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가 20조 사업에 유럽 버리고 한국 선택한 진짜 이유... "엔진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20조원 규모의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서 한국이 중국과 함께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터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이 참여했던 이 사업에서 왜 하필 한국과 중국만 남게 되었을까요?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엔진'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장갑차를 만들어 파는 사업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이 사업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먼저 2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단순 수출이 아닌 공동 개발 프로젝트


이 사업이 20조원이나 되는 이유는 이미 완성된 장갑차를 단순히 생산해서 사우디에 공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와 공동으로 아예 새로운 차륜형 장갑차를 개발하고, 그것을 사우디 현지에서 생산하는 프로젝트인 것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20조원에는 각종 기술을 이전해주고, 사우디 현지 기업과 함께 현지에서 장갑차를 생산하는 비용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대규모 기술이전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엔진입니다.

유럽 회사들이 줄줄이 탈락한 결정적인 이유도 자체적으로 신뢰성 있는 엔진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가 원하는 장갑차는 30톤 전후의 차륜형 장갑차이고, 이를 위해서는 대략 700마력 정도의 엔진이 필요합니다.

독일 MTU 엔진의 딜레마


물론 700마력급 엔진이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700마력 엔진들은 이미 단종된 상태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단종되지 않고 생산 중인 700마력급 엔진은 독일 MTU사의 8V 199 엔진뿐이죠.

이 엔진은 지금 700마력급 엔진이 필요한 서방권의 거의 모든 장갑차에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미국의 M10 부커 경전차부터 영국의 장갑차, 그리고 독일의 복서 차륜형 장갑차까지 전부 이 엔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독일 MTU사의 엔진 생산 능력이 극악일 정도로 형편없다는 것이죠.

만일 사우디가 독일 MTU사의 엔진을 장착한 장갑차를 도입한다면, 모든 장갑차를 공급받는 데 못해도 20년 이상이 걸릴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사우디는 이미 독일 정부로부터 무기 금수 조치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독일 엔진을 채택한다는 것은 사우디 입장에서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입니다.

한국의 두 가지 700마력 엔진 개발


그래서 이 사업의 핵심은 독일 MTU사의 8V 199 엔진이 아닌, 신뢰성을 증명할 수 있고 충분한 생산 능력까지 보장할 수 있는 자체 엔진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자체적인 700마력 엔진 모델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노린코와 한국의 한화만 최종 후보로 남게 된 것이죠.

그리고 한국은 현재 신형 700마력 엔진을 무려 두 가지나 개발하고 있습니다.

K21 장갑차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의 K21 장갑차에도 700마력대 엔진이 들어가는데, 그 엔진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엔진도 조만간 단종된다는 점입니다.

현재 K21 장갑차는 4차 양산이 진행 중인데, 이번 4차 양산을 끝으로 엔진이 단종됩니다.

K21 장갑차에는 HD 현대 인프라코어가 생산하는 D840LX라는 엔진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75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는 이 엔진은 K200 장갑차와 비호 복합 자주대공포에도 같은 계열이 들어갑니다.

K200에는 350마력 엔진이, 비호합에는 520마력 엔진이 들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이 엔진에 들어가는 연료 분사 펌프가 보쉬라는 회사의 제품인데, 환경 규제 때문에 조만간 단종되고 그 덕분에 현대 인프라코어의 D840 시리즈 엔진도 단종되게 되었습니다.

STX 엔진의 SMV 시리즈 개발


문제는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 750마력 엔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K21 장갑차의 4차 양산이 끝난 다음에는 바로 지뢰 제거 장갑차와 공병 장갑차가 한화에서 생산되는데, 당연히 이 차량들은 K21 장갑차의 차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K21과 동일한 750마력 엔진이 필요합니다.

사우디 2026 국제방산 전시회에 전시된 STX 엔진

그래서 한국은 국방 기술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엔진 개발 사업을 추진했고, 이 사업에 STX 엔진이 선정되었습니다.

STX가 이 사업을 통해 개발하는 엔진은 총 세 종류로 SMV 350, SMV 520, 그리고 SMV 750이 있습니다.

특히 SMV 750이 지뢰 제거 장갑차에 들어가는 엔진입니다.

이 엔진들은 기본적으로 출력은 다르지만 부품의 80%가 공통이라고 합니다.

K9 자주포에 들어가는 천마력 엔진의 커먼레일 기술을 적용해서 개발되고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 이 엔진들의 특징은 커먼레일 기술을 활용해서 엔진을 엄청나게 경량화시키고 연비도 향상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개발될 미래의 하이브리드 장갑차 시스템에도 일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HD 현대 인프라코어의 별도 개발


여기까지 들어보면 당연히 한화의 타이곤에는 바로 이 STX 엔진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이야기지만 한국에는 지금 STX 엔진의 750마력 엔진 말고 또 다른 700마력 엔진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공통화 사업에 STX가 선정되었다는 것은 HD 현대 인프라코어는 이 사업에 탈락했다는 뜻인데, 현대 인프라코어도 700마력 엔진을 개발 중인 것입니다.

현대로템은 25톤급 차륜형 장갑차를 자체적으로 개발했습니다.

당연히 차륜형 장갑차도 25톤급 장갑차이기 때문에 기존 K808 차륜형 장갑차에 들어가는 450마력 엔진으로는 필요한 출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HD 현대 인프라코어는 현대로템의 25톤급 차륜형 장갑차를 위해 새로운 700마력 엔진을 별도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STX가 개발하는 750마력 엔진은 궤도형 장갑차에 적합하게 토크나 출력 등의 세팅을 하고 있고, 그에 반해 HD 현대 인프라코어의 700마력 엔진은 차륜형 장갑차에 적합하게 엔진을 세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륜형 장갑차의 엔진으로는 HD 현대 인프라코어의 엔진이 더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었고, 당연히 한화도 타이곤에 HD 현대 인프라코어의 700마력 엔진을 탑재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사우디 시장을 향한 두 엔진의 경쟁


그런데 이번에 STX 엔진은 사우디의 방산전시회에서 자사의 엔진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STX 엔진이 개발하고 있는 공통화 엔진은 일종의 모듈형 엔진이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엔진을 개발할 수 있고, 당연히 SMV 750의 세팅을 변경해서 차륜형 장갑차에 적합하게 세팅을 다시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우디의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 STX 엔진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은 사우디에 두 종류의 700마력급 엔진을 제안하고 있는 셈이죠.

현시점을 기준으로 HD 현대 인프라코어의 엔진을 직접 보지 못해서 확답은 하지 못하겠지만, STX 엔진의 SMV 750은 STX가 자랑하는 K9 자주포용 엔진인 SMV1000을 기반으로 개발된 엔진이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바로 이 점이 한국이 사우디에 20조원에 달하는 차륜형 장갑차 사업의 최종 후보에 들어간 이유입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다양한 제안을 당연히 사우디에 했겠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신뢰성 있는 엔진을 사우디에 제공할 능력이 있는 나라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한국은 무려 두 가지 엔진을 사우디에 제안할 수 있고, 사우디는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틀림없이 이 엔진조차도 사우디 현지에서 라이센스 생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가 사우디의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 선정될 것이라고 이야기되는 이유도 단순히 지금까지 사우디에 여러 무기를 많이 판매해서가 아닙니다.

중국 노린코가 제안하는 차륜형 장갑차에 탑재된 엔진에 비해 한국의 엔진이 사우디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업은 단순하게 사우디의 차륜형 장갑차를 만들어서 납품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사우디 현지에서 사우디와 함께 새로운 차륜형 장갑차를 개발하는 사업이고, 새로운 장갑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충분한 생산력과 믿을 수 있는 엔진입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에서 그럴 능력이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점이죠.

바로 이 엔진들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장갑차를 찾는 나라들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