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 근처에만 가도 ''몸이 녹아버립니다''. 햇빛보다 더 '뜨겁다'는 빌딩의 정체

눈을 사로잡는 건축물, 그림자가 낳는 역설

최신형 유리빌딩이 하늘을 가르는 시대, 우리는 도시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반사되는 햇살과 유려한 곡선의 외관은 도시의 위상을 높이고 도심을 빛낸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엔 그늘, 아니 ‘뜨거운 저주’가 숨어 있다. 실내가 아닌, 바깥 거리와 광장, 해맑은 수영장을 지옥처럼 만들었던 거대한 건물들이 그 증거다. 라스베가스의 브다라 호텔, 그리고 런던의 워키토키 빌딩. 그 근처에 다가서면, 사실상 햇볕보다 더한 고온에 노출된다. 건물 하나가 주변을 가마솥으로 바꾸는 ‘융해의 마법’, 도시 한복판에서 반복되는 이 아이러니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브다라 호텔, 수영장의 머리카락이 타버린 이유

2009년,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의 신흥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브다라 호텔&스파. 천편일률적인 상자형 빌딩이 아닌, 곡률을 강조한 오목한 유리 커튼월은 미래지향적 아름다움을 품어냈다. 그러나 개장 이후 수영장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점심 무렵이면 머리카락이 새까맣게 타고, 피부에 화상 자국이 생기는 것. 심지어 놋쇠 장신구가 달궈져 화상을 입는 사례까지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원인을 추적하자 그 비밀은 곡면 외벽이 ‘돋보기 렌즈’ 구실을 한 데 있었다. 강한 네바다 햇살이 유리벽에 반사돼, 마치 거대한 햇빛집중기의 초점처럼 수영장 한 구역에 강력하게 모였다. 순간 온도가 70도 가까이 치솟으니, 일반인이 견디기 힘든 화상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행히 특수 필름을 덧대는 긴급조치로 극단적 고열 사태는 진정됐으나, 가까이 온 사람 몸이 ‘녹아버린다’는 도시 괴담이 당분간 맴돌았다.

워키토키 빌딩, 런던 거리에서 자동차와 계란이 ‘익다’

더 놀라운 건 이 ‘실수’가 한 건축가에 의해 반복됐다는 점이다. 브다라 호텔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 몇 년 뒤 영국 런던에 ‘20 피체스트리트’(별명 워키토키 빌딩)를 건립한다. 다시금 곡면 유리 커튼월, 더 과감한 오목 면이 도입됐다. 개장 이후 한여름 오후, 이상 현상이 속출하였다. 인도에 세워둔 차량의 내장이 녹아내리거나, 차량 외부가 일그러진 채 경보음을 울리며 망가지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거리에서 달걀을 깨 프라이가 익는 영상은 인터넷에서 핫이슈가 됐다. 이 빌딩의 남쪽 곡면이 특정 시간대에 햇빛을 강하게 모아, 맞은편 인도와 길가에 초점을 만들면서 실제로 90도를 넘나드는 온도 집중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그 지역 상점 주인들은 간판이 녹는 피해, 보행자 화상 피해로 곤욕을 치렀다.

건축가의 연이은 실책, ‘빛의 함정’을 예측 못 했던 이유

라파엘 비뇰리는 브다라 호텔에서 벌어진 참사를 경험하고도, 왜 동일한 오류를 반복했을까? 그는 워키토키 빌딩 사태 이후 대중 앞에 나서 자신의 실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과학적으로 모든 상황을 예측하긴 어렵다”, “디자인 과정에서 이런 광학적 부작용을 완벽히 시뮬레이션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다운 대비책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의 경우만이 아닌, 최근 수십 년간 급격히 발전한 유리 커튼월 기술은 도시 환경에 상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남겼다. 시뮬레이션이 강화되고, 태양의 위치나 계절별 일사량까지 분석하는 디자인 시스템이 생기기 전까지, 건물 하나가 도시 기후와 인근 사람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은 세계적 건축계에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

도시는 태양 아래 실험대, 현대 건축의 진짜 교훈

브다라 호텔 및 워키토키 빌딩의 해프닝은 기괴한 도시 괴담, 혹은 특이한 실수담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서울의 고층 건물을 포함해, 세계 각지 고도화된 도시마다 ‘열섬현상’, ‘글레어(눈부심)’, ‘반사광 집속’ 같은 신종 환경문제가 현실화됐다. 에너지 절약, 고효율 단열을 위해 도입된 유리벽이 때로는 인근 기온을 치솟게 하고, 예측불가한 빛의 반사로 도시민을 괴롭히는 ‘반작용’이 만연해진 것이다.

수영장, 공원, 거리 등 야외 공간의 쾌적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혁신적 외관을 뽐내는 방법론 마련이 지금의 건축계 최대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대규모 랜드마크 건물의 디자인 때, 빛의 각도, 반사 궤적, 에너지가 만들어낼 미시적 변화를 면밀히 예측하는 ‘솔라 시뮬레이션’이 표준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복되는 실수, 창의성과 안전의 딜레마

놀랍게도 이 ‘빛의 해프닝’을 만든 라파엘 비뇰리는 세계 건축계에서 여전히 명망 높은 인물이다. 뉴욕의 ‘432 파크 애비뉴’, 서울 종로타워 상층부처럼, 참신한 창의성을 인정받은 작품 역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 인물의 두 차례 반복된 ‘태양 집중 사고’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현대 건축의 모순된 본질을 드러낸다. 건축의 혁신적 아름다움과 주변 사람의 안전, 환경적 조화 간에는 언제나 긴장이 존재한다.

이제 각국 도시와 건축가는 익숙한 재료와 아이디어를 넘어, 빛과 열, 기류 등 환경적 요소에 대한 신중한 연구와 관리 없이는 도시 공간 누구도, 어떠한 형태의 창의성도 온전히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시기가 됐다.

낯선 디자인과 눈부신 유리벽이 만든 그늘, 그 아래를 지나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과학적 시스템과 치밀한 검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브다라 호텔과 워키토키 빌딩이 남긴 씁쓸한 교훈은, 결국 ‘건축은 사람을 위한 과학’이어야만 한다는 한 줄 정의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