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신부? 낯설지만 문제 없어… 세상 바뀐만큼 교회도 변해야”[M 인터뷰]

박동미 기자 2024. 9. 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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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한주희 성공회 신부
사제자격 ‘성별·결혼’ 포함안돼
성공회 여성신부 20명 활동중
‘神父’ 남성성 담았지만 일반화
여성만 사제로 부르는건 부당
우리가 바뀌어야 청년 돌아와
‘종교 위기론’으로 변화 설파
교회, 무너진대도 계속 애쓸것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한성공회 여성선교센터에서 만난 한주희 신부. 사제복 중 가장 일상복에 가까운 검정 블라우스를 입은 한 신부가 센터 앞뜰에 앉아 성공회가 펼치고 있는 ‘안전한 교회’ 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가톨릭을 비롯해 장로교와 감리교 등 한국 기독교계에는 여성 목회자가 거의 없다. 신자든 비신자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도, 별다른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기독교 교파 중 하나인 대한성공회에는 ‘여성’ 사제, 즉 ‘여자 신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른다. 익숙하지 않은 장면은 커다란 궁금증을 가져온다. 이른바 검은 옷 입은 ‘워킹맘’ 사제.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종교, 그리고 그 안의 삶은 어떤 형태일까. 그것은 ‘독신 남성’으로 대표되던 정형화된 세계의 ‘그것’과는 분명 다를 터, 보수적인 교계와 교회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성공회 소속 한주희(42) 신부로부터 그 풍경을 들어봤다. 한 신부는 성공회 동대문교회 사제이자 성공회 여성선교센터 사무국장을 겸하고 있다. 인터뷰는 최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자리한 센터에서 진행됐다.

―‘신부(神父)’라고 하면 독신의 남성부터 떠오른다.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여자 신부’는 성공회 신자가 아닌 이들에겐 좀 낯설다.

“성공회 사제 자격엔 성별, 결혼 여부 조건이 없다. 이미 1980년 이전에 여성 신부가 나온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2001년 첫 여성 사제가 탄생했고, 현재 20명이 활동하고 있다. 낯설긴 해도 아주 특별한 사례는 아니라는 뜻이다. 나 역시 결혼을 했고, 초등학생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공식적인 장벽이나 제한은 없어도, 실질적인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이 교회에도 그대로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내가 사제 서품을 받은 게 10여 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사제(신부)=남성’에 익숙한 신자들이 내게 말 거는 걸 어색해했다. ‘어떻게 불러야 하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남성 사제에겐 전혀 하지 않는 질문이다. 또 아주 초기엔 수녀님들께 사제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할 때도 조금 눈치가 보였다고들 한다.”

―신부의 ‘부’가 아비 부(父)이고, 영어로는 ‘Father’이다. 이미 남성성을 내포한 단어인데….

“성차별적 단어를 어디까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고민이 많았는데, ‘신부’가 워낙 일반화됐고, 역사성과 전통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간혹 여성인 ‘신부’가 어색해 ‘사제’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거야말로 차별이다. 남녀 모두 ‘사제’로 부를 게 아니라면, 남녀 모두 ‘신부’가 낫다.”

―여성 사제가 아니라면, 누구도 호명 방식에 의문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신부들이 교회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하다.

“확실히 그렇다. 사실 성서 안에는 차별, 비하 단어가 넘친다. 사제들도 설교 중에 무심코 과부, 미망인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이런 것들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것도 여성 신부들일 수밖에 없다. 왜 그런 단어를 쓰면 안 되는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지속해서 교정하고, 설명한다. ‘세상이 바뀌었고 교회도 바뀌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그게 효과를 좀 봤나.

“우리가 변해야 사람들이, 특히 청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온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막말로 ‘이렇게 살다 죽을란다’ 하며 변화를 거부하던 사람들도 종교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위기감엔 공감했던 것이다. 신부님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도 하고 있다. 처음엔 불만도 있었지만, 이젠 전 교인이 함께 들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다. 사회에선 이미 상식이자 필수적인 것들이다.”

―종교가 역할을 못 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실은 종교가 필요 없어진 시대라고 보진 않는지.

“인정한다. 21세기 현대인들에겐 종교보다 중요하고 절대적인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예컨대 부동산과 교육엔 좌우가 없다고 할 정도 아닌가. 물신주의와 소비주의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그래서 종교가 더욱 필요하고,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음과 정신을 지켜낼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종교 역시 소비주의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그 보루가 무너진 것 아닌가.

“여러 종교에서 최근 다양한 형태의 포교,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게 소비적이기도, 그렇게 보일 때도 있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 뭐라도 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만일 무너져야 한다면, 아예 무너져 바닥을 쳐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무너지면서도 교회는 계속 외치고, 부르고, 애쓸 것이다.”

―21세기식 삶과 교회가 추구하는 삶의 속도가 너무 다르다. 사제로서 괴리감 같은 것은 없는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혼돈의 시대이고, 다양한 사상과 철학, 의견이 존재하지만 항상 ‘예수라면 뭐라고 하셨을까’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관이 예수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다만 주일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건 바쁘고 고달픈 현대인들에게 만만치 않은 일인 건 분명하다. 종종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과연 내가 사제가 아니었으면 주일성수를 했을까 하고(웃음).”

―여성선교센터 사무국장도 겸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이 궁금하다.

“앞서 이야기한 교회 내 ‘변화’를 이끌고 있는 구심점이 바로 여성선교센터다. 센터의 탄생 배경 자체가 1980∼1990년대 여성주의 신학운동 흐름과 닿아 있는데, 이는 가부장적 성서 해석에서 벗어나, 우리 식대로 우리 눈으로 읽어보자는 움직임이다. 성공회 어머니연합회와 GFS(Girls’ Friendly Society)가 주축이 돼 1990년대 초반부터 설립기금 모금이 시작됐고, 30여 년 만인 2016년 문을 열었다. 주로 교회 내 젠더 관련 이슈에 대응하고 교육하며, 여성 신자들의 모임과 상담 통로가 되어준다. 또 센터 공간은 피정(避靜·신자의 수련 생활)을 위한 장소로도 쓰인다.”

―‘여자 신부’도 생경하지만, 성공회 자체가 다른 종교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무얼 가장 강조하나.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에 비해 눈에 띄지도 않고 성도 수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보통 집안 대대로 이어 신앙 생활을 하는 가족이 많은 편이다. 성공회에 대해 소개할 때 흔히 영국의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여왕부터 꺼내지만, 그보다 나는 ‘중용(비아 메디아)’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를 고집하거나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자세다. 진리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지켜야 할 진리는 무엇이고,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함께 사는 세상 아닌가.”

―여성 사제들의 분투가 모든 여성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 교회 밖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서는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종교를 떠나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이를 이루기 위해선 ‘잘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 말을 좀 멈추고 타인의 얘기, 소수자의 얘기, 여성의 얘기를 듣는 우리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때 ‘다양한 리더십’이 발현되고,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교회든, 회사든, 세상 그 어디든 말이다.”

‘신은 존재할까’ 의심에 신학공부… 여성선교센터서 ‘마음·정신의 안전’ 추구

■ 한 신부는 누구

“신앙심이 좋아서 신부가 된 게 아니라, 의심이 많아서 신부가 됐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한성공회 여성선교센터에서 만난 한주희 성공회 신부는 목회 활동을 결심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공회 교회를 어린 시절부터 다녔고, 성실한 교인이긴 했으나 성직자로서 사역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흔히 종교인들이 말하는 ‘부르심’을 체험하거나, 종교에 귀의할 만한 커다란 삶의 질곡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20대의 어느 날, ‘세상이 왜 이렇게 불합리하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과연,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봉착해, 그 답을 찾기 위해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교회의 부정적인 면만 강하게 포착했던 시절이죠. 그래서 답을 찾았냐고요? 그래도 교회만 한 곳이 없다는 잠정적 결론이 났어요. 사람에게 희망을 품고, 또 변화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는 곳이 교회라는 걸요. 그곳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지 결심했죠.”

2015년 서품을 받은 한 신부는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사제다. 가톨릭 및 대부분의 개신교가 여성 목회자를 허용하지 않지만, 성공회는 일찌감치 여성 사제를 육성해 국내에만 2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첫 여성 사제의 탄생이 2001년이었는데, 한 신부가 서품을 받은 2015년에도 ‘여성용’ 사제복이 국내에 거의 없어 해외 직구를 해야 했다. 한 신부에 따르면 최근 미국 등 해외에선 서품을 받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만큼 여성 사제복을 구하기가 쉬운 것. 국내에선 보통 수녀님들이 사제복을 제작해 주곤 했는데, 당시만 해도 여성 사제들이 옷을 맞추러 가면 수녀님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고. 한 신부는 “워낙 오랜 세월 ‘신부는 남자’가 당연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연세 있는 수녀님들에게 젊은 여성 신부는 어색했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한 신부는 성공회 동대문교회 사제이면서 여성선교센터에서 사무국장으로 교회 내 성평등 및 성폭력 예방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선교센터의 설립은 여성주의 신학과 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 성공회가 전개하고 있는 ‘안전한 교회’ 운동의 작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운동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성차별이나 성폭력으로부터의 ‘안전’이었으나, 한 신부는 여기에 “마음과 정신의 안전”을 추가했다. 사실 성공회가 원어인 ‘세이프 처치’(Safe Church)를 한국어로 가져오는 과정에선 교회가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오인될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신부는 “과거에는 ‘안전’이라고 하면 ‘몸’이나 ‘먹거리’의 안전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정신세계의 안전이 더욱 중요하고, 깊게 논의되는 시대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안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하고, 또 되어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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