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전체가 VIP석이라니…티켓값 급등에 열받는 관객들
비싼 좌석 비율 점점 높아져
3층 시야장애석마저 로열석
제작사 "물가·인건비 상승"
전문가 "외국처럼 좌석 세분"

'이제 더 이상 날아오를 곳도 없다.'
최근 연극·뮤지컬 팬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날아오른다'는 표현은 공연장 1층보다 더 높은 곳의 객석 티켓을 구해 작품을 관람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 지난해 말부터 제작사들이 유례없는 속도로 티켓 가격을 인상한 '티켓플레이션'과 동시에 최고가 VIP석, R(로열)석 비율이 급증하면서 공연계 가격 장벽이 끝을 모르고 높아지는 모양새다.
최근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4차례 진행된 티켓 오픈 당시 1층석, 2층석, 3층석으로 나눠 예매를 진행했다. 배우 김유정, 정소민, 이상이 등 호화 캐스팅으로 연극으로선 드물게 최고가 11만원을 내세워 화제가 된 작품이다. 공연이 올라온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은 총 1004석 규모의 대극장으로, 객석 1층은 14열로 이뤄져 있다. 중앙 블록의 정 가운데 자리 관객과 시야 제한이 발생하는 사이드 블록의 맨 뒷좌석 관객이 같은 가격을 주고 공연을 본 셈이다.
제작사 쇼노트 측은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된 대부분의 공연이 층별로 좌석 등급을 지정해왔다"면서 "극장 시야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좌석 등급을 구분했으며 복잡하고 화려한 무대 세트, 이를 위한 무대·조명·의상 스태프, 22명의 배우 등 제작 과정 전반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코로나19 기간 같은 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이 층별로 같은 가격에 티켓을 판매했다.
오는 31일 개막하는 연극 '파우스트'는 LG아트센터 LG시그니처홀의 R석(9만9000원)을 객석 2층까지, S석(7만7000원)을 3층까지 늘렸다. 공연장별로 차이가 있지만 객석 2, 3층부터는 시야 제한에 오페라글라스 필수 구역이다. 개막 당시 최고가 18만원으로 이슈가 된 뮤지컬 '물랑루즈'는 VIP석이 객석 2층까지 올라왔다.
공연장 내 상위 등급 좌석의 비율은 극장 규모를 가리지 않고 늘어나는 추세다.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호프'는 600석 극장의 1층 전체가 R석으로 통일됐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개막한 연극 '아마데우스'도 1층 객석의 90% 이상을 VIP석으로 지정했다.

최고 등급뿐만 아니라 최저 등급 좌석 가격이 비싸지는 것도 문제다. 뮤지컬 '베토벤'은 4층에 자리한 최저가 B석이 8만원, 뮤지컬 물랑루즈는 3층 A석이 9만원에 달한다.
실제 공연계 티켓플레이션 현상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뮤지컬보다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았던 연극 장르에서 상승세가 가파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의 가격대별 티켓 판매액 통계에 따르면 연극은 지난해 2월 10만원 이상 가격대의 공연 티켓 매출 비중이 0%로 전무하다가 올해 2월 18%로 급증했다. 반면 3만원 이상~5만원 미만 가격대에 속하는 매출은 전년 33%에서 올해 16%로 크게 줄었다.
당장 관객들로부터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공연을 보러 가기 겁난다"는 원성이 나온다. 늘어난 관람 비용과는 달리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는 주연 배우 정소민이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 하루 전 다른 배우로 갑작스레 교체돼 티켓 환불이 실시됐다. 뮤지컬 '영웅'의 경우 지난달 10일 공연장 기계장치 결함으로 당일 공연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제작사 입장에선 치솟은 물가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다는 호소가 나온다. 한 공연 관계자는 "제작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늘었다"며 "물가와 최저임금이 동시에 상승하니 출연 배우와 스태프 전체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도 커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해외 프로덕션과의 협업, 오리지널팀 연출진이 합류한 작품이 많아진 것도 제작비가 늘어난 배경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좌석 가격 등급을 다양하게 나눠 선택지를 늘리고 관람객 할인 혜택을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용 부담을 관객에게만 전가하다간 연극·뮤지컬이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제작비가 상승하면 티켓 가격을 올리거나 높은 가격 좌석의 비율을 올려야 손익을 맞출 수 있다. 제작사 입장에선 비용 회수를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며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경우 공연장 블록 내 좌석 등급이 한국보다 훨씬 세분화돼 있다. 티켓 최고가와 최저가의 폭이 넓어지면 관람객은 좋지 않은 자리라도 공연을 접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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