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신작 '호프' 칸서 공개되자… 2,300명이 7분간 기립박수 쳤다
외계 괴물이 등장하는 액션 스릴러
"액션과 코미디가 어우러진 작품"
편집자주
나홍진 감독 '호프'를 비롯해 다수 작품이 초청되고 박찬욱 감독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제79회 칸국제영화제. K영화 향연으로도 반가운 세계 최고 영화제 현장에서 고경석 기자가 생생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 영화가 시작하고 나홍진 감독의 영문 표기 ‘HONGJIN NA’가 뜨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몇 분이 지나고 제목 ‘HOPE’가 화면을 채우며 다시 박수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주인공 황정민의 활약에 이어 정호연이 등장할 때도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턱시도와 격식을 갖춘 드레스만 허용되는 칸영화제 경쟁부문 공식상영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2시간 40분간 이어진 나홍진표 액션 블록버스터가 끝이 나자 2,300여 관객은 7분여 기립박수로 독특한 액션 영화의 등장을 응원했다. 나 감독은 이에 “긴 영화인데 이렇게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한국 영화 사상 단일 작품으로는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인 만큼 이날 ‘호프’(국내 여름 개봉) 상영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에서 뜨거웠다. 데뷔작 ‘추격자’부터 ‘황해’ ‘곡성’까지 세 편 모두 칸의 공식 초청을 받으며 독특한 ‘K장르영화’를 구축해온 나 감독의 신작답게 이날 저녁 열린 세 차례의 상영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여분의 티켓이나 초청 티켓을 구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피켓을 들고 상영관 인근에 늘어서기도 했다. 나 감독의 팬이라는 프랑스 남성 크리스토프는 “10년 전 ‘곡성’을 여기 칸에서 봤기에 ‘호프’도 꼭 첫 상영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베일을 벗은 ‘호프’는 뜨거운 관심에 부응하기에 충분한 영화다. 나 감독의 인장이 곳곳에 새겨진 작품이지만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성격으로 의외성을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외부의 불가사의한 위협에 대한 마을 공동체의 공포라는 점만 보면 ‘곡성’이 생각날 법하지만 전체적인 결은 크게 다르다.

비무장지대 인근 외딴 항구 마을 호포항이 괴생물체의 출현으로 쑥대밭으로 변하자 파출소장 범석(황정민)은 공포에 떨며 괴물 추격에 나선다. 성기(조인성)가 이끄는 마을 청년들도 산속 깊숙이 들어가 괴물 사냥을 시작한다. 2시간 40분에 이르는 긴 영화지만, 이 정도 기본 정보 외에는 줄거리라고 할 만한 내용이 많지 않다. 범석과 순경 성애(정호연) 등이 모인 경찰팀과 성기 등의 청년팀이 외계에서 온 괴물과 벌이는 혈투가 이어진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모션 캡쳐와 페이셜 캡쳐를로 완성한 외계인 이야기가 막판에 조금 등장하긴 해도 후속작을 위한 예고편 성격에 가까우며, 등장인물의 서사는 기껏해야 몇 줄 정도로 간략하게 정리될 만한 수준에 그친다. 쏘고 달리고 넘어지고 또 쏘고 달리고 넘어진다. 빈약한 서사에도 나 감독 특유의 광기 어린 촘촘한 연출과 편집은 극한의 몰입도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런 가운데서 유머러스한 촌극이 몇 차례 이어지며 영화는 종종 코미디로 변신하기도 한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액션과 코미디가 어우러진 작품에서 장르를 오가며 혼돈의 무대를 펼쳐 보인다”고 설명했다.


3부작으로 기획된 대작 시리즈의 첫째 편으로 긴 오프닝 같은 성격의 ‘호프’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SF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다. 글로벌 패션지 보그 프랑스판은 이날 상영 후 “이 영화가 경쟁부문에 선정됐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며 “전통적으로 대중적인 오락 영화가 배정되는 비경쟁부문에 초청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호프’는 보여주지 않는 영화다. 시작하자마자 괴물의 등장이 예고되고 이내 마을을 초토화시키지만 1시간이 가깝도록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괴물의 외양이 공개된 뒤에도 어디에서 왜 왔는지, 등장인물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궁금증은 영화가 끝날 때쯤 조금 풀리지만 완전히 해소되진 않는다. 이로 인해 관객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화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다소 어설픈 CG(컴퓨터그래픽)에도 특수효과는 훌륭하고 크리처 디자인은 독창적”이라며 “유쾌한 유머 감각, SF 호러의 신선한 해석, 스릴 넘치는 액션까지 신나는 영화”라고 호평했고, 프랑스 영화 매체 프리미어도 “지적인 측면은 별로 없지만 탁월한 연출과 편집 감각으로 완벽하게 기상천외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고 칭찬했다. 다만 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는 “첫 3분의 1은 나 감독의 전작으로 인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끔찍한 대본과 최악의 CG로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황금종려상 등 ‘호프’의 수상 여부는 23일 시상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칸=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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