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에 진심 현대차그룹, '포뮬러1·E'는 왜 외면할까
양산차 기반 WRC·원메이크레이스에 집중
기술적 내재화 관점서 접근…전략적 행보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 참가하고, 국내 최대 원메이크레이스(동일 차종 레이스) '현대 N 페스티벌'도 개최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1이나 포뮬러E에는 유독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양산차 기반의 레이싱을 통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다시 양산차에 적용하는 기술적 내재화 전략에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28일 경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국내 최대 규모 원메이크레이스 '현대 N 페스티벌'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정 회장은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을 비롯해 현장을 방문한 고객들과 격의없이 진솔하게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모터스포츠 경기장 밖에서도 모터스포츠 문화를 고객들이 즐길 수 있는 이벤트존과 고객 편의를 위한 부대시설 등을 꼼꼼히 점검했다.
회장이 직접 현장을 챙길만큼 현대차그룹의 모터스포츠 문화 조성과 부흥 의지는 '진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의 모터스포츠 최초 진출은 1998년으로 호주 레이서 웨인 벨과 협업해 호주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다. 이후 2000년 2월 스위스 스웨덴 랠리에서 새로운 현대자동차 엑센트를 출전시키며 WRC에 첫 진출했다. WRC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다.
현대차그룹의 모터스포츠 진출 본격화는 2012년 말 독일 알체나우에 모터스포츠 관련 활동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인 현대자동차 모터스포츠 법인(Hyundai Motorsport GmbH)을 설립한 것이 계기가 됐다.
2013년에는 현대자동차 모터스포츠팀이 8200㎡ 규모의 새로운 시설을 개설하고 11개국 출신의 사내 전문가 50명을 고용해 전담팀을 꾸렸고 WRC 매니저 미셸 난단을 새로운 총 감독으로 영입했다. 2014년에는 벨기에 출신의 신예 스타 레이서 티에리 누빌을 영입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안드레아 아다모 감독을 영입하고 오랜 숙원이었던 WRC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차그룹의 모터스포츠 진출이 더욱 가속화한 계기는 지난 2015년 비엠더블유(BMW)의 고성능 브랜드 M 디비전을 담당하는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의 영입이었다.
알버트 비어만은 BMW 테스트 엔지니어로 입사해 1994년부터 2000년까지 BMW의 고성능 브랜드인 M 디비전에서 섀시, 드라이브트레인, 전자 시스템 개발 분야를 총괄했던 입지적인 인물이다. 당시 현대차그룹의 영입으로 인해 독일 자동차계에는 엄청난 파장이 일었고, 독일 정부는 기술 인력이 유럽연합(EU) 역외 회사로 재취업할 경우 정부에 신고하도록 법안도 개정했다.
비어만의 영입과 동시에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을 론칭한다. 이후 현대차와 기아의 고성능 모델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제네시스 G70, 기아 스팅어, 현대차 아반떼 N 등 기존 독일 고성능차에 버금가는 성능의 모델을 속속 출시했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WRC 출전, 원메이크레이스 대회 개최를 통한 모터스포츠 저변 확대와 더불어, 늘어나는 고성능 차량 수요를 소화할 수 있는 고성능차 라인업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은 일반 소비자들의 드라이빙 체험 시설과 첨단 주행시험장이 결합된 국내 최대 규모의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도 운영 중이다.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는 한국테크노링 주행시험장(126만㎡, 38만평)과 지상 2층 1만223㎡(3092평) 규모의 고객 전용 건물, 8개의 주행 체험 코스로 구성돼 다양한 드라이빙 체험과 브랜드 경험이 동시에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 시설이다.
해당 시설에서는 드라이빙 기초부터 레이싱 드라이빙 테크닉까지 실력에 맞는 드라이빙 스킬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트랙 익스피리언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현대 N 페스티벌 참가차량으로 드라이빙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최근에는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고성능 차량 브랜드 '제네시스 마그마'도 론칭했다. 이전에 볼 수 없던 주행과 운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최근 GV60, GV80, G80 등의 마그마 모델 콘셉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모터스포츠에 적극 참여함에도 '끝판왕' 격인 포뮬러 시리즈에는 진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입장임에도 최고의 전기차 경주대회 '포뮬러E'에 대한 진출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측은 경주차의 기술을 양산차와 연계시키는 '기술적 내재화' 관점에서 모터스포츠 진출을 추진하기에 포뮬러 시리즈 진출은 내부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WRC와 원메이크레이스는 양산차 기반 튜닝으로 나온 결과를 활용해 경주차를 만들고,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다시 양산차에 적용시키기 용이하다"면서 "반면 포뮬러1과 포뮬러E의 경우 양산차가 아니라 트랙에 적합한 새로운 차량을 제작하기에 상대적으로 양산차와의 기술 연계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대차는 고성능 전기차를 활용한 '아이오닉 5 N en1 컵카'를 만들고 전기차 원메이크레이스를 추진하고 있다. 아이오닉 5 N eN1 컵 카는 최고 출력 478kW(650마력) 전·후륜 모터와 84.0kWh 고출력 배터리 등 첨단 전동화 기술을 집약해 주행 성능을 극대화했다. 서킷 주행을 위한 다양한 요소를 추가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포뮬러E의 경우 레이싱 경기 특유의 엔진음이 없어 관람객 쾌감 측면에서 외면받고 전반적인 관심도 낮은 상태"라며 "기술적 방향성과 맞지도 않고 인기가 많지 않은 포뮬러E는 (자동차 업계 전반적으로도) 투자나 관심이 낮다"고 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포뮬러1이나 포뮬러E에 완전히 관심을 놓은 것은 아닐 것"이라며 "당장 집중할 수 있는 양산차 기반 레이싱에 투자를 한 뒤, 추후 여력이 된다면 포뮬러 시리즈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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