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51-②>1997년 KS 1승4패 준우승의 허와 실

“공도 배트도 둥글다”
-LG 트윈스 천보성 감독.
“승산은 반반이다”
-해태 김응용 감독.
LG 트윈스는 1997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5차전 혈투 끝에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상대는 페넌트레이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힘을 비축해 놓은 해태 타이거즈였다.
LG로선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단 하루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해 여러 모로 불리한 상황. 하지만 천보성 감독은 강한 어조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반면 산전수전 다 겪은 김응용 감독은 오히려 신중한 발언을 했다. 해태 선수단을 향해 긴장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LG와 해태는 자타가 공인하는 KBO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 두 팀이 한국시리즈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자 팬들과 언론의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51-②>의 주제는 1997년 한국시리즈 이야기다.
MBC 청룡 시절이던 1983년 이후 14년 만에 양 팀이 격돌하는 한국시리즈지만, LG 트윈스로 신장개업을 한 뒤로는 처음 맞붙는 폴 클래식(Fall Classic)이었다. 지나고 보니 KBO 역사에서 해태라는 간판을 달고 치르는 마지막 한국시리즈 무대이기도 했다. LG가 해태 신화 최후의 파트너가 됐다.

◆‘KS 불패신화’ LG vs 해태
해태는 그동안 한국시리즈에 8차례 올라 모조리 우승을 차지한 가을야구의 절대강자였다. 1983년을 시작으로 1986~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까지 한국시리즈에 진출만 하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철옹성이었다.
양 팀의 한국시리즈 역사를 논하자면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엘팬알백] 10화에서 자세히 다뤘지만, MBC 청룡 시절이던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해태에 1무4패로 힘없이 물러난 바 있다. 그것이 청룡 시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였다.

하지만 LG 트윈스로 간판을 바꿔 단 뒤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LG는 1990년과 1994년 2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모두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특히 1990년에는 삼성 라이온즈를, 1994년에는 태평양 돌핀스를 4승무패로 꺾어 ‘KS 8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었다.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양 팀의 1997년 한국시리즈 충돌은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
하지만 LG는 앞서 기술했다시피 체력이 관건이었다. 1997년 플레이오프에서 1~2차전을 잡고도 최종 5차전까지 간 것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팀인 해태 구단 분위기가 마냥 무지갯빛으로 아롱져 있는 건 아니었다.
포스트시즌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10월 초에 구단 매각설이 터져 나왔다.
자금난에 휩싸인 해태그룹은 제2 금융권 빚을 줄여 재무구조를 개선하고자 했다.
해태전자, 해태중공업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를 모두 매각하겠다는 자구 계획을 채권금융기관에 통보했다는 것이 골자. 그런데 그 안에는 해태 타이거즈 매각안(1500억 원)까지 포함돼 있다는 얘기가 돌았고, 실제로 언론에서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해태 선수단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초대형 악재였다.
그러자 해태그룹은 “최근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해태 타이거즈를 담보로 제공한 적은 있지만, 제3자에 매각하는 방침은 구체적으로 결정한 바 없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여기에 구단 내부적으로도 분위기가 심상찮치 않게 흘러갔다.
1995년을 끝으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일본프로야구(주니치 드래건스)에 진출하고, ‘오리궁둥이’ 김성한도 은퇴한 상황에서 김응용 감독은 세대교체 작업을 서둘렀다.
그러면서 199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를 짜면서 선수단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인 이순철을 과감하게 빼버렸다.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뛰지 못하게 된 이순철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곧바로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시리즈라는 대사를 앞두고 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게다가 해태는 그해 7개 구단 중 유일하게 LG에게만 상대전적(8승10패)에서 밀렸다.
그래서인지 큰 경기를 앞두고 장외 설전으로 상대의 신경을 자극하곤 하던 김응용 감독도 신중한 발언만 한 채 조용히 결전을 준비했다.

LG는 플레이오프에서 충수염 수술로 이탈한 실질적 에이스 최향남의 공백을 실감했다.
최향남은 한국시리즈까지 뛸 수 없는 상황. LG로서는 가뜩이나 에너지가 소모된 마운드에서 운용의 묘수를 찾아야 했다.
당시엔 대회 요강에 따라 5~7차전을 잠실구장에서 열리도록 했다. 수도 서울 잠실구장을 중립구장 개념으로 삼고 있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면 1~2차전은 1위팀 해태의 홈인 광주구장에서 치르고, 3~4차전은 대구구장, 5~7차전은 잠실구장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LG가 한국시리즈에 오르자 1~2차전을 광주가 아닌 잠실구장에서 개최하도록 했다. 3~4차전은 광주구장, 5~7차전은 다시 잠실구장에서 소화하도록 일정을 잡았다. 7차전 중 5경기가 잠실에서 개최하도록 잡혀 있으니 이 역시 LG에 유리했다.

◆[KS1] ‘바람의 아들’에게 기선제압 당한 ‘노송’…LG KS 8연승 행진 마감

LG 천보성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하루 앞둔 18일밤, 고심 끝에 1차전 선발투수로 김용수를 결정했다.
김용수는 플레이오프 4차전(10월 15일)에 선발등판해 5.1이닝 동안 67구를 던진 뒤 3일 휴식 후 등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노장 선수에겐 강행군에 가깝지만 어쨌든 LG로선 가장 믿음이 가는 카드. 첫판부터 잡고 가겠다는 의지였다.
김용수는 1990년에는 선발투수로, 1994년엔 마무리투수로 맹활약하면서 2차례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바 있다. 큰 경기 경험과 배짱 면에서 보면 그만한 투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해태는 선동열이 일본으로 떠난 뒤 ‘에이스 오브 에이스’로 떠오른 고졸 5년생 투수 이대진을 첫판의 선봉대에 내세웠다.
1차전은 일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상황. LG와 해태 팬들은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잠실구장 앞에 진을 쳤고, 결국 매표소 앞에는 일찌감치 매진 푯말이 나붙었다.

LG는 해태 이종범의 원맨쇼에 1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3회초 0-0의 팽팽한 균형이 무너졌다. 2사 후 볼넷을 골라 나간 이종범은 곧바로 2루를 훔쳤고, 장성호가 볼넷을 얻을 때 바운드된 공을 포수 김동수가 더듬자 3루까지 내달렸다.
여기서 1996년 말 해태로 이적한 최훈재가 친정팀 LG를 향해 비수 같은 우전 적시타를 날렸다.
김용수는 4회까지 산발 4안타 1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5회초 2사 후 이종범에게 좌월 솔로홈런을 허용한 뒤 강판됐다.
LG는 그 이후 6명의 불펜투수를 투입했지만 6회초 1점, 8회초 2점, 9회초 1점을 추가로 내주고 말았다.
반면 LG 타선은 침묵했다. 힘이 넘치는 이대진의 구위에 눌려 5회까지 단 1안타 2볼넷밖에 얻지 못했다. 1안타도 2회말 류지현의 유격수 쪽 내야안타였다.
그러다 0-3으로 뒤진 6회말 박종호가 우월 솔로홈런을 날렸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듯했지만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LG는 1차전을 1-6으로 패하면서 1990년부터 이어온 한국시리즈 8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김용수는 4.2이닝 5안타 2실점으로 나름대로 선방했지만 이종범을 잡지 못하면서 개인통산 한국시리즈 첫 패전 기록을 떠안았다.

◆[KS2] 대타 노찬엽 역전타…루키 임선동 첫 KS 승리

1차전이 끝난 뒤 양 팀 감독의 합의 아래 2차전부터 ‘선발투수 예고제’가 시행됐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초의 일로 한국야구사에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LG는 2차전에 곧바로 루키 임선동, 해태는 미래의 에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고졸 2년생 김상진(작고)을 예고했다.
LG는 3회까지 매 이닝 2사 1·3루 찬스를 잡고도 허무하게 득점생산에 실패했다. 그리고는 4회초 3연속 안타를 맞고 선취점을 빼앗겼다.
불안감이 엄습하는 순간, 4회말 황금찬스가 찾아왔다.
해태 3번째 투수 이강철을 상대로 1사 만루의 기회를 얻었다.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를 선호하는 김응용 감독은 좌타자 동봉철을 상대하기 위해 좌완 김정수를 투입했다.

그러자 LG는 우타자인 ‘검객’ 노찬엽을 대타 카드로 꺼내들었다. 노찬엽은 여기서 천금 같은 2타점 우중월 2루타를 날려 전세를 2-1로 뒤집었다.
이어 서용빈의 유격수 앞 땅볼 때 이종범이 잡아 3루 쪽으로 던지다 악송구를 범했다. 3-1 리드.
여기서 심재학이 2타점 좌월 2루타를 터뜨렸다. 4회말에만 5점을 뽑는 빅이닝. LG는 5회말에도 5점을 추가하면서 10-1 대승을 거뒀다.
임선동은 5이닝 1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았고, 김기범~차명석~전승남~송유석이 1이닝씩을 책임졌다.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던 심재학은 4타수 3안타 4타점의 불방망이로 4번타자로 돌아왔다.
이로써 LG는 잠실 안방에서 1승1패를 거둬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KS3] 이번엔 이종범 홈런포에 당했다…1승2패로 밀린 LG

하루 휴식 후 광주로 이동해 3차전을 치렀다. LG는 2년생 투수 손혁을, 해태는 ‘싸움닭’이자 오랫동안 ‘LG 킬러’로 군림한 베테랑 조계현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LG는 3회초 2사 2루서 류지현의 우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천보성 감독은 선발투수 손혁(2.1이닝 무실점)에 이어 김기범(0.1이닝 무실점)과 차명석으로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로 대응했다.
LG 투수진은 5회까지 해태에 단 1안타(1회말 장성호 2루수 쪽 내야안타)와 볼넷 2개만 내주면서 침묵에 빠뜨렸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다시 이종범의 원맨쇼가 시작됐다.
6회말 선두타자 이종범이 건국대 1년 선배인 차명석을 상대로 좌월 동점포를 터뜨렸다. 7회말 1사 1루에서는 동기생인 이상훈의 초구 직구를 통타해 우중월 2점포를 날렸다.
이상훈은 확실히 지쳐 있었다. 8회말 선두타자 홍현우와 김창희에게 연속 2루타를 맞는 등 2실점. 결국 LG는 1-5로 패하면서 시리즈 전적 1승2패로 밀리게 됐다.

◆[KS4] 아! 김용수 또 패전투수…LG 4-7로 역전패 ‘벼랑 끝’

4차전은 1차전 선발로 나선 김용수와 이대진의 리턴매치. LG는 1회와 2회 1점씩을 뽑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1회초 선두타자 류지현이 이종범의 1루 악송구를 틈타 2루까지 진출한 뒤 계속된 1사 3루서 서용빈의 2루수 쪽 땅볼로 선취점을 얻었다.
2회초에는 1사 후 허문회의 볼넷과 김동수의 사구로 잡은 1·2루에서 9번타자 신국환의 좌전 적시타로 2-0으로 리드를 잡았다.
김용수는 2회말 홍현우, 4회말 신인 김창희에게 솔로홈런을 맞는 등 4이닝 3실점하면서 2-3으로 뒤진 채 마운드를 물러났다.
LG 불펜진이 결국 7회말 김종국의 2점홈런을 내주는 등 대거 4실점하면서 2-7로 크게 뒤졌다.
9회초 2사 1·2루에서 류지현이 2타점짜리 우중간 2루타로 4-7로 따라붙었으나 더 이상 추가점을 뽑지 못했다.
김용수는 한국시리즈에서 1990년 선발 2승, 1994년 1구원승 2세이브를 올린 뒤 1997년 2패만 기록하게 됐다.

◆임선동도 무너졌다…이종범 KS MVP

하루 휴식 후 다시 잠실구장. 잠실은 LG의 홈이지만 5~7차전은 중립 경기로 치르기로 합의해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온 LG가 선공을 펼쳤다.
LG는 임선동을 선발로 투입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해태는 ‘아기호랑이’ 김상진을 선발로 낙점했다.
3~4차전에 이어 5차전 역시 선취점은 LG의 몫. 1회초 선두타자 류지현이 볼넷과 도루로 살아나간 뒤 서용빈의 우전 적시타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LG는 해태 김상진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2회초 노찬엽의 볼넷, 3회초 박종호의 중전안타가 전부였다. 4회부터 9회까지 모두 삼자범퇴. 이렇다할 반격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1-0으로 앞서갔던 LG는 3회말 김종국의 볼넷과 이종범의 우전안타로 무사 1·3루 위기를 만났다. 장성호의 내야땅볼, 최훈재의 우익선상 2루타로 1-2가 되고 말았다.
이어 4회말 1점, 5회말 3점을 내주면서 끝내 1-6으로 패했다.
LG는 시리즈 전적 1승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해태 선발투수 김상진은 9이닝 2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 만 20세 7개월 16일로 역대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기록(종전 1988년 KS 3차전 해태 문희수 23세7개월7일)을 갈아치웠다.
해태는 V9를 달성했다. 9차례 한국시리즈에 올라 모조리 우승했다는 것 자체가 전설이었다. 이것이 해태 시대의 마지막 한국시리즈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한국시리즈 MVP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받았다. 5경기에서 결정적인 홈런 3방을 포함해 17타수 5안타(0.294), 4타점, 6득점, 2도루를 기록했다.
기자단 투표 결과 이종범은 이대진을 33-12로 물리치고 신인 시절이던 1993년에 이어 개인통산 두 번째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LG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1승4패로 패퇴했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MBC 청룡은 해태를 상대로 1무4패로 밀렸는데, 그로부터 14년 만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만나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번엔 1승을 챙긴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세대교체와 용두사미…1997년의 득과 실
비록 준우승으로 끝났지만 LG의 1997년을 되돌아 보면 드라마틱했다.
시즌 초반 10연승 질주 속에 1위로 치고 나갔고, 10승, 20승, 30승, 40승 고지를 차례차례 선착했다. 애초에 LG를 페넌트레이스 우승 후보로 꼽은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포스트시즌 진출 전망조차 불투명했다.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다시 부는 신바람 야구에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0승에서 50승까지 28경기가 소모됐고, 50승에서 60승까지도 20경기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결국 해태에 추월을 당해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놓쳤다.
1994년 이후 3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올랐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분명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용두사미(龍頭蛇尾)’ 시즌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득(得)도 있었다. 전년도 팀순위 6위에서 초보 사령탑 천보성 감독의 지휘 아래 2위로 도약했다는 것 자체가 박수를 받을 만했다.
특히 투수 쪽에서는 최향남 임선동 전승남, 야수 쪽에서는 ‘적토마’ 이병규와 ‘신데렐라’ 신국환 등이 세대교체 선봉에 섰다.
새로운 동력을 확보한 LG는 다음 시즌을 기약하며 스토브리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거센 소용돌이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팀 전력의 핵심인 ‘야생마’ 이상훈이 해외 진출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엘팬알백] <52>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