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로비' 느낌 있다, ‘감독’ 하정우

“더럽게 싸움을 걸면, 어떻게 더럽게 싸우죠?”

연구밖에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 분)은 라이벌 회사 대표 광우(박병은 분)의 뒷거래 때문에 기회도, 기술도 번번이 빼앗긴다. 그의 회사의 유일한 탈출구는 4조 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따내 한방에 자본을 확보하는 것.

하지만 로비에 있어선 한 수 위인 광우는 조장관(강말금 분)을 일찌감치 포섭한 상황, 창욱은 눈을 돌려 조장관의 최측근이자 실무를 쥐고 있는 남편 최실장(김의성 분)에게 접근해 더러운 싸움에 참전하게 된다. 마침내 뒷거래가 이뤄지는 골프장에 한날한시 각자의 목적을 위해 모인 로비팀들, 이들의 진흙탕 로비가 펼쳐지는데…

영화 ‘로비’(감독 하정우)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2013년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 ‘허삼관’(2015)에 이은 배우 겸 감독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하정우’다운 영화다. 전작, 그중에서도 데뷔작 ‘롤러코스터’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서사의 완성도를 높여 공감 가는 이야기를 완성, 영화적 재미는 물론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흡수한다. 소재가 주는 신선함이 큰데 골프장 내에서 다양한 비즈니스가 오고 가는 것에 착안해 출발, 골프 로비 세계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내 흥미를 자극하고 색다른 재미를 안긴다.

생각 없이 웃고 즐기며 휘발되는 웃음도 있지만, 더 짙어진 블랙 코미디적 색채로 의미와 무게를 더하며 ‘감독’ 하정우의 성장을 확인하게 한다. 특히 ‘골프 접대’라는 소재를 단순하게 소비하지 않고 각자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로비’에 뛰어든 다양한 인간군상을 비추고 ‘공정’이 가장 지키기 힘든 가치가 돼버린 현대 사회를 풍자하며 생각해 볼법한 질문을 던진다. 골프를 알지 못해도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이유다.

신선한 소재와 개성 강한 캐릭터를 앞세워 영화적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로비’. / 쇼박스

개성 강한 캐릭터의 향연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연구밖에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 창욱부터 욕망 앞에서 흔들리는 정치권 실세 최실장, 최실장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프로 골퍼 진프로, 로비 판을 세팅하는 비리부장 박기자, 베테랑 로비꾼 손광우, 부패비리 조장관, 마성의 인기배우 마태수, 골프장 사모님, 더러운 로비 판을 키우는 골프장 대표, 창욱의 든든한 오른팔 김이사, 창욱의 사촌동생이자 인턴 호식까지 과한 듯하지만 현실에 너무나 있을 법한 인물들이 등장해 현실성 높은 이야기를 완성한다.

주요 인물 외에 잠깐 등장하는 캐릭터도 누구 하나 존재감 없는 이가 없다. NBA 농구팬인 창욱의 모친과 어휘 선택이 다소 불량한 국어 교사 창욱의 여동생, 알코올중독 캐디, 육개장을 즐기는 외국인이자 광우의 세 번째 아내, 도청을 부업으로 하는 신부 등 작은 캐릭터에도 독특한 개성을 살려 이 영화만의 ‘B급’ 감성을 더한다.

하정우‧김의성‧강해림‧이동휘‧박병은‧강말금‧최시원‧차주영‧박해수‧곽선영 등 배우들의 호연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자칫 과하게 비칠 수 있는 캐릭터를 각자의 개성과 적당한 온도로 빚어내 설득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말맛’을 살린 유쾌한 앙상블로 빈틈없는 재미를 완성한다. 창욱의 사촌 동생을 연기한 엄하늘도 인상적인 활약과 존재감을 보여준다.

‘감독’ 하정우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인 인생이다. 인생은 다 우연이다. 우연 속에서 영화적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전하며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비공식이든 공식이든 로비를 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러닝타임 106분, 4월 2일 개봉.

<시사위크=이영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