 사고 발생 위험도 커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쉐린이 에미라를 위해 개발한 전용 OE 타이어로 개발한 만큼 상대적인 범용성까지 겸비했다는 것이다.

약간의 터보랙 이후 본격적으로 엔진이 힘을 내기 시작한다. 긴 직선 도로였다면 가속 성능에서 아쉬움이 나올 수 있지만 와인딩코스에서는 다르다. 최고 출력보다 차량의 밸런스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충분히 빠르고 강력하게 속도를 끌어올려 준다.

전기모터 서포트 없는 완전한 유압 방식의 브레이크 시스템은 밟으면 밟는 대로 차량을 멈춰준다. 그리고 차량이 어떻게 멈출지, 그 과정까지 운전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해 준다. 지금 충분히 멈출 수 있어, 지금은 열 받아서 조금 벅차, 아직 모자라 더 밟아 등등 언어도 다양하다. 최근 전자식 브레이크 시스템 이용이 많았는데 인제야 자동차와 제대로 소통하는 기분이다.

가벼운 차체에 강력한 브레이크 시스템, 여기에 매우 강력한 접지력을 가진 컵 2 타이어의 조합은 차량을 놀랍도록 빠르게 멈춰준다. 타이어 그립 자체가 강력하기 때문에 브레이크 조작을 꽤 터프하게 해도 ABS 작동 없이 멈춰줄 정도다.

완전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에서 노면에 따라 불안한 움직임을 보여주긴 했지만 제대로 달릴 수 있는 환경에서는 운전자와 제대로 소통하며 달려준다. 스티어링 조작에 따른 차량의 반응이 엄청나게 날카로운 편은 아니다. 그보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대신 차량의 이상적인 무게 배분과 섀시 튜닝 덕분에 전륜 움직임에 따른 후륜 거동이 꽤 빠르다. 미드십 스포츠카에서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반응인데, 휠베이스가 짧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안정적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방식이 방식이다 보니 살짝 올드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신 최근 일부 모델에서 나왔던 코너에서 갑자기 무게감이 사라진다거나 인위적으로 무거운 느낌 혹은 노면 피드백을 지나치게 걸러주는 아쉬움 자체가 없다. 순수하기 때문에 거짓 없이 에미라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역시 고속도로보다 서킷이나 와인딩로드가 에미라에 딱이다.

에미라의 서스펜션은 투어링과 스포츠로 선택할 수 있다. 이 외에 가변 댐핑이나 액티브 컨트롤 기능 등은 없다. 테스트 모델에 탑재된 사양은 스포츠 섀시. 일반 도로에서는 조금 단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달리는 환경을 만나니 딱 좋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부드럽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코너에서 롤을 완벽하게 막아줄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이 느낌이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차량의 움직임과 방향, 힘이 어느 쪽으로 실리는지 파악하기 쉬웠다고나 할까?

코너를 앞두고 브레이크 조작 후 다시 가속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올려 나간다. 이때 다소 스트로크가 길었던 가속페달이 제 역할을 한다. AMG 엔진처럼 살짝 터보랙이 있는 성격의 엔진은 코너 CP부터 가속페달 조작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무턱대고 밟았다가는 갑자기 쏟아지는 토크로 인해 위험한 움직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속페달을 밟은 상태로 엄지발가락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세하게 조작해야 하는데, 에미라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페달 스트로크가 길어 그만큼 여유로운 조작이 가능하다. 별것 아닌 차이 같은데 이것만으로 코너에서 빠르게 달릴 때 부담이 많이 줄어든다.

사실 변속기가 환상적이거나 광속과 같은 속도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필요할 때는 터프한 변속도 해주고 빠르게 달릴 때는 부드럽게 변속해 차량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유도하지 않는다. 다른 변속기 대비 큰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에미라의 가장 큰 라이벌로 비교되는 모델은 포르쉐 718이다. 작고 가볍고 미드십에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가격대도 겹친다. 하지만 의외로 꽤나 큰 성격 차이를 보인다.

718은 그야말로 완벽한 모범생이다. 어디 한군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달릴 때도 항상 진중하고 농담이란 단어를 모를 것 같은 그런 주행 감각을 준다. 스포츠카로는 완벽한 차가 718이다.

반면 에미라는 뭔가 조금 허술하다. 생긴 것은 슈퍼카 급인데 의외로 가속 성능은 평범하다. 서스펜션이 단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롤도 생긴다. 스티어링휠, 페달 등 조작 감각은 요즘보다 옛날 차에 가깝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다. 그동안 쉽게 속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만 만났다가 오랜만에 나의 모든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동차와 사람이 하나 되어 달리는 인마일체(人馬一體) 감각을 전달하면서도 빠르게 달리는 능력만큼은 718에 뒤처지지 않거나 오히려 그 이상이다.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를 접하면서 그동안 너무 '인공적인 맛'에 길들여졌다. 요즘은 스피커로 인공적인 엔진사운드를 들리게 만드는 기술이 많이 보편화됐다. 스티어링휠은 자체적으로 운전자에게 불필요한 충격을 필터링해 준다. 엔진에는 전기모터가 더해져서 출력과 연비가 높아졌다. 심지어 아우디 e-트론에는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시스템이 탑재돼 물리적인 연결 없이 브레이크를 조작할 수 있게 됐다. 갈수록 자동차를 가상의 세계에서 운전하는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에미라의 등장이 자동차 세계의 '디지털 디톡스' 느낌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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