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전자 재고 1년새 8.6兆 급증..車·화학도 수천억씩 더 쌓여
■재고자산 100조 돌파
S-OIL 2조·현대차 5000억↑ 등
코로나 대비했다 '복합위기' 역풍
원자재 가격에 비축 수요도 영향
올 2분기까지 '최소 18조' 증가
"하반기 더 심각..구조개선 시급"
지난 1년간 매출 100대 기업의 재고자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회사들이 그간 코로나19 특수를 대비해 공급을 크게 늘렸다가 역풍을 맞은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공급망 위기, 원자재 값 급등,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복합 위기를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 원자재 가격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면서 원재료를 미리 비축하려는 수요도 재고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 나온다. 더욱이 재고자산의 증가 양상은 정보기술(IT), 자동차, 정유·화학, 철강, 조선 등 대부분의 업종에 전방위적으로 걸친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들이 연초와 정권 교체기에 약속했던 투자까지 연쇄적으로 연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8일 서울경제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매출 상위 100대 기업(지난해 말 기준, 공기업·금융사 제외)의 별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재고자산 총계는 올 들어 유독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9년 1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2년 넘게 70조 원 초중반대에 머물던 100대 기업의 재고자산은 비대면 수요 증가로 IT 시장이 성장하면서 지난해부터 시나브로 늘기 시작했다. 재고자산은 2021년 1분기 74조 1373억 원으로 반등하더니 같은 해 3분기에는 80조 원을 넘어섰다.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각국이 속속 코로나19 일상 회복에 나선 점도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린 이유가 됐다.
올 들어서는 전혀 다른 이유로 재고가 쌓였다. 예기치 못한 복합 위기로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미리 만들어 놓은 상품이 창고에 남았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원자재를 비축해야 한다는 기업들의 수요도 컸다. 포스코를 비상장 사업 법인으로 떼어낸 매출 5위 기업 포스코홀딩스의 수치를 제외했음에도 올 1분기 100대 기업 재고자산(89조 4675억 원)은 지난해 4분기(88조 5679억 원)보다 더 많았다.
나아가 올 2분기에는 세아베스틸을 비상장사로 물적 분할한 세아베스틸지주의 재고 수치까지 뺐는데도 그 총액이 98조 1471억 원에 달했다. 재계에서는 포스코와 세아베스틸의 재고자산이 포스코홀딩스의 지난해 말 수준(7조 6232억 원), 세아베스틸지주의 1분기 수준(5089억 원)보다 결코 줄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100대 기업의 실제 재고자산이 최소 지난해 말보다 18조 원가량 증가한 106조 원 이상은 될 것이라는 추산이다. 기업별로는 전자 업계의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재고자산이 1년간 각각 8조 5955억 원(67.1%), 2조 3390억 원(47.0%) 증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이 20조 원, 7조 원을 넘어선 것은 모두 지난 2분기가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은 연결 재무제표상으로는 52조 922억 원, 11조 8787억 원이나 되지만 중복 집계 가능성 때문에 이번 분석에서는 별도 재무제표로만 계산했다. 부품 업체인 삼성전기(009150)와 LG이노텍(011070)도 해당 기간 4619억 원, 8600억 원에서 7562억 원, 1조 1774억 원으로 재고 규모를 확대했다.
자동체 업체 가운데는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 현대모비스(012330)가 지난해 2분기 2조 8283억 원, 1조 7411억 원, 1조 6568억 원에서 올 2분기 3조 2967억 원, 2조 1575억 원, 2조 544억 원으로 재고를 대폭 늘렸다. 최근 중국의 저가 공세로 적자 늪에 빠진 LG디스플레이(034220)의 재고도 같은 기간 1조 8134억 원에서 3조 504억 원으로 폭증했다.
재고의 늪에 빠진 것은 정유·화학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S-OIL, LG화학(051910), 롯데케미칼(011170), 금호석유(011780)화학의 재고자산은 3조 653억 원, 2조 3759억 원, 1조 4326억 원, 4378억 원에서 5조 6766억 원, 3조 5899억 원, 1조 9464억 원, 5293억 원으로 늘어났다. 배터리 기업인 삼성SDI(006400)도 처분하지 않은 재고가 7878억 원에서 1조 3859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철강·해운·조선·에너지 업종도 불황을 피할 수 없었다. 해운 업체 HMM(011200)과 고려아연(010130), 동국제강(001230)의 재고자산은 1년 전 2049억 원, 1조 8338억 원, 6670억 원에서 4050억 원, 2조 5203억 원, 1조 2026억 원으로 각각 증가했다. 대우조선해양(042660)과 SK가스(018670)의 재고는 7874억 원, 3527억 원에서 1조 6996억 원, 5756억 원으로 급증했다.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 역시 5554억 원, 1896억 원에서 6860억 원, 2335억 원으로 재고 축적 수준을 높였다.
재계에서는 올 하반기 재고 수준이 2분기보다 월등히 늘었을 것으로 관측했다. 상반기까지는 위기의 신호가 고조되는 수준이었다면 3분기부터는 경기가 본격적으로 침체 국면에 들어선 탓이다. 최근 전경련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10월 재고지수는 부정적 전망이 다수인 105.6(100을 넘으면 재고 과잉)을 기록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올 2분기 산업활동동향의 제조업 재고지수는 18.0% 더 올라갔다. 분기 기준으로 1996년 2분기(22.0%)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 폭이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가용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생산 감소, 고용·투자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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