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인도네시아 도입 사업을 둘러싸고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의문이 있었습니다. "과연 인도네시아가 정말로 돈을 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었죠.
분담금 연체 논란, 기술 인력 무단 이탈 사건,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한국 방산업계에서는 줄곧 우려 섞인 시선을 거두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인도네시아 정부 최고위 인사가 직접 입을 열어 그 의문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다름 아닌 재무장관이 "예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보돼 있다"고 못 박은 것입니다.
11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의 향배를 가를 결정적 발언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인니 재무장관이 직접 나선 이례적 발언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18일 자카르타에서 기자들과 만나 KF-21 보라매 사업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KF-21 프로그램과 관련한 새로운 예산 요청은 재무부에 접수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만 떼어놓고 보면 자칫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푸르바야 장관의 진짜 메시지는 그다음 발언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다만 해당 사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정부 예산 계획에 반영돼 있었기 때문에 재원 측면에서 문제는 없으며 현재는 실제 이행 단계만 남아 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새 예산 요청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이미 기존 예산 계획 안에 KF-21 도입분이 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던 것이죠.
한 나라의 재무장관이 특정 무기 도입 사업에 대해 직접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그만큼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 사업의 안정성에 대해 외부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려 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11조 원 규모" 추정에 대한 침묵의 의미
푸르바야 장관은 KF-21 도입 사업 규모가 81억 달러, 한화로 약 11조 원에 달한다는 외부 관측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습니다.
그는 국방 분야 기밀 사항이라는 이유를 들며 구체적인 확인을 거부했고, 방산 조달 예산의 세부 내용은 공개할 수 없는 전략 정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11조 원이 아니다"라고 부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외교·국방 분야에서 "기밀이라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은 사실상 해당 수치가 크게 틀리지 않다는 간접적 시인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만약 실제 규모가 외부 관측과 크게 다르다면 굳이 기밀을 이유로 들 필요 없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도네시아가 KF-21 도입에 11조 원 안팎의 거액을 투입한다는 시장의 추정은 사실상 공식적으로 부정되지 않은 셈이며, 한국 방산업계 입장에서는 천문학적 수익 기회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행 단계만 남았다"는 발언의 진짜 무게
재무장관 발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단연 "현재는 실제 이행 단계만 남아 있다"는 부분입니다.
이 짧은 문장이 함의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예산 확보, 정책 결정, 부처 간 협의, 의회 승인 등 정부 사업이 거쳐야 하는 모든 행정적 절차가 이미 마무리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인도네시아 측에서 KF-21 사업과 관련해 남은 일은 실제 자금을 집행하고 한국 측과 도입 일정을 조율하는 실무 작업뿐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동안 일각에서 제기되어 온 "프라보워 정부가 들어선 뒤 KF-21 사업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우려나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들이 사실상 근거를 잃게 되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분담금 연체 그림자, 이번 발언으로 걷히나
인도네시아의 KF-21 사업 참여를 둘러싼 가장 큰 골칫거리는 분담금 연체 문제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2016년 KF-21 공동개발에 약 20%, 1조 7천억 원 규모로 참여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 납입은 계속 지연되어 왔고, 한국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수년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장관이 직접 나서 "예산은 이미 확보돼 있다"고 밝힌 것은 분담금 문제와는 별개로 양산형 기체 도입 예산만큼은 안정적으로 마련돼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공동개발 분담금과 양산기 구매 예산은 회계상 분리된 항목이며, 이번 발언의 무게중심은 후자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양국 간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공동개발 분담금 미납분 처리 문제도 함께 풀려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KAI의 외교·실무 협상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수호이 Su-35와의 미묘한 관계
푸르바야 장관은 이번 발언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언급을 함께 남겼습니다.
그는 "KF-21 보라매와 러시아제 수호이 Su-35 전투기의 도입 계획, 기술 사양, 사업 추진 방향 등 구체적인 사항은 국방부 소관"이라며 한국산 KF-21과 러시아산 Su-35를 같은 문장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여전히 다중 도입 전략을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읽힙니다.
인도네시아는 2018년 Su-35 11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가 미국의 카츠사(CAATSA) 제재 우려로 사업이 좌초된 전례가 있는데, 이번에 재무장관이 Su-35를 다시 언급했다는 사실은 그 잔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는 것이죠.
다만 현실적으로 미국 제재 리스크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부품 공급 문제 등을 감안하면 Su-35 도입은 KF-21에 비해 추진 동력이 훨씬 약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분석입니다.
결국 인도네시아 공군 전력 증강의 실질적 중심축은 KF-21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국 방산업계에 던지는 메시지
이번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의 발언은 한국 방산업계, 특히 KAI에게 매우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그동안 KF-21 보라매는 한국 공군 양산 계약을 확보하며 국내 시장에서는 안정적 기반을 다졌지만, 해외 수출 1호 고객 확보라는 과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공동개발국이자 잠재적 대량 도입국이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는 국가로, 만약 인도네시아가 실제로 양산형 KF-21을 대량 도입하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1국 수출을 넘어 KF-21의 국제 시장 진입을 알리는 결정적 레퍼런스가 될 것입니다.
현재 KF-21 도입을 검토 중이거나 관심을 표명한 국가로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페루, UAE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사업이 가시화되면 이들 잠재 고객국의 결정에도 긍정적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는 것이죠.
한국 방산업계 입장에서는 이번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의 발언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계약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 실무 협의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며, 동시에 이번 발언이 가져올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도 상승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