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부진에 CB 돌려막는 상장사들... 차환 발행 못하는 곳은 투자자 손실 우려도
CB 차환 성공하자 주가 20% 급등한 이연제약
일부 기업은 CB 상환 위해 알짜 자회사 매각하기도
이 기사는 2024년 10월 20일 13시 29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전환사채(CB) 발행 후 주가가 크게 떨어진 기업에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가 몰리고 있다.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낼 기회를 잡지 못하자, 원금 보전을 위해 회사 측에 되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풋옵션 수요에 대응하고자 추가 CB 발행에 나선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리파이낸싱(차환)에 실패해 유상증자로 선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문·원료의약품 제조 및 판매사인 이연제약은 이달 14일 850억원 규모의 3회차 무기명식 무이권부 무보증 사모 CB를 쿼드자산운용, 삼성증권 등 26곳을 대상으로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이연제약은 발행액의 대부분인 735억원을 2021년 7월 발행한 2회차 CB 조기상환 대금으로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쿼드자산운용과 함께 3회차 CB를 인수하는 삼성증권은 2021년 해당 CB를 700억원 주고 샀다. 하지만 올해 9월 말 기준 이연제약 주가는 1만3890원으로, 3년 전 전환가액(2만2857원)보다 40%가량 추락한 상태다. 2회차 CB를 발행할 때만 해도 이연제약 주가는 5만원대 후반이었는데, 그 사이 주가가 4분의 1토막이 났다. 주식으로 바꾸면 손실이 크기에 삼성증권은 풋옵션을 신청한 것이다.
2021년 투자자들은 속앓이했지만, 어쨌든 이연제약이 차환 발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시장에서 호재로 작용했다. 이연제약 주가는 발표 전인 이달 14일 1만3800원에서 18일 1만6780원으로 22% 상승했다.
모든 기업이 차환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코스닥 상장사인 A사는 2022년 발행했던 CB에 대한 풋옵션 행사 신청이 들어왔지만, 지난해부터 발행하고자 했던 추가 CB 대금 납입이 잇달아 연기되면서 난항을 겪었다. 결국 A사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 발표 후 이 회사 주가는 약 10% 급락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올해 하반기 들어 코스피 지수가 7% 넘게 떨어지는 등 국내 증시가 전반적으로 부진하자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뚝 끊겼다고 말한다. 사채의 일종인 CB는 기업에 돈을 빌려준 투자자가 미리 정해진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주식 전환가보다 주가가 올라야 CB를 주식으로 바꿔 수익을 낼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CB 행사건수는 262건이다. 액수로는 총 3883억원 규모다. 지난 2분기 324건(1조584억원)과 비교하면 행사금액이 3분의 1로 급감했다. 1년 전인 2023년 2분기(394건·7052억원)와 비교해도 반토막 수준이다.
풋옵션 신청이 늘어나면서 CB 발행 여건이 되는 기업과 아닌 기업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K팝 최대 기획사인 하이브의 경우 2021년 11월 발행한 3회차 CB의 조기상환일(2024년 11월 5일)을 앞두고 풋옵션 신청이 빗발쳤다. 발행 당시 전환가액은 38만5500원이었는데, 현재 주가는 18만원대여서 주식으로 바꾸면 큰 손실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에 하이브는 이달 15일 이사회를 열고 4000억원의 4회차 CB 발행을 의결했다. 미래에셋증권이 3회차 CB에 이어 또다시 발행주관사로 선정됐다.
바이오·헬스케어 소재 전문기업 제노포커스는 풋옵션 대응이 당장은 어려웠던 케이스다. 제노포커스는 이달 4일 CB 풋옵션 상환을 위해 자회사 지에프퍼멘텍 지분 일부를 192억원 규모로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노틱글로우홀딩스에 양도했다.
지에프퍼멘텍은 올해 상반기에 2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같은 기간 약 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제노포커스의 손실 규모를 줄여준 알짜 자회사다. 시장에서는 이번 제노포커스의 결정으로 향후 연결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노포커스는 지난달까지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CB 차환 발행에 제때 착수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제노포커스처럼 자금 확보를 위해 알짜 자회사를 매각하면 향후 다른 사업에서 호실적을 내지 않는 한 기업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만약 다른 방안으로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 시중에 유통 물량이 늘어나면서 기존 주주들의 주주가치가 희석되고, 결국 투자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CB로 차환하려는 기업이 인수 주체를 찾지 못하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로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다 보니 최종적으로 유상증자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나온다”며 “기업마다 풋옵션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과학영재교육 갈림길]② 의대 준비하러 대학 일찍 간 과학영재들, 조기진학제 손 본다
- [단독] 삼성전자, P2·P3 파운드리 라인 추가 ‘셧다운’ 추진… 적자 축소 총력
- [단독] 서정진 딸 관련 회사 과태료 미납, 벤츠 차량 공정위에 압류 당해
- [단독] ‘레깅스 탑2′ 젝시믹스·안다르, 나란히 M&A 매물로 나왔다
- “트럼프 수혜주”… 10월 韓증시서 4조원 던진 외국인, 방산·조선은 담았다
- 가는 족족 공모가 깨지는데... “제값 받겠다”며 토스도 미국행
- 오뚜기, 25년 라면과자 ‘뿌셔뿌셔’ 라인업 강화… ‘열뿌셔뿌셔’ 매운맛 나온다
- [인터뷰] 와이브레인 “전자약 병용요법 시대 온다… 치매·불면증도 치료”
- ‘꿈의 약’ 위고비는 생활 습관 고칠 좋은 기회... “단백질 식단·근력 운동 필요”
- 위기의 스타벅스, 재택근무 줄이고 우유 변경 무료 나섰다