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따기, 소화불량에 실제 효과가 있다?!!

‘손가락 따기’는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가 나게 하는 민간요법이다. 누구나 한 번쯤 소화불량으로 고생할 때 손가락을 따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손가락 따기는 소화불량에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어린 시절, 명절에 외할머니댁을 가면 진수성찬이 가득했다. 그러다보니 과식으로 체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늘 바늘쌈지를 가져오셨다. 바늘을 불로 소독하신 뒤 엄지손가락을 바늘로 콕 찌르셨다. 찔린 엄지손가락에선 검은색 피가 주욱 흘러나왔고 그 순간 뱃속의 가스가 나오면서 더부룩한 속이 가라앉았다.

‘손가락 따기’는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가 나게 하는 민간요법이다. 누구나 한 번쯤 소화불량으로 고생할 때 손가락을 따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손가락을 따고 나면 트림이 나오고 소화가 잘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저 ‘기분 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실제 손가락 따기는 소화불량에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손가락 따기는 한의학의 '사혈 치료'가 민간의료법으로 전수된 것으로 예상된다. / 게티이미지뱅크

◇ 손가락 따기, 과학적 근거 및 연구 결과는 ‘無’

몸에서 피를 빼내는 치료 행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사혈(瀉血)’ 치료라고 부른다. 탁해서 뭉친 피, ‘어혈(瘀血)’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손가락 따기는 이 같은 사혈 치료가 민간의료법으로 전수된 것의 일종으로 보인다.

사용법에 차이는 있으나 현대의학에도 사혈 치료법은 존재한다. ‘정맥절개술(phlebotomy)’이다. 주사기를 사용해 환자의 정맥에서 혈액 200~500㎖을 뽑아내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심장 부하를 줄이는 효과가 있어 폐수종, 심장 천식 환자의 응급처치로도 사용된다. 또한 백혈구, 적혈구 등이 갑자기 증가하는 진성 적혈구 증가증 완화 효과도 있다.

손가락 따기는 한의학 분야의 사혈 치료가 변형을 거쳐 민간의료로 자리 잡은 사례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는 명확히 없다. 손가락 따기의 근간이 됐던 사혈 치료 자체도 정맥절개술을 제외하면 최근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추세다.

뿐만 아니라 ‘검은색의 죽은 피가 나와 소화가 잘 된다’는 것 역시 낭설에 불과하다. 검은 피는 피 속의 산소가 적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신체 가장 말단에 위치한 손가락의 피는 다른 신체의 혈액보다 어두운 색상이 나타난다. 이때 손가락 따기 전엔 손가락을 꽁꽁 묶어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 때문에 손가락을 따 뿜어져 나오는 피는 훨씬 더 검은색에 가깝다. 실제로 소화불량이 아닐 때도 손가락을 묶은 후 체혈을 하면 똑같은 검은색 피가 나온다.

현대의학 뿐만 아니라 한의학 분야에서도 이렇다 할 의학적 증명 사례를 찾긴 어려웠다. 기자가 ‘한국한의학연구원(한의학연)’에 문의한 결과, 관련 연구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신 소화불량과 관련한 침술 관련 의학 실증 연구 사례는 다수 존재했다.

한의학과 유사한 ‘중의학(中医学)’도 마찬가지다. 2008년 미국 오리건 동양의과대학 헨리 맥캔(Henry McCann) 교수의 저서 ‘혈관 찌르기: 중의학 사혈 요법(Pricking the Vessels: Bloodletting Therapy in Chinese Medicine)’에 따르면 소화불량 치료를 위해 바늘로 찌르는 위치는 손가락이 아니라 목 아래부터 명치 바로 위쪽의 흉골 정중선이다.

이상훈 한의학연 침구경락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현재 한의학 연구계에선 손가락 따기와 관련해 진행되는 연구나 논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나마 손가락 따기와 유사한 연구 분야는 호흡기와 기관지를 치료할 때 사용되는 폐경락 관련 혈자리들이었다”고 말했다.

손가락 따기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 “부교감 신경 자극에 의한 소화 촉진 효과 가능성은 존재”

취재 내용을 종합해보면 손가락 따기에 따른 소화불량 완화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학적 효능에 대해 완전히 부정할 수만은 없다고 봤다. 관련 연구 사례는 없지만 의학적 효능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추측성 근거들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의학계에선 손가락 따기의 효과가 교감·부교감신경의 항진 작용에 의한 것으로 추측한다. 교감신경(sympathetic nervous system)은 긴장이나 공포, 흥분 상태에서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신경이다. 반대로 부교감신경(parasympathetic nervous system)은 정신이 안정된, 쉽게 말해 편안한 상태에서 긴장과 피로를 회복하는 신경이다.

우리가 바늘로 손가락을 따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속은 더부룩해 고통스러운데 엄지손가락을 실로 팽팽히 묶는다. 잠시 후 바늘이 엄지손가락을 찔러 따끔한 통증이 몰려올 것을 생각하면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된 순간이다. 바늘로 찔러 피가 흐르고 엄지손가락의 묶은 실을 풀면 긴장이 완화된다. 이 순간에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이때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면 소화기관 내에 소화효소 분비가 촉진된다. 또한 긴장이 풀리기 때문에 위장과 소장, 대장 등 소화기관운동도 활발히 이뤄진다. 때문에 우리는 손가락을 땄을 때 소화가 잘 되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내과 전문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의학적으로 명확히 답이 나온 것은 아닌 만큼 손가락 따기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현재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통증에서 유발된 교감·부교감신경의 항진이 소화불량 완화 효과를 보였을 수도 있다는 의견은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한의학연 책임연구원도 “우리가 엄지를 묶고 손을 따기까지 굉장히 긴 과정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교감신경이 흥분한다”며 “그러다 손이 따지는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지나 부교감신경 항진이 일어나고 소화가 잘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한의학계, “혈자리 측면에선 효과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치료법 권고”

또 다른 추측은 한의학적 관점에서 소화기관 혈자리와의 연관성이다. 한의학계에선 소화기 질환을 치료할 때 혈자리 ‘내관’을 침이나 지압으로 자극한다. 내관은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이라고 하는 팔의 경맥 부위 중 하나로 손목에 위치한다.

이때 내관과 수궐음심포경은 팔의 말초신경인 ‘정중신경(median nerve)’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이 신경은 손목과 손바닥, 손가락까지 연결돼 손의 감각과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다. 따라서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찌르면 정중신경이 자극받음과 동시에 내관 혈자리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게 한의학적 관점에서의 손 따기 효과 원리다.

이상훈 한의학연 책임연구원은 “수궐음심포경에 위치한 내관은 소화불량 치료에서 매우 핵심적인 혈자리로 이곳을 자극하면 정중신경을 자극하는 것과 같다”며 “따라서 손가락 따기는 자극 정도엔 차이가 있지만 같은 정중신경을 자극한다는 관점에서 소화불량 치료에 효과를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해본다”고 말했다.

다만 의학·한의학 양측 전문가들 모두 소화불량 시 손가락 따기는 추천하진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까진 정확한 의학적·과학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민간요법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약품, 마사지 등 훨씬 더 좋은 치료법도 많다는 입장이다. 특히 제대로 소독 및 관리가 안 된 바늘로 상처를 낼 경우 감염 등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이상훈 한의학연 책임연구원은 “부교감신경과 소화 관련 혈자리 자극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손가락 따기의 효과가 있을 수는 있으나 많은 임상 연구가 이뤄진 소화불량 치료법을 추천한다”며 “한의학에서는 ‘PC6’라고 하는 내관혈을 자극하는 것을 추천하고 이것이 훨씬 더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을 것”고 말했다.

의학 분야에선 확실한 근거가 없는 치료법은 인정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학적 근거 및 연구가 아직 확보되지 않은 손가락 따기의 의학적 효과는 인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손가락 따기의 소화불량 완화 효과 존재 가능성도 있긴 하다. 따라서 향후 관련 연구 및 검증이 이뤄지기 전까진 판단을 유보한다.

※ 최종 결론 : 판단 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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