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드려야할 말이 있어요."
느낌이 왔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녹화버튼을 눌렀다.
"팀을 떠나기로 결정해서 기자회견하기 전에 이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될 거 같았어요."
그렇게 손흥민은 토트넘과의 결별을 발표했다. 하루가 지났다. 8월 3일 손흥민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토트넘과 뉴캐슬의 쿠팡플레이시리즈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전반 7분 6만 4000여 관중은 다 함께 손흥민 응원가를 불렀다. 64분을 뛰었다. 피치 위 모든 선수들 그리고 전관중들의 박수 속에 손흥민은 벤치로 물러났다.
그렇게 손흥민의 '토트넘' 시대는 막을 내렸다. 3628일만이었다.
#사과의 말씀
우선 이 자리를 빌어 사과의 말씀부터 드려야겠다. 여름 이적 시장 내내 손흥민의 이적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해왔다. 미국 LA FC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했지만 다가오는 시즌이 끝난 후 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결과론적으로 오보가 됐다. 좀 더 세밀한 취재를 하지 못해 혼선을 야기시켰다.
이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취재를 세밀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손흥민의 이적을 바라지 않았던 개인적 바람이 더 컸다.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이적의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듣고, 정황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외면한 측면이 컸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은 것은 6개월 후인 겨울 이적 시장 이적이었다. 그마저도 결국 잘못된 정보였다.
기자로서 자신의 생각 때문에 객관적인 정보를 외면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지를 잘 알게 됐다.

#역사를 써내려갔다
어떤 글을 써야할까. 고민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손흥민 선수를 향한 메시지를 올렸다. 필자 역시 멋들어진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섣불리 시작할 수 없었다.
2009년 함부르크 유스 시절 손흥민을 담당했다. 이후 계속 지켜봤다. 함부르크, 레버쿠젠까지. 2015년 8월 손흥민이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지근거리에서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2016년 3월 영국 런던으로 이사했다. 그로부터 만으로 9년하고 5개월을 현지에서 취재했다. 손흥민과의 인터뷰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터였다. 때문에 어떤 글로 '토트넘 손흥민'과의 결별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도 다시 지우곤 했다. 9년 5개월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큰 부담이 됐다.
고민 끝에 결론을 냈다.
위대한 역사를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다.
그 9년 5개월. 필자에게는 사관(史官)의 세월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던 사관처럼, 역사의 편찬을 맡아 초고(草稿)를 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필자는 기자 선배들에게 불만이 있었다. 언젠가 차범근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다. 차범근이 독일에서 활동했던 1970년대, 1980년대 기록을 찾기 힘들었다. 누구라도 하나 그 옆에 있었다면 필자같은 후배들이, 그리고 후대의 축구 팬들과 역사가들이 차범근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손흥민을 기록함에 있어서, 후배들이 아쉬움을 '필자보다'는 덜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화면으로 본 존재가 아닌 필자의 두 눈으로, 두 귀로 그를 기록했다. 그렇게 시작했고 9년 5개월을 보냈다.
쉽지는 않았다. 교체로 들어갔을 때, 단 몇 분을 보기 위해 왕복 10시간을 왔다갔다했을 때도 많았다. 연착되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허기짐을 떼우고자 손에 쥔 말라비틀어진 샌드위치를 바라보면서 '내가 왜 이고생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늘 재정적으로 힘들었다. 현장에 있다고 해서 콘텐츠에 대한 페이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거기에 맞는 콘텐츠 가격은 그대로였다. 저가 교통을 알아보고, 스프링 나간 침대에 몸을 뉘이면서 기록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손흥민의 활약을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경기에 나가면 월드클래스급 활약을 펼쳤다. 푸스카스상도 타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도 올랐다. 취재하며, 기록하며 신이 났다. 그 때문에 어려움도 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손흥민의 프로페셔널함과 배려에 큰 힘을 얻었다. 기자와 선수 사이 프로페셔널함은 믹스트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 공간인 믹스트존은 기자와 선수가 프로페셔널 대 프로페셔널로 만나는 공간이다. 9년 5개월동안 믹스트존에서 손흥민과 인터뷰를 하지 못했던 것은 손에 꼽는다. 한 시즌에 한두번에 불과했다. 팀이 너무 크게 패배했거나, 다쳤거나, 너무 경기력이 안 좋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인터뷰를 거절할 때에도 손흥민은 너무나도 미안한 표정으로 "오늘은 못하겠어요. 죄송해요"라며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2019년 6월 1일 토트넘이 리버풀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지고난 후 손흥민은 "죄송해요. 오늘은 정말 말이 헛나올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배려였다. 프리미어리그 믹스트존에서 선수들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모두 응할 필요는 없다. 응하지 않아도 된다. 해리 케인도, 모하메드 살라도 인터뷰 하는 날보다 안하는 날이 더 많다. 그러나 손흥민은 늘 취재진을 배려해주었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손흥민을 기록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쓸 수 있었다.

#해피엔딩
너무나도 운이 좋게도 '토트넘 손흥민'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당초 영국에 있어야했지만 우연치않은 기회를 얻어 한국에 오게 됐다(한국으로 필자를 초청해준 '시디즈'에 감사함을 전한다) 손흥민이 토트넘 이적을 발표하던 그 기자회견에도 있을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덕분에 '토트넘 손흥민'의 기록은 해피엔딩이었다.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가장 즐겁고 영광스러운 장면으로 끝맺음했다. 만약 필자의 바람(혹은 욕심)대로 한 시즌을 더했다면, 손흥민 기록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이제 '토트넘 손흥민'의 기록은 끝났다. 'LA FC 손흥민'의 기록은 다른 이가 할 것이다. '국가대표 손흥민'의 기록은 이어지겠지만 필자의 전공은 아니다. 이제 필자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네 선수들을 기록할 것이다. 예전에도 기록했고, 지금도 기록하고, 앞으로도 기록할 것이다.
다만 그 누가 되더라도 '토트넘 손흥민'의 9년 5개월을 넘어서는 기록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손흥민의 시대를 살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기록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