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비 코어 추구하는 GEN Z “비싼 자동차 관심 없어!”
전혜빈 기자 2024. 10. 31. 09:01
발레 코어, 놈코어에 뒤이어 저소비 코어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젠지는 명품과 외제 차를 사지 않는다. 도리어 낡은 운동화와 바닥난 블러셔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저소비 코어를 자랑할 뿐.
미국 젠지(Gen Z·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들 사이에서 '저소비 코어(underconsumption core)’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틱톡에 '저소비 코어’를 검색하면 해당 해시태그가 달린 글이 5000여 개가 넘는다. 영상 속 사람들은 너덜너덜해진 운동화를 신거나 바닥까지 다 쓴 화장품 용기와 네일 아트를 받지 않은 손을 보여준다. 저소비 코어는 말 그대로 소비를 줄이는 트렌드다. 가급적 물품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덜 하며 중고 거래를 활성화해 새 제품 구매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다. 소비가 트렌드를 만들고 트렌드가 소비를 부추기는 세상에서 저소비가 유행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 피드를 내리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와 상품 하울(후기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저소비 코어는 이런 영상을 찍는 인플루언서와 광고비를 주고 이를 촬영하게 하는 기업에 반대한다. 미국 언론 '뉴욕포스트’는 지난 7월 저소비 코어를 소개하며 "인플루언서들의 명품 하울 등 '과소비’에 지친 이들이 수준에 맞는 '정상적인 소비’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과도한 마케팅이 오히려 이에 반하는 트렌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년 말 미국에서 유행한 키워드 중 하나가 '디인플루언싱(deinfluencing)’이었다. 디인플루언싱은 전통적인 인플루언서들이 제품을 추천하거나 홍보해 판매를 유도하는 인플루언싱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물건의 단점 등을 홍보해 해당 물건을 사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저소비 코어는 깜짝 유행이 아닌 지속적으로 등장해온 과소비에 반하는 트렌드의 한 줄기다.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 피드를 내리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와 상품 하울(후기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저소비 코어는 이런 영상을 찍는 인플루언서와 광고비를 주고 이를 촬영하게 하는 기업에 반대한다. 미국 언론 '뉴욕포스트’는 지난 7월 저소비 코어를 소개하며 "인플루언서들의 명품 하울 등 '과소비’에 지친 이들이 수준에 맞는 '정상적인 소비’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과도한 마케팅이 오히려 이에 반하는 트렌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년 말 미국에서 유행한 키워드 중 하나가 '디인플루언싱(deinfluencing)’이었다. 디인플루언싱은 전통적인 인플루언서들이 제품을 추천하거나 홍보해 판매를 유도하는 인플루언싱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물건의 단점 등을 홍보해 해당 물건을 사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저소비 코어는 깜짝 유행이 아닌 지속적으로 등장해온 과소비에 반하는 트렌드의 한 줄기다.
명품도 안 사는 MZ들
저소비 코어는 MZ세대의 럭셔리 브랜드 구매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명품의 복제품을 소비하는 '듀프(dupe)’가 유행 중이다. 듀프는 복제품을 뜻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의 줄임말로, 유명 브랜드 제품을 따라 만든 저렴한 복제품을 사서 자랑하는 문화를 말한다. 듀프는 소위 '짝퉁’이라 불리는 위조품과는 다르다. 듀프는 큰 틀에서 디자인이나 주요 특징을 비슷하게 따라 한 제품으로 법적으로는 별문제가 없다.
듀프 제품의 예시로는 유명 럭셔리 화장품의 '저렴이’ 버전을 판매하는 브랜드로 이름을 널리 알린 엘프뷰티(ELF)를 들 수 있다. 엘프의 4달러짜리 '헤일로 글로우’ 제품은 샬롯틸버리 파운데이션(49달러)의 대체품으로 불렸고, 엘프의 5달러짜리 '시어 슬릭’ 립스틱은 크리니크의 20달러짜리 베스트셀링 립스틱의 듀프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결과 엘프뷰티는 지난해 55달러에서 141달러로 주가가 약 161% 성장했다.
‘레깅스계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룰루레몬은 듀프 유행으로 손해를 본 케이스다. 룰루레몬은 20만 원이 넘는 레깅스를 판매한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은 제품 가격이 평균 30달러(약 4만 원)인 짐샤크(Gymshark), 에이와이비엘(AYBL), 할라라(Halara) 등 듀프 브랜드가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4분기 연속 15% 이상 증가했던 룰루레몬의 매출은 올해 3월부터 감소했다. 이에 룰루레몬은 듀프 제품을 가져오면 무료로 정품으로 바꿔주는 이벤트를 시행했다.
영미권 MZ세대는 '놀이’처럼 듀프 제품을 찾고 절약한 자신을 SNS에 전시한다. 특이한 점은 복제품 찾는 것을 즐기며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저소비 코어 유행이 명품 소비에도 반하는 소비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젠 '절약’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런 듀프 문화는 영미권 MZ세대 사이에서 더욱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리서치 회사 모닝컨설트가 지난해 10월 미국 성인 2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3분의 1이 듀프 제품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중 Z세대는 50%, 밀레니얼세대는 44%가 각각 듀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닝컨설트는 "듀프 문화가 젊은 소비자들의 습관에 영구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 MZ도 "지갑 닫을게요"
저소비 코어는 한국에서 요노, 짠테크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9월 17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선택과 집중의 소비 트렌드 요노’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요노(YONO)족이 떠오르고 있다. 요노는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You Only Need One)’를 모토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서,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패턴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You Only Live Once)’을 외치며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과도한 지출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욜로(YOLO)는 막을 내린 것.
한국의 2030 세대 사이에서 저소비 코어는 소비를 제한하는 방식을 밈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해진 기간에 아예 소비 자체를 중단하는 무지출 챌린지, 자신의 절약 방식을 오픈 채팅방으로 공유하는 거지방,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낭비를 최소화하여 재테크를 하는 짠테크 등으로 한국 MZ세대도 절약을 놀이화하고 있다.
소비 방식이 변함에 따라 소비 물품도 변화했다. 이제 한국 MZ세대는 외제 차가 아닌 중고차를, 호텔 뷔페가 아닌 밀키트를 소비한다. NH농협은행이 개인 고객 3200만 명의 금융 거래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2030 세대의 수입차 구매 건수는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반면 중고차 소비는 같은 기간 29% 늘었다. 2030 세대를 제외한 다른 연령대는 수입차 소비가 3% 줄어드는 데 그쳤고, 중고차 소비는 동일(0%)한 것과 대조된다. 2030 세대의 상반기 뷔페 소비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4% 줄고 양식 업종 외식은 8% 감소했다. 반면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2030 세대의 간편식 소비 건수는 전년 동기보다 21% 증가했다.
저소비 코어 열풍의 이유
저소비 코어는 경기 불황의 징후 중 하나다. 인플레이션, 오일쇼크 등 굵직한 경제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돈을 아끼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저소비 트렌드가 유행했다. 한국 MZ세대의 지갑 사정은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세의 74%, 25~29세의 44%, 30~34세의 31%, 35~39세의 29%가 월 250만 원 미만의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받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1만30원)은 시간당 1만 원 선을 넘겼지만 최저임금 상승률은 올해 대비 1.7%에 그쳐 물가상승률(2023년 3.6%)을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적 상황과 더불어 변화한 가치관도 영향을 미쳤다. 평소 쇼핑을 즐겼던 민지오(25) 씨는 "어느 순간 옷장에 쌓인 옷들을 보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내가 왜 이렇게 많이 사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내 쇼핑이 환경 파괴에 일조한다는 느낌이 들어 요즘은 옷을 잘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점차 기후 위기가 실존적인 위험으로 닥치면서 환경과 기후를 생각한 가치소비는 유행을 넘어서 필수적인 행위로 자리 잡았다. 명품을 휘감은 화려한 삶이 아닌 지구를 배려한 삶이 박수 받는 시대다. 저소비 코어 열풍으로 절약은 하나의 놀이가 됐다. 전 세계 MZ세대는 사치가 아닌 검소, 명품 아닌 지혜를 자랑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탐색하고 있다.
경제적 상황과 더불어 변화한 가치관도 영향을 미쳤다. 평소 쇼핑을 즐겼던 민지오(25) 씨는 "어느 순간 옷장에 쌓인 옷들을 보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내가 왜 이렇게 많이 사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내 쇼핑이 환경 파괴에 일조한다는 느낌이 들어 요즘은 옷을 잘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점차 기후 위기가 실존적인 위험으로 닥치면서 환경과 기후를 생각한 가치소비는 유행을 넘어서 필수적인 행위로 자리 잡았다. 명품을 휘감은 화려한 삶이 아닌 지구를 배려한 삶이 박수 받는 시대다. 저소비 코어 열풍으로 절약은 하나의 놀이가 됐다. 전 세계 MZ세대는 사치가 아닌 검소, 명품 아닌 지혜를 자랑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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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틱톡
전혜빈 기자 heavin01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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