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를 살린 건 회장도, 정부도 아닌 이 차였다”

‘봉고차’의 탄생과 몰락: 생계형 전설이 된 자동차

‘봉고차’라는 말은 이제 특정 모델이 아니라, 소형 승합차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된다. 그 출발점은 1980년대 초, 기아자동차(당시 기아산업)에서 등장한 상용차 ‘봉고(Bongo)’였다. 당시 기아는 승용차 생산이 금지된 채 중·소형 상용차만 생산할 수 있도록 제한된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속에서 활로를 찾아야 했다.

이 조치는 1980년 신군부 정권의 국보위가 추진한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현대는 승용차, 기아는 5톤 미만 상용차, 대림은 이륜차를 각각 전담하는 구조였다. 기아는 이 조치로 승용차 부문을 포기하고, 이륜차 사업도 대림에 넘겨야 했다. 사실상 기아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장은 바로 소형 상용차였다.

기아는 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1980년, 일본 마쯔다와의 제휴를 통해 ‘마쯔다 봉고’를 라이센스 생산한 ‘기아 봉고’를 출시했고, 이듬해부터는 승합 모델도 선보였다. 이 차는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소형 승합차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을 것이란 예측과 달리, 봉고는 전국의 자영업자, 농업 종사자, 중소 제조업체 등 생계형 운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충족시키며 대히트를 쳤다.

봉고의 미니버스 모델은 국내 최초의 본격 승용밴이기도 했다. 대가족 중심의 가정 구조와 레저 붐이 일던 1980년대 중반, 9~12인승의 봉고 미니버스는 가족용, 유치원, 종교단체, 소규모 기업의 단체차량으로 인기였다. 기아는 봉고를 단순한 상용차가 아닌 다목적 차량으로 포지셔닝하며 대중적 신뢰를 구축했다.

봉고 J2

하지만 봉고 미니버스의 후속 모델들은 선조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했다. 베스타, 프레지오, 봉고3 코치는 각종 품질 문제와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점차 시장에서 밀려났다. 반면 봉고 트럭 라인은 오늘날까지도 기아의 중요한 수익원이자 대표 소형 상용차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봉고는 단순한 차량이 아니었다.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국가 주도의 정책 환경에서 기아차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 전략의 결정체였으며, 동시에 1980~90년대 서민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실용차였다. ‘봉고차’라는 말이 시대를 관통하는 상징이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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