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레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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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캠핑: 삶의 선명한 쉼표로서
유라시아 횡단에서 돌아온 후 ‘모토 캠핑’을 시작했다. 모토 캠핑은 모터사이클 타고 캠핑한다는 뜻이다. 모토 캠핑을 즐기는 이유는 명확했다. 유라시아 횡단의 추억을 곱씹기 위해서. 모터사이클 타고 자연으로 나가 캠핑하며 하룻밤을 보내는 행위 자체가 그때 그 기분을 환기한다. 물론 한국과 유라시아 대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크기부터 공기 질감, 나무 형태까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관통하는 정서가 있다. 비일상의 순간을 만끽하기. 모터사이클 타는 행위부터 캠핑하며 하룻밤 자는 행위까지, 면면이 비일상의 쾌감을 선사한다. 일단 익숙한 곳에서 벗어난다. 굳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잠시 고요한 순간을 음미한다. 단순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이런 일련의 행위가 도시인에게 쌓인 노폐물을 해소한다. 아니, 최소한 잠시 잊게 한다. 추억으로 연결하는 주문이자 삶의 쉼표, 내게 모토 캠핑은 그런 존재다.
“어딘가 멀리 모험하러 가는 기분이랄까.
곧 돌아오겠지만, 떠날 때의 설렘은 진하고 순도 높다.”
기사 쓴다는 핑계로 다시 모토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캠핑은 이미 익숙한 레저다. 하지만 그 안에 모터사이클을 곁들이면 조금 달라진다. 일단 자동차로 떠나는 캠핑보다 짐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백패킹처럼 극도로 장비를 줄일 필요는 없다. 캠핑장에서 고기는 구워 먹어야 하니까. 60리터 방수 백 정도면 어지간한 장비를 넣을 수 있다. 모터사이클에 툭, 얹고 묶으면 끝. 이제 캠핑 장소까지 라이딩을 즐길 시간이다. 모터사이클은 일상에서도 타지만, 60리터 방수 백 묶고 타면 새삼 다르다. 어딘가 멀리 모험하러 가는 기분이랄까. 곧 돌아오겠지만, 떠날 때의 설렘은 진하고 순도 높다. 더불어 모토 캠핑은 자동차로 떠나는 캠핑보다 여정을 즐기게 한다. 캠핑하며 보내는 시간은 물론, 오가는 시간도 유희로 다가온다. 출발하는 순간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매 순간 즐길 거리가 이어진다.
목적지인 ‘팔현캠프’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가까우면서 멀리 떠난 느낌을 주는 캠핑장이다. 일반적인 캠핑장과 다르게 규격화한 사이트가 없다. 잣나무 숲속 공간에 알아서 자리 잡으면 그만이다. 게다가 예약 없이 선착순. 자연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모험의 감흥을 증폭한다. 캠핑장이 아닌 노지에서 캠핑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취향은 아니다. 최소한 화장실은 있어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더 원초적인 캠핑을 만끽하고 싶다면 노지로 가도 무방하다. 모터사이클 타고 캠핑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
적당한 자리 잡아 장비를 펼쳤다. 장비는 딱 필요한 것만 있다. 텐트, 의자, 테이블, 버너, 프라이팬, 랜턴, 작은 쿠커와 잔 등등. 많아 보이지만 딱 필요한 것들로만 추렸다. 그 와중에 나름 호사스런 장비도 있다. 야전침대다. 부피는 좀 크지만 다음 날 쾌적하게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럼에도 60리터 방수 백에 다 들어간다. 최소한의 장비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지향한다. 모토 캠핑의 묘미다. 텐트 치고 의자와 테이블을 놓으면 즐길 준비는 끝난다. 다 해봤자 30분 정도 걸리나. 준비를 끝내고 의자에 앉아 맥주 한 모금 마시면 본격적인 캠핑 시간으로 전환된다. 집에서 출발하고 몇 시간만 흘렀을 뿐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그때부터 시간은 한가로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변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느긋해진다. 뭘 하지 않고 그 시간을 음미하게 한다. 그럴 수 있는 풍경과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동조한다. 세계가 전환되는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안다.
모토 캠핑을 하면서 고수하는 두 가지가 있다. 야외 고기와 장작불이다. 장비가 적다는 면에서 모토 캠핑이 백패킹과 유사하지만, 두 가지가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기를 굽고 장작불을 피우려면 마땅한 장비와 합당한 공간이 필요하다. 백패킹은 두 가지를 즐기기 힘들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확실히 맛이 다르다. 자연을 벗 삼아 지글지글 구운 고기를 한 점 씹어 삼키면 세상 다 가진 듯 뿌듯하다. 야생의 본능을 자극한달까. 장비가 단출하기에 더욱 모험 같은 흥취가 있다.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장면 꼭 나오잖나. 주인공이 결전을 앞두고 황야에서 불 피워 동료들과 한 끼 식사를 즐기는 장면. 오늘의 동료는 촬영하러 온 사진가다. 야외에서 구워 먹는 고기 맛에 취해 처음 보는데도 오랜 친구처럼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우린 캠핑 와서 함께 고기 구워 먹은 사이니까. 그가 싱글 몰트위스키를 들고 와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장작불은 모토 캠핑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주변이 어둑해지면 불을 피운다. 날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오후에 피워도 무방하다. 이번에는 보다 야생 느낌으로 잣방울을 모아 피웠다. 괜찮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작은 화롯대도 준비했다. 흔히 말하는 ‘불멍’은 철학적이다. 넘실거리는 불길을 보다 보면 잡념까지 타들어간다. 왜 유튜브에 장작불 영상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잔잔한 음악 소리, 나무에 걸어놓은 랜턴의 일렁이는 불빛,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화롯불. 그 사이에서 난 더없이 한가로운 시간 속을 유영했다. 보통 캠핑을 끝내고 돌아올 때는 피곤하다. 물론 모토 캠핑도 피곤하다. 원래 한데서 자면 몸이 힘든 법이다. 그럼에도 피곤에 찌든 채 여정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는다. 다시 모터사이클 라이딩이 남아 있으니까. 모터사이클 라이딩은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다. 가는 길 그 자체가 재미다. 모토 캠핑이기에 돌아가는 길도 즐거울 수 있다. 가는 길에 몸을 휘감는 바람에 피로가 날아가기도 하고. 이번에도 또 하나의 쉼표가 선명하게 찍혔다.
트레일 러닝: 두 발로 기록하는 해방일지
내가 러닝을 시작한 건 올해부터다. 계기는 단순했다. “근데 너는 살을 빼야겠다.” 오랜만에 만난 모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흠칫하게 된다. 평생 부모님께 외모 칭찬받는 일은 없었지만, 살 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래, 이참에 미루던 다이어트나 하자. 그런 생각으로 헬스장에서 보내던 시간을 러닝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내가 러닝하러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집 근처 서울대학교 트랙. 매끈하게 닦인 진분홍색 트랙에는 요철도 언덕도 없어 부담 없이 달리기 좋다. 확실한 단점도 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달리다 보면 힘듦보다 지루함이 먼저 찾아온다.
러닝이 지루해질 무렵. 주변 러닝 선배들에게 물었다. 안 지루하세요? 어떻게 하면 계속 뛸 수 있을까요? 매년 풀마라톤에 나가는 지인이 말했다. “산을 뛰어보세요. 훨씬 덜 지루해요. 거기선 지루할 수가 없죠.” 때마침 이번 기사를 쓰는 중에 ‘2024 UTMB 몽블랑’ 소식이 전해졌다. UTMB 몽블랑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일 러닝 대회다. 참가한 선수들은 알프스산맥 최고봉인 몽블랑 일대를 달린다. 그 거리는 약 170km. 워낙 코스가 길어 달리는 도중에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국경을 지나게 된다. 구글에 ‘UTMB’를 검색하면 아웃도어 브랜드 룩북에 나올 법한 이미지 수백 장이 떠오른다. 알프스 절경을 뒤로한 채 뛰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트레일 러닝,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트레일 러닝’이 이번 기사의 주제로 확정되자마자 불현듯 한 사람이 머릿속에 스쳤다. 신동훈 사진가다. 매달 <아레나> 피처 기사에 함께하는 신동훈 사진가는 러닝도 등산도 즐기지 않는다. 그런 그를 데리고 산 정산까지 올라가야 했다. 심지어 카메라와 렌즈가 잔뜩 든 가방을 짊어진 채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좋은데요? 삼각대 챙길까요?” 나는 죄책감을 한결 덜어내고 촬영 장소를 찾아 나섰다.
인왕산은 서울에서 가장 잘 알려진 트레일 러닝 코스 중 하나다. 올해 10월 개최되는 ‘서울 국제 울트라 트레일 러닝 대회’ 코스에도 인왕산이 포함됐다. 인왕산을 트레일 러닝 코스로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접근성. 경복궁 인근을 비롯해 무암동, 홍제동, 부암동에서 왕복 1시간 이내 코스가 정비되어 있다. 인접한 동네가 많은 만큼 코스도 다양하다. 두 번째는 낮은 경사와 짧은 오르막길. 인왕산에는 한양도성이 뻗어 있어 비교적 길이 잘 정돈되어 있고, 등산하기에는 난이도가 낮아 러닝 페이스를 유지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촬영날 아침. 날씨는 무척 맑았다. 스마트폰이 알려준 서울 최고 기온은 33℃. 햇살은 뜨거웠지만 습기와 미세먼지가 없어 쾌적했다. 인왕산으로 향하는 길에 강 건너 롯데타워가 또렷하게 보였다. 한국에는 일 년에 몇 번 없을 날씨구나.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인왕산 호랑이 동상에 도착했다. 인왕산은 예부터 호랑이가 많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차에서 내린 나와 신동훈 사진가는 ‘청와대와 경복궁을 지키는 호랑이’를 뒤로하고 곧장 속도를 올렸다.
트레일 러닝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트랙 러닝과의 차이점이었다. 가장 먼저 느낀 차이점은 성취감이다. 그간 내가 했던 트랙 러닝은 쳇바퀴 도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트랙을 한 방향으로 30분 넘게 달리다 보면 인간 햄스터가 된 기분이다. 거기에 러너스 하이는 없었다. 그래서 러닝 자체의 즐거움보다, 러닝이 끝났을 때의 해방감을 생각하며 달렸다. 트레일 러닝은 시작부터 달랐다. 일단 눈앞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
운동할 때 온몸에 전해지는 감각도 다르다. 트랙 러닝은 2차원 운동이다. 평평한 길을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반면 트레일 러닝은 3차원 운동이다. 상하좌우로 움직이다보니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근육을 쓰게 된다.
인왕산 범바위까지 올라가자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피해 잠시 범바위 아래에 몸을 뉘자 어깨너머로 낯선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부터 북한산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요. 거기 꼭 가셔야 해요. 절경입니다.” 남자는 인왕산 바로 밑 동네에 살고 있다며, 일주일에 세 번은 산에 오른다고 했다. 차분한 말투로 완벽하게 표준어를 구사하는 그는 어딘가 옛날 사람 같기도, 미래에서 온 사람 같기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산에만 오면 스몰 토크 장인이 된다.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라든가, “파이팅 파이팅” 같은 말들을 곧잘 건넨다. 낯선 남자와의 스몰 토크는 헬스장에서도 트랙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와의 짧은 대화는 트레일 러닝이 선사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산을 내려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러닝이 꼬리곰탕이라면, 트레일 러닝은 부대찌개구나.”
산을 내려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러닝이 꼬리곰탕이라면, 트레일 러닝은 부대찌개구나. 러닝이 한 가지 재료를 진득하게 오래 우려내는 메뉴라면, 트레일 러닝은 온갖 재료를 잔뜩 넣고 끓여 먹는 느낌이다. 맛도 비주얼도 자극적이다. 좋은 의미로. 트레일 러닝도 취미가 될 수 있을까? 나의 경험상 운동이 취미가 되려면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 지속가능성을 낳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재미다. 동기부여 찾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지. 뭐든 한 번 재미를 맛보면 그 뒤로는 다른 기회비용을 잊게 된다. 사람들이 밤새 게임을 하고 축구 중계를 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재밌으니까 한다.
성인이 된 후로 가장 오래 꾸준히 지속하는 취미는 헬스다. 왜 나는 헬스를 꾸준히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역시 재미다. 똑같은 기구로 똑같은 동작을 해도, 그날그날 들 수 있는 무게가 다르고, 내 몸에 느껴지는 자극도 다르다. 무엇보다 내 몸이 바뀌는 게 보인다. 트레일 러닝도 헬스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근육을 쓰고, 거울 속 몸이 바뀌고, 새로운 자극이 있다.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지금 이 원고를 쓰는 신용산 사무실에서 당장 시내버스 한 번 타면 트레일 러닝을 즐길 수 있다. 서울 어디에 살더라도 산에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 시내에는 300m를 넘는 산이 14개 있고, 그보다 낮은 산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두 배도 넘는다고 한다.
아참, 트레일 러닝은 쇼핑을 위한 좋은 빌미도 되어준다. 이번 기사를 쓰면서 장바구니에 추가된 트레일 러닝화만 세 개가 넘는다. 나도 사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야. 운동 때문에 사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다 보면 모자, 티셔츠, 바지, 양말, 선글라스, 스마트워치까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고 있자니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산에 가야지.
로드바이크: 바람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카카오 T 바이크를 타면 15분 정도 걸렸고 처음 탄 카카오 바이크는 오토바이만큼 빨랐다. 당시에는 오토바이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지만 그만큼 빠르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속도광인 나는 그때부터 지겹도록 자전거를 탔다. 우리 집 앞에서 시작해 남자친구 집 앞에 도달하는 질주는 여름 내내 이어졌다. 그 친구가 유학길에 올라 헤어졌을 때도 나는 계속 자전거를 탔다.
그렇게 전기자전거에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가만 보면 자전거 도로에서 동종의 전기자전거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빨라야 하건만 늘 앞서는 자전거가 있었다. 대체 저건 뭐길래 전기자전거보다 빠를까?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역부족이었다. 기기의 문제인가 사람의 문제인가.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 내게 패배감을 안겨준 주인공은 로드바이크였다. ‘사이클’이나 ‘로드’라고 불리는 이 자전거는 고속주행을 위해 고안됐다. 경량 프레임과 공기역학적 설계, 얇은 타이어를 사용해 당연히 빠를 수밖에 없었다. 상황과 장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인 기준 평균 속도는 35km/h 안팎. 전기자전거의 제한속도가 최대 25km/h니 뒤처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나만의 자전거를 마련한다면 로드바이크를 사리라 마음먹었지만, 평균 100만원 이상인 데다 좋은 모델은 천문학적으로 가격이 뛰었다. 당시 용돈을 받는 학생이던 나는 ‘저 가격이면 뭐 하러 자전거를 타냐 차를 사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닌 척해도 마음 한구석에는 로드바이크가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흘러 이번 기사의 주제가 정해졌을 때 선배가 내게 물었다. “지원이는 하고 싶었던 레저가 있어?” “저는 로드 타보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운동은 장비가 팔 할이라고. 자전거를 타기 위한 장비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산바다스포츠’의 문성준 매니저는 소장한 자전거만 8대가 넘는다. 자신이 다니는 서울의 동선 곳곳에 자전거를 배치해두고 돌아가며 탄다. “필수는 헬멧이고 나머진 선택이죠. 그래도 빕숏은 있으면 좋아요. 엉덩이가 안 아파야 오래 탈 수 있으니까요.” 빕숏은 패드가 들어간 사이클링 하의다. 그의 안내를 받아 사이클 장비 전문 숍인 마프 랩 서울을 방문했다. 마프는 호주에서 2014년 론칭한 사이클링 전문 의류 브랜드로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콘셉트 스토어를 열었다. 숍에는 라이딩을 즐긴 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과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매주 화요일 ‘마프치노’ 로드 라이딩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적한 강 풍경을 보니 괜히 뭉클했다.
해방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마프치노는 ‘마프’와 ‘카푸치노’의 합성어로 라이딩 후에 커피를 즐기는 사이클 문화를 의미한다. 요새는 러닝이 소개팅을 대체한다던데 자전거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메뚜기 같은 선글라스와 엉덩이 패드가 빵빵한 빕숏을 보며 생각을 지웠다. 생경한 비주얼에 주춤했지만 착용 후 자전거에 앉아보니 방석에 앉은 것처럼 편안했다. 전문 장비를 착용한 내 모습에 취해 스스로가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타게 된 로드바이크는 캐논데일 슈퍼식스 에보1. 캐논데일은 레이스용 바이크 위주로 만드는 브랜드다. 슈퍼식스 에보는 풀 카본 소재 모델로 가벼운 무게와 경쾌한 주행감이 특징이다. 카본 프레임은 금속이 아닌 탄소섬유를 여러 번 압축해 만든다. 공정이 길고 복잡하기에 평균적으로 가격대가 높지만, 가볍고 탄성이 좋아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회용 모델에 주로 사용한다. 기술적인 설명보다도 연한 보랏빛과 푸른빛이 섞인 미스티 그레이 컬러 프레임이 시선을 빼앗았다. 당장에 타보고 싶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처음 타본 로드바이크는 정말로 가볍고 빨랐다.
무게는 단 770g으로 여자인 내가 들고 옮기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처음엔 허리를 반쯤 숙여 타야 하는 자세가 낯설어 휘청거렸지만 곧 익숙해졌다. 곡선으로 꺾인 드롭 핸들바의 상단을 잡으면 장거리 주행에 용이하고 아래쪽을 잡으면 더욱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자신감이 붙어 조금 더 세게 밟아보았다. 힘주어 밟을수록 치고 나가는 힘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자전거는 내 체력으로 원하는 속도를 내기란 무리였고, 전기자전거는 아무리 밟아도 속도 제한이 있으니 일정 속도에 도달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로드바이크는 내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재밌었다. 카카오 T 바이크가 스쿠터 같았다면, 로드바이크는 한 마리의 말 같았다. 오랫동안 타고 교감하면서 명마로 길러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강공원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많았다. 로드바이크를 타고 같은 길을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소속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휠의 얇기와 크기였다. 바퀴가 크고 허리를 숙여서 타다 보니 유턴해야 할 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타는 즐거움이 어려움보다 컸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이었는데 순풍의 영향으로 빠르게 나아가니 기분이 상쾌했다. 달리다 보니 점차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나와 자전거에만 집중해 달렸다. 잠원 한강공원에서 시작해 열심히 달려 망원 한강공원에 도착한 후 숨을 돌렸다. 한적한 강 풍경을 보니 괜히 뭉클했다. 해방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가을날에 타면 더욱 즐거울 게 분명하다.
오랜 시간 마음에 품었던 로드바이크는 생각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면허를 따지 않아도 되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있으니까. 그러면서도 높은 속도를 낼 수 있다니. 얼마 전 스쿠터를 구매했는데 면허를 따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연애에는 실패했지만 전 남자친구는 나에게 자전거 라이딩이라는 취미를 가져다주었으니 그걸로 괜찮다. 약간의 그리움을 동반하며 달리던 질주는 최근 이사하며 막을 내렸다. 더 이상 그의 아파트를 바라보는 코스는 달리지 않게 됐다. 이번 가을엔 새로운 마음으로 한강을 바라보며 달릴 예정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또 다른 코스가 생기리라 믿는다. 그 여정엔 나만의 로드바이크가 함께하면 좋겠다.
Editor : 유지원 | Photographer :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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