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개의 원석이 찬란하게 빛나기 위한 무대로 나가는 순간이 머지않았다. 중요한 선택을 앞둔 KBO리그 10개 구단의 스카우트들은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으며, 곧 수많은 선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앞서, 10대의 마지막을 누구보다 뜨겁게 보내는 청춘들이 있었다. 동기들과 나라를 대표해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세계 무대에 발을 들인 어린 선수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른바 제32회 WBSC 18세 이하 야구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야구의 유망주들. 이들이 이번 여름에 써 내려간 열흘간의 기록을 찬찬히 톺아 보려 한다. (9월 16일 작성)
에디터 김민규 사진 @phtby.z,@t0uchthesky_

#대회 개요
18세 이하 야구 월드컵은 프리미어 12와 하계 올림픽 야구를 주관하는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가 개최하며, 1981년 초대 대회가 열린 뒤 올해로 32회째를 맞은 유서 깊은 청소년 야구 국제 대회다. 본래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라는 의미로 Baseball World Junior Championship(1~9회), Junior Baseball World Championship(10~24회), U-18 Baseball World Championship(25회) 등으로 불렸으나, WBSC가 처음 설립된 2013년부터는 지금의 ‘U-18 야구 월드컵’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
총 12개국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9월 5일부터 9월 14일까지, 총 열흘 동안 치러졌다. 8월 말일부터 9월 초까지 열린 지난 31회 대회(2023년 8월 31일~9월 10일)와 마찬가지로 드래프트 지명 직전까지 고등학교 3학년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에 야구 월드컵을 지켜본 팬 중에서는 누가 본인의 응원팀에 올 만한지 추측해 보는 재미도 있었을 듯하다. 어쩌면 지금 타석에 들어선 저 선수가 내년에는 우리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뛸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20인의 태극전사
대한민국은 초대 대회 우승을 포함해 총 다섯 차례(1981, 1994, 2000, 2006, 2008)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쿠바(11회), 미국(10회)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우승 경력을 자랑한다. 아시아로 범위를 좁히면 단연 1위에 해당하는 기록. 그러나 제2의 ‘에드먼턴 키즈’로 불린 1990년생들이 활약한 2008년 대회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고, 그나마 결승에 진출한 횟수도 딱 한 차례(2017년)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다.
그렇기에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대표팀의 일념은 어느 때보다 남달랐을 터. 다만 올해 고교야구 최대어였던 광주일고 김성준과 장충고 문서준이 미국 무대 진출을 확정 지었고, 마찬가지로 1순위 지명 후보였던 경기항공고 양우진마저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불발되면서 팀 코리아는 본래 계획한 최상의 전력을 꾸리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이하 KBSA)는 수차례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활약한 군산상일고 석수철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한 뒤, 선발할 수 있는 단계에서 최선의 명단을 꾸리고자 했다. 그 결과 투수진엔 ‘1순위 후보’ 북일고 박준현을 필두로 박지성(서울고), 신동건(동산고), 이태양(인천고)이 선발됐으며, 인천고 박준성과 용인시야구단 최요한이 좌완 투수로서 석수철 호에 승선했다. 특히 최요한은 학교 야구부가 아닌 클럽 야구부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한 주인공이 됐다. 여기에 부상으로 낙마한 양우진의 자리는 휘문고 사이드암 투수 김요엘이 채웠다.
한편, 팀 코리아의 주장이자 ‘대표팀 2년 차’ 유신고 오재원이 선봉에 선 야수진에는 올해 1.200 이상의 OPS를 기록하며 고교야구 무대를 맹폭한 박한결(전주고), 김건휘(충암고), 김지석(인천고) 등이 잇달아 합류하며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원주고 포수 이희성은 물론 대표팀의 내야진을 강화할 신재인(유신고)과 허윤(충암고), 그리고 아직 2학년임에도 투타 겸업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엄준상(덕수고)과 하현승(부산고)까지 태극 마크를 달았다.
이번 대회에 전문 투수로 선발된 건 총 7명. 2022년, 2023년 대회 당시 9명의 투수를 뽑은 걸 생각하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선발된 야수 중에서 투수 출전이 가능한 자원이 셋(신재인, 엄준상, 하현승)이나 됐기에 실질적인 투수 자원은 오히려 늘어났으며, 이들은 백업 야수로도 출전할 수 있는 만큼 폭넓은 엔트리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렇게 팀 코리아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선수단을 꾸린 채 일본 오키나와로 떠났고,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대회 경과 1. 오프닝 라운드
대한민국은 첫 번째 관문인 오프닝 라운드에서 일본, 푸에르토리코, 쿠바,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과 함께 A조에 소속됐고, 상위 3개 팀이 슈퍼 라운드로 진출하는 만큼 1~2일 차에 예정된 푸에르토리코전과 일본전이 최대 분수령으로 꼽혔다. 게다가 최근 대한민국 대표팀이 대회 초반 경기를 내주며 어려움을 겪어 왔기에, 첫 두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각오는 평소보다 남달랐다.
그렇게 푸에르토리코전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 야구 월드컵. 선발 투수로 나선 신동건이 1회부터 볼넷과 투런포를 맞으면서 불안하게 시작했으나, 2회 말 곧바로 동점을 만든 뒤 두 번째 투수 최요한이 4.2이닝 8탈삼진 무실점으로 쾌투하며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최요한이 첫 등판에서 출루를 허용한 타자는 0명. 여기에 9번 타자로 깜짝 선발 출전한 박지호의 결승타를 포함해 타자들이 5 대 2까지 점수를 벌리며 팀 코리아는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A조 1위 결정전이나 마찬가지였던 한일전에는 대표팀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투수인 박준현이 선봉에 섰다. 그는 1회부터 150km/h를 가볍게 넘기는 강속구를 앞세웠으나, 1회부터 선취점을 허용하며 썩 만족스럽지 못한 시작을 알렸다. 이때 팀 코리아는 이희성의 적시타에 힘입어 2회 초 곧바로 2득점으로 역전하는 등 전세를 바꾸는 듯했으나, 박준현이 2회 말 재역전을 허용하며 강판당하고 말았다. 다음 투수 하현승이 3.1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분투했지만, 넘어간 승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타선도 별다른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며 최종 스코어 4 대 2, 대한민국이 쓰라린 1패를 안았다.
그 이후에는 비교적 부담이 덜한 팀들의 연속이었다. 세 번째 상대였던 남아공에게는 우천으로 인해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는 변수가 생겼음에도 17 대 0으로 5회 콜드 게임 승리를 거뒀고, 그다음 경기였던 이탈리아전 역시 신동건, 이태양, 엄준상이 팀 노히터를 합작하는 등 쾌조의 투수력을 자랑하며 8 대 0으로 완승했다. 여기에 슈퍼 라운드 진출의 마지막 변수였던 쿠바전에서도 6회 1아웃까지 10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선발 투수 김요엘을 앞세워 승리, 오프닝 라운드를 조 2위(4승 1패)로 마무리하며 슈퍼 라운드로 진출했다.

#대회 경과 2. 슈퍼 라운드 & 동메달 결정전
같은 조였던 일본, 푸에르토리코와의 전적을 승계한 채 맞이한 슈퍼 라운드. 이때 일전을 벌여야 할 상대는 미국, 대만, 파나마였다. 팀 코리아로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일본전에서 기록한 1패를 안고 시작한 라운드인 만큼 금메달 결정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세 경기를 전부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단 한 차례의 패배도 용납될 수 없었던 것.
다행히 첫 경기였던 대만전은 의외로 대한민국이 쉽게 흐름을 가져왔다. 1회부터 대만 내야진이 실책을 남발하며 4점을 헌납했고, 한국의 선발 투수로 등판한 최요한이 4이닝 1실점으로 다시 한번 호투하면서 상대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요리했다. 그 이후로도 팀 코리아는 4회 1점, 6회 3점을 추가해 완전히 승부에 쐐기를 박았고, 최종 스코어 8 대 1로 승리하며 사실상 조 4위 이상을 확정 지었다.
최소한 동메달 결정전 진출은 떼 놓은 당상이었고, 이제 남은 건 미국까지 누르고 금메달 결정전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상승세를 꺾은 투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미국의 선발 투수로 등판한 좌완 투수 지오반니 로하스였다. 그는 최고 158km/h에 육박하는 속구를 뿌리며 대표팀 타자들을 압도했고, 끝내 7이닝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두며 1 대 0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한국 역시 이태양, 김요엘, 하현승이 6이닝 1실점을 합작하며 응수했지만, 타선이 2안타에 그치면서 빛이 바랬다.
미국전 패배로 승자승 원칙에 의해 대만과의 동메달 결정전 진출이 확정된 대한민국 대표팀. 이에 분풀이라도 하듯 팀 코리아는 이튿날 파나마전에서 1회부터 7점을 뽑으며 ‘초전박살’을 내 버렸다. 그렇게 한국은 두 번째 관문을 2승 1패로 마쳤고, 마지막을 장식할 동메달 결정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물론 그 상대가 이틀 전 7점 차 승리를 거둔 대만이라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불과 3년 전에도 일본을 슈퍼 라운드에서 8 대 0으로 완파했다가 정작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이력이 있었기에, 마냥 쉬운 승부가 펼쳐지리라 속단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대망의 동메달 결정전이 시작됐고, 이날 대회 내내 침묵하던 ‘충암고 4번 타자’ 김건휘가 깨어났다. 2회 말 선제 솔로포를 작렬시킨 것은 물론, 2 대 1로 뒤진 6회 말 2사 2루에선 동점 적시타까지 때려 내면서 가장 중요한 한방을 터트린 것이다. 그러나 승부는 너무도 허망하게 갈렸다. 7회 초 2사 2루에서 대만 5번 타자 장 팅이의 타구를 중견수 오재원이 홈으로 송구한 뒤 포수 이희성이 주자를 먼저 태그했으나, 비디오 판독 결과 이희성이 주자의 주루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득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점수는 순식간에 3 대 2가 됐고, 대표팀에게 주어진 공격은 딱 한 번이었다.
대한민국은 직전 이닝에서도 극적으로 동점을 만드는 저력을 보여 줬지만, 아웃으로 이닝이 끝났다고 믿은 상황에서 허용한 1점은 매우 크게 느껴졌다. 결국 7회 말 이희성-박지호-오재원이 연달아 범타로 물러나면서 경기 종료, 제32회 18세 이하 야구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이번 대회에서 팀 코리아가 남긴 전적은 6승 3패, 최종 순위는 4위였다.

#뜨거운 여름밤은 갔지만
첫 두 경기에서 1승 1패를 거둔 뒤 슈퍼 라운드 1차전까지 4연승을 내달리며 우승을 향한 열망을 내비쳤던 대한민국 대표팀. 비록 미국전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고배를 마시며 메달권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으나, 이번 대회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며 대표팀의 선전을 이끈 원석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건 박지호. 올 시즌 16경기에 나서 타율 0.352 OPS 0.883으로 준수한 콘택트 능력을 보여 준 그는, 첫 경기였던 푸에르토리코전부터 3안타 3타점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 이후로도 박지호는 대표팀의 주전 9번 타자로 나서면서 타율 0.381 출루율 0.481 장타율 0.524라는 호성적을 남겼고, 이러한 퍼포먼스에 힘입어 외야수 부문 대회 올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표팀 소속으로서는 유일한 선정 사례였다.
그다음으로는 오재원과 안지원이 타선에서 기둥 같은 활약을 펼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해 18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유일한 2학년으로 출전한 오재원은 올해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고, 4할이 넘는 출루율과 함께 팀 내 최다 루타(12루타)를 기록하며 리드오프로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여기에 테이블세터와 중심 타선을 오간 안지원은 팀 내 최다인 7타점을 쓸어 담으며 팀 코리아의 해결사로 자리했다. 특히 그는 대회 전체 1위에 해당하는 4개의 희생타를 때려 내는 등 팀 배팅의 측면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마운드에서는 대표팀 내 이닝 소화 1, 2위에 오른 김요엘과 최요한의 역투가 빛났다. 본래 양우진의 낙마로 대체 선발된 김요엘은 4경기(선발 등판 3경기)에서 13.2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짠물투를 펼치며 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했고, 탈삼진도 19개나 잡아내면서 이 부문 대회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전, 대만전 승리 투수였던 최요한 역시 10이닝 평균자책점(이하 ERA) 2.10 탈삼진 12개로 제 몫을 다했다. 특히 최요한은 삼진을 잡은 뒤 화려한 세리머니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그 밖에도 인천고 듀오로 참가해 각각 ERA 0.00, 1.11을 기록한 박준성과 이태양, 투타를 겸업하며 마운드 위에서 위력적인 공을 던진 하현승과 엄준상, 그리고 팀 내 최다인 4경기에 등판하면서도 김요엘처럼 1점도 내주지 않은 박지성 등이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의 마운드를 빛낸 주인공들이다. 대한민국의 팀 ERA는 1.07로 이 부문 미국(0.57), 일본(0.98), 쿠바(1.06)에 이은 대회 4위이며, 피안타율은 0.163으로 일본(0.126)에 이은 2위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을지언정, 국제 대회에서 한국의 어린 투수들은 분명히 경쟁력을 보였다는 의미다.
#남은 건 볼품없지 않다
분명 이번 야구 월드컵에서 팀 코리아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금메달 결정전에 진출한 2017년 대회 이후로는 4연속 동메달 결정전 진출에 만족해야 했으며, 그마저도 한 차례 승리를 거둔 대만에 패하며 ‘노메달’에 그쳤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한민국이 국제 대회에서 기쁨보다는 아쉬움과 쓰라림을 느낀 적이 더 많기에, ‘이번에도 실패구나’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 상대한 일본, 미국, 대만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훗날 프로선수로 성장해 더 큰 무대에서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대만 대표팀이 슈퍼 라운드에서 한국에 7점 차로 진 뒤 동메달 결정전에서 설욕에 성공한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 오늘의 패배를 갚아 주면 되는 일. 그렇기에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을 20명의 청춘에게 그저 ‘고생했고, 장하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들의 오늘이 언젠가 아름답게 추억할 ‘그날의 여름’으로 남길 바라며, 곧 있을 신인드래프트에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4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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