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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하은용 부사장의 어깨는 무겁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인수 자금 외 통합 자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반면 업계에서는 딜이 무산될 경우, 한진칼이 만일의 하나 또 다른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어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연이어 한진칼이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상황도 이런 대비책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하 부사장의 부담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30년 '재무통' 아시아나항공 인수 전후 자금흐름 책임
하 부사장이 딜 성사와 무산, 두 가지 시나리오에 모두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CFO를 겸직하고 있어서다. 하 부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막전막후의 자금 흐름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하 부사장은 한진그룹의 ‘재무통’이다. 한진그룹에서 30년 넘게 근무해왔다. 1961년생인 하 부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8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한진의 재무담당 상무를 지내다 2016년부터 대한항공에서 재무본부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CFO를 맡고 있다. 같은 해 조원태 회장이 취임 후 처음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다.
하 부사장은 조원태 회장이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는 가운데에도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대한항공에 순조롭게 수혈했다. 대한항공이 유증은 물론이고 차입까지 해결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 부사장의 공이 컸다는 평가다.
산업은행 지원으로 지배력 유지 성공
향후 하 부사장의 재무전략 수립 시나리오는 산업은행에 달렸다. 산업은행은 조원태 회장이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 2021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경영권 방어가 시급했다. 반(反) 조원태 회장 동맹인 ‘제3자 연합’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율은 46%였다. 조원태 회장 측 우호 지분율보다 5%가량 앞서 있었다. 그대로라면 3자 연합이 한진칼 이사회를 장악하는 상황이었다.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한진칼 지분 10.66%를 확보하면서 3자연합 측의 지분율은 41.8%로 줄었고, 조 회장 측의 우호 지분율은 47.33%로 늘었다.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8000억원을 투입한 결과다.
조원태 회장은 산업은행을 등에 업고 2021년 주총에서 한진그룹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나아가 산업은행은 지난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약화를 가져올 수 있는 KCGI의 주주 제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원 명분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에 따른 항공산업 구조개편이었다. 한진칼은 산업은행의 자금 등을 포함해 2조5000억원 규모의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대한항공은 이중 1조80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쓸 예정이다. 금호건설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가 인수 대상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20년부터 대한항공은 지분율 63.9%로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될 계약을 하고 준비를 마쳤다.

일련의 과정에서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한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는 매우 공고해졌다. 지주사인 한진칼을 중심으로 한진과 대한항공 등의 계열사를 자회사로 두게 됐다. ‘조원태 회장→한진칼 →대한항공→진에어’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모든 과정에 하 부사장의 전략과 실행력이 담겨 있었다는 평이다.
'독과점' 이슈 큰 산...미·EU·일 3개국 남아
하지만 요즘 한진그룹과 하 부사장, 그리고 조원태 회장은 더 큰 산을 만났다. 바로 독과점 이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공식화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딜이 성사되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세계 7위권의 초대형 항공 국적사가 탄생하게 된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기체는 173대, 아시아나항공은 86대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순위는 각각 29위, 41위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국내 7개 인기노선의 점유율은 무려 100%에 달한다. 양사가 운항하는 143개 국제 노선 중 58개가 운항이 같다. 통합할 경우 점유율 50%를 넘는 운항은 전체의 22.4%가 된다. 합병 법인이 인기노선과 황금시간 노선을 독점할 경우 운임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2월 공정위는 국제선 26개와 국내선 14개 노선에 대한 경쟁이 제한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뉴욕과 파리 등 일부 노선의 슬롯과 운수권을 떼어내고, 운임 인상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슬롯이란 시간당 비행기 이착륙 횟수를, 운수권은 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를 말한다.
이밖에 영국은 인천-히드로 노선에 대한 슬롯 반납을, 중국은 김포발 베이징·상하이·청사·톈진 노선에 대해 일부 슬롯 반납을 조건으로 합병을 승인했다.
그러나 14개국 중 11개국에서 기업결합을 승인 받았지만 나머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은 심사 결과 발표가 올해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승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뉴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EU집행위원회는 당초 8월로 결정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심사를 오는 10월로 연기했다. 한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4개 노선에서 여객 운송, 유럽과 한국간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이유다. 대한항공이 티웨이항공에 화물기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합병 승인시 통합 자금 비용 조달해야
기업결합이 승인될 경우 또는 승인이 되지 않아 합병이 무산될 경우, 어떤 경우라도 하 부사장의 어깨는 무겁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을 위한 아시아나항공 유상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 이미 마련된 유증 자금 외에도 대한항공 CFO를 겸직하고 있는 하 부사장은 이에 따라 통합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당초 시장은 추가 통합 자금으로 약 6000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다. 두 항공사의 항공권 예약과 고객 관리 전산 통합 등에 쓰는 비용이다.
그러나 이런 통합 비용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 항공의 재무 상황이 날로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말 연결기준 1387%였던 부채비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2098%로 늘었다. 차입금 의존도는 56%로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아시아나 항공의 재무 안정을 해 추가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한항공과 합병을 기다리는 지난 3년여간 영업망이 무너지고 우수 인력이 이탈하는 등 경쟁력 약화 현상도 목격된다.
합병 무산되면, 조원태 회장 경영권 '위태'
기업결합이 불승인되는 반대의 경우도 전략 수립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한진칼은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 혹시 모를 경영권 분쟁에 대비, 우호지분 확보에 나설 자금이 필요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여전히 우호 지분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기타 주주의 지분율 변동에 늘 신경을 써야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산업은행마저도 합병이 무산되면 한진칼 지분 보유 명분이 엷어진다는 약점도 한진칼로서는 부담이다.
17일 네이버 증권에 따르면 장 마감 기준 한진칼의 시가총액은 2조9042억원이다. 이날을 기준으로 조원태 회장이 산업은행의 지분을 챙기려면 약 3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 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조차 어렵다.
다만 한진칼의 연이은 유동성 확보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6월 하 부사장은 한진칼이 보유한 진에어 주식 전량을 자회사인 대한항공에 매각, 6048억원을 확보했다.
올 초 주주총회에서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한도를 3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한진칼이 서소문사옥 건물과 토지를 대한항공에 2600억여원에 팔았다.
지난 1분기 연결기준 한진칼이 보유한 단기차입금은 240억원 규모다.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은 2812억원, 영업현금흐름은 1152억원이다.
최근에는 산업은행의 아시아나항공 제3자 매각설도 흘러 나와 불투명성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이 합병 무산에 대비해 아시아나항공 안정화 방안 컨설팅 용역을 발주했다는 내용이다.
산업은행 측은 “현재 수행 중인 용역은 아시아나항공이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항공시장 변화에 대비해 자금수지 점검 등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해당 용역은 제3자 매각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한진칼 측은 “자금소요에 따른 유동성자금 확보 차원"이라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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