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대한민국의 오늘은 군사 쿠데타를 알리는 총성이 울린 날이다.
그렇게 시작된 계엄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장장 9개월간 지속됐다. 그날의 주역들은 군내 갈등과 그릇된 야망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헌정질서를 붕괴시켰다. 영화 ‘서울의 봄’은 당시의 쿠데타를 그려내며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결말을 뻔히 알고 봐도 관객은 소위 ‘심박수 챌린지’로 뜨거운 호응을 보내면서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도 다시금 상기했다.
지난 3일 대한민국은 45년의 그날을 다시 목도했다. 국회 앞 수많은 인파의 서슬 퍼런 분노는 영하의 밤 날씨를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그 분노는 국회에 진입하는 중무장 군인 앞에서 극에 달하고 있었다.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국회 본관에 진입을 시도하는 장병들의 행동이 일사불란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심지어 정예 부대라는데 정말 진입을 시도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국회 운동장에 착륙한 헬기에서 이동하는 장병들 역시 신속한 모습은 아니었다.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젊은 패기의 장병들이 격앙된 시민과 충돌하고 우발적인 사태라도 일어난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아찔하다. 그러나 시민들은 쓰러진 장병을 일으켜 세웠다. 항의하는 시민을 장병이 끌어안으며 진정시켰다. 철수하며 시민들을 향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 말하는 장병의 모습은 숙연감마저 들게 했다.
명령에 죽고 사는 ‘상명하복’은 남북 대치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특히나 군 기강을 확립하는 핵심이다.
군인은 살상 무기를 합법적으로 운용하는 지위에 있어 명령은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엄중함 그 자체다.
군 형법 제44조에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항명으로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아도 처벌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항명과 불복종, 명령 위반에 대한 처벌만 강조했지, 부당한 명령에는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교육하는 군 부대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계엄’이라는 상황적 무게감이 더해지고, 임무도 모른 채 작전지역에 내몰린 장병이 명령의 정당함과 부당함을 깨우치기에는 시간적으로도 부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 투입된 병력 수만도 1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날의 진실은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군복의 의미를 저버린 자들에 대해 단호하게 그 죄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명령의 부당함을 뒤늦게 인식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국민의 편에 서고자 했던 항명했던 이들만큼은 우리가 어루만져 줘야 할 때다.

국가는 군인에게 항상 요구한다. 흔들림 없는 군이 되어 달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군을 흔드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강자의 이익을 정의라 말하는 시대에서 조국 수호라는 사명감만을 보고 달려가는 군인을 눈물 짓게 하는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