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적법' 강조하고 고려아연 공개매수 논란엔 '나 몰라라'

김지영 2024. 10. 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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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매수신고서 자금조성 내역 자체 판단…정정 요구 판단 못해"
고려아연 1조원 사모사채 차입금 변경 방관한 이복현 원장

[아이뉴스24 김지영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고려아연 공개매수 과정에서의 공정경쟁 원칙 준수를 강조하고 적법한 절차 진행을 강조했음에도 공개매수신고서 접수 과정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이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위한 자금조성 내역을 거짓 기재했음에도 정정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감독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지난 4일 냈던 공개매수신고서에 공개매수 자금조성 내역을 수정한 신고서를 제출했다. 자금조성 내역에서 자기자금 규모와 차입금 규모를 변경했다. 차입금의 출처와 조건도 새롭게 명시했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신고서 정정은 금감원에서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빚으로 자사주 매입'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고려아연 스스로 정정을 선택했다.

지난달 19일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공개매수에 나서게 된 배경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본시장법은 공개매수 진행 시 공개매수자는 공개매수 자금조성 내역을 자기자금과 차입금을 구분하고, 차입금의 경우 차입처를 포함해 공개매수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금감원은 공개매수신고서를 접수하면서 공개매수 대금과 함께 공개매수 자금 조성 내역을 확인하고 있다. 자금조성 내역 확인을 위해 공개매수신고서에 예금잔고 증명서 또는 단기금융상품 등 기타 자금보유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회사의 동원 가능 자금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해서 금융당국은 공개매수신고서와 정정신고서에서 중요사항이 거짓으로 기재돼 있거나 누락됐는지 조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자본시장법 제146조 참고). 공개매수신고서의 자금 조성 내역은 공개매수자와 대항 공개매수자의 자금 동원 능력을 판별할 수 있는 항목이라서 중요사항에 해당한다.

실제로 MBK연합은 1차 정정신고서에서 공개매수 자금조성 내역 중 영풍의 기업어음(CP) 자금을 차입금 항목으로 신고했다. 그럼에도 고려아연은 최초 공개매수신고서에서 메리츠증권에서 조달한 사모사채 자금 1조원을 차입금으로 신고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MBK연합 측의 문제제기를 받고서야 정정했다. 고려아연 측은 사모사채를 발행해 현금이 이미 법인 계좌에 들어와 있는 상태이기에 차입금이 아닌 자기자금으로 분류했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공개매수 신고서는 공개매수 대금과 공개매수 자금조성 내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어, 이 같은 논리는 억지 주장에 가깝다.

고려아연이 정정신고서에서 차입금으로 분류하지 않은 CP 발행 자금 역시 자기자금으로 보기 어렵다. 자금조성에서 '자기자금'이란 근로소득, 사업소득, 증여·상속받은 현금, 영업이익 등을 말한다. 회사채와 CP는 외부에서 끌어온 돈에 해당된다.

공개매수자가 공개매수신고서 작성 기준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공개매수신고서를 제출했다면, 이를 걸려내는 것은 금감원의 몫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감독당국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금감원 기업공시국 책임자는 "법인 계좌의 잔액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자금의 출처는 알 수 없다. (자기자금과 차입금 분류는) 공개 매수자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기자금에 CP가 포함돼 있다는 것도 회사의 입장"이라며 "자금에 꼬리표가 없으니 신고서 정정 요구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부원장회의에서 고려아연 공개매수와 관련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시장 불안을 야기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개매수자, 대상회사, 사무취급자, 기타 관련자들은 공정 경쟁의 원칙을 준수하고 공개매수 과정에서 제반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의 발언은 공개매수자와 대항 공개매수자 간의 과열 경쟁을 우려한 것이지만 동시에 공개매수자와 대항 공개매수자의 공개매수신고서 제출 과정에서의 적법성을 강조한 것이기도 했다.

/김지영 기자(jy100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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