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금 못드립니다"… 신의료기술 발목잡는 의료자문

이병문 매경헬스 기자(leemoon@mk.co.kr) 2024. 10. 2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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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수급자 걸러내기 위해
제3의 의사 의학소견 구해
자가 골수줄기세포 주사등
신의료기술 인정받은 치료
의료자문 핑계로 지급거부
주치의·환자의견 배제된채
자문해준 의사도 공개안돼
심평원도 병원측 손들어줘
한 무릎관절 전문병원 의료진이 자가 골수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보험금 부정 수급자를 걸러내겠다고 보험사가 제3의 의사에게 의학적 소견을 구하는 '의료자문'이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보험급을 주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모호한 의료자문 의사의 선정과 그 기준,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보다 주로 외부 전문가의 의견 반영, 가장 객관적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결정 미반영 등의 논란이 계속되며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나 손해사정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주치의 또는 주치의 소견 발급이 어려운 경우에 주치의 이외의 전문의에게 의학적 소견을 구하는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실손보험금은 환자가 관련 서류를 구비해 제출하면 며칠 내 지급되지만, 일부는 보험사 당담자가 보험청구인(환자)과 만나 '제3 의료기관 자문 동의서'를 요구한다.

보험금 지급은 환자 상태와 치료 과정을 가장 잘 아는 주치의 소견을 존중해 끝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환자가 제출한 서류에 이견이 있으면 보험사는 제3 의료기관의 자문을 받기 위해 동의를 구한다. 의료자문 동의는 대개 보험사가 보험금 청구액이 과도하고 지급 기준이 명확치 않다고 생각해 주치의 및 환자 의견이 배제된 채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한다.

최근 들어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자가 골수줄기세포 주사치료(BMAC 치료)'와 '자가 지방줄기세포 주사치료(SVF 치료)'에 대한 보험사의 제3 의료기관 의료자문 오남용이 논란이다. 특히 신의료기술은 새로운 의술로 주치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데, 줄기세포 주사치료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의료진이 보험사가 의뢰한 서류만 보고 의료자문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보험사가 병원의 과잉진료를 폭로하기 위해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제도'를 의뢰했지만, 심평원이 '정당하다'고 회신하는 등 좌충우돌식 행보를 보여 눈총을 받고 있다. BMAC 치료(무릎 골관절염에 대한 골수 흡인 농축물 관절강 내 주사)는 지난해 7월 12일, SVF 치료(무릎 골관절염 자가지방유래 기질혈관분획 관절강 내 주사)는 올해 6월 28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으로부터 모두 안정성·유효성이 있는 것으로 최종 심의·통과되어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았다. 이들 줄기세포 주사 치료는 기존 비수술 치료로는 호전이 없고 인공관절 수술을 하기에는 이른 중기 관절염(2·3기 무릎 골관절염 및 3·4기 연골 손상) 환자들의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의료자문의 가장 큰 논란은 투명성과 공정성이다. 사실 보험사가 선정한 제3 의료기관과 의사의 명확한 기준이 없다. 또한 어느 진료과 어떤 의사가 자문을 했는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의료자문 의사를 보호한다는 명분이지만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보험사가 지난 1년간 의료자문을 시행한 대학병원 13곳을 보면 국내 순위 10~20위권(뉴스위크 선정 기준)이 4곳, 나머지는 모두 20위권 밖이었고 주로 하위권 3~4곳에 집중돼 있다. 보험사가 자신에 유리한 답변을 해주는 의료기관에 집중 의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줄기세포 주사치료는 주로 정형외과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의료자문을 정형외과에서 봤다고 특정할 수는 없다. 보험사가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BMAC 치료를 의료 자문한 대학병원은 BMAC 치료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보험사의 의료자문 회신을 보면 " 본회신서는 수신자를 직접 진찰한 소견이 아니며 첨부된 의학적 자료만으로 작성한 소견임을 참고하시기 바란다"면서 "진료 기록에 의한 자문으로 타 용도, 즉 소송자료 및 법적 송무 자료 등으로 사용할 수 없다. 타용도로 활용 시 무효"라고 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 의뢰한 자문 결과에 확신이 없다고 읽힌다.

의료자문 논란이 확산되자 일부 학회는 보험사의 의료자문을 가능한 한 하지 말라고 회원들에게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형외과 의사는 "무릎관절염 골수 줄기세포 주사치료 대상자는 적응증이 KL 2·3등급(관절 간격이 명확하게 좁아진 상태) 또는 ICRS 3~4등급(연골이 50% 이상 손상)에 해당하는 환자로, 의사마다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간다"며 "신의료기술은 주치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사들은 줄기세포 주사치료(BMAC·SVF 치료)와 관련해 의료자문을 받고 △하루 간격을 두고 반월상 연골판 절제술을 시행하고, BMAC 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적정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로 보기 어렵다 △BMAC 치료 후 특별한 부작용 및 합병증이 확인되지 않는다 △BMAC 치료는 국소마취로 시행할 수 있고, 1시간 내외로 시행할 수 있어 반드시 입원이 필요하지 않는다 등을 사유로 실손보험금(본인부담금+인정(법정)비급여) 지급을 보류하고 있다. 특히 양쪽 무릎 반월상 연골판의 관절경(관절내시경) 절제술을 시행하는 것은 적정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반월상연골판 절제술을 시행하고 하루 뒤 BMAC 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적정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로 보기 어렵고, 신의료기술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보험사들이 의료자문을 토대로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는 관절경 수술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봉합까지 종료된 상태에서 수술 경과를 지켜본 후 하루 뒤 BMAC 치료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수술은 수술이고 주사치료는 주사치료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부 보험사는 수술 뒤 하루 입원한 후 BMAC 치료를 '적정하다'고 보고 보험금을 지급한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 무릎 통증 치료는 한 곳만 치료하지 않는다. 관절경술로 연골판이 찢어져 있으면 꿰매거나 절제를 하고, 연솔 손상이 심해 너덜너덜해졌다면 다듬는 수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루 입원하며 부작용이나 합병증, 마취 후 경과를 지켜본다. 그다음 날 손상된 무릎조직이 재생되고 염증 완화 및 통증·기능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BMAC나 SVF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신의료기술과 관련해 "BMAC 치료나 SVF 치료는 고시(告示)대로 단독으로 시행했을 경우에 한해 인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관절경술과 BMAC 주사치료를 동시에 시행할 경우 '신의료기술 인정'에 어긋나지만, 관절경술과 주사치료를 각각 별개로 했다면 신의료기술로 인정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보험사의 의료자문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질문은 "BMAC 치료는 단독으로 관절강내 주사했을 경우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상태로, 상기 환자가 동시에 동일 부위에 시행된 관절경적 수술과 병행된 주사요법의 효과가 입증된 적정 치료로 볼 수 있는지"로 되어 있다. 의료자문 답변은 '적정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로 보기 어려움'이다.

심평원도 의료계와 의견이 같다. 역설적이지만 모 보험사가 '진료비 확인제도'를 활용해 병원의 과잉 진료를 신고하고자 관절경술과 그다음 날 BMAC 치료를 시행한 환자 약 80명 명단을 확보해 최근 심평원에 단체 민원을 했다. 진료비 확인제도는 병원의 과잉진료가 확인되면 환자에게 과잉진료비를 돌려주는 제도다. 결론은 병원 치료가 '정당하다'였다.

의료기관이 청구한 진료비 타당성을 심사하는 국가기관(심평원)이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린 만큼 보험사도 실손보험 가입 환자가 신청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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